프라하에서 러시아 모스크바까지 대략 2시간 40분. 새벽에 떨어지면 한나절 모스크바에 머물다가 한국으로 돌아간다. 밤 비행기를 타고 가면 잘 시간이 없어서 어쩔까 고민하다가 공항에 잠시 머무르기로 했다.
이번 여행의 최대 바보짓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모스크바에 도착해서 내리면 좌측엔 바깥으로 나갈 수 있는 출구가 있고, 오른쪽 에스컬레이터를 타면 환승할 수 있는 탑승구로 연결된다. 모스크바공항에서 잠깐 자고 바깥으로 나갈 수 있다는 글을 어디선가 봤다. 그 말만 믿고 일단 라운지로 향했다. 그 글을 어디서 봤는지, 나갈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제대로 안 챙긴 게 문제였다.
일단 라운지에서 가볍게 샤워를 하고(물이 잘 빠지질 않아 바닥이 물바다가 된 것도 고생의 일환. 수건으로 그 물을 다 닦았어...) 잠시 휴식을 취하다가 바깥으로 나가기로 했다.
근데 어떻게 나가??
들어올 때 통과했던 곳으로 가서 아무 직원이나 붙잡고 물어봤다. 나 환승할 건데 시간이 많이 남아서 바깥으로 나가려고 해. 어떻게 해야 해?
직원은 내 말은 제대로 듣지도 않고 엄한 얼굴로 잘라말했다.
"너 못 나가. 공항에 있어."
응?? 분명 나간 사람이 있었는데.
약간 멘붕이 오기 시작한다.
저 사람 말고 좀 더 다정한 사람을 찾자. 착해보이는 다른 직원을 찾아 물어봤다. 나 잠깐 나갔다 오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돼? 새로 만난 직원은 다정한 얼굴로 대답한다.
"모르겠는데. 내 담당 아니야."
누구한테 말해야 되지???
이번엔 안내데스크를 찾아갔다. "나 나가야 되는데 여기에 있게 됐어. 나가고 싶어."
안내데스크 직원은 어디로 가라고 말해줬는데, 영어를 도저히 알아들을 수가 없다. 종이에 적어달라고 하자 아랫층 어딘가로 가란다. 근데 아랫층으로 가는 길을 몰라! 내려가면 다 탑승구로 연결되고 내가 가고 싶은 길은 전부 막혀 있다.
참고로 모스크바 셰레메티예보 공항은 좌우로 매우 길다. 층도 다 다르다. 그 기나긴 공항을 몇 번을 가로질렀는지, 점점 발이 아파오고 땀이 나기 시작했다.
나 어쩌지. 포기하고 그냥 라운지에서 잠이나 잘까. 근데 이미 시내 나가는 열차도 왕복으로 예매해놓고 환전까지 해뒀는데. 다른 건 몰라도 테트리스궁전은 보고 싶은데.
자꾸 주눅 들고 러시아 사람들 영어 발음 잘 못 알아듣겠고 직원들은 날 귀찮아하고. 점점 암담해졌다. 혼자 있는 게 이토록 외롭고 무서울 줄은 몰랐다.
잠시 의욕을 잃고 앉아있다가 문득 든 생각, 여행객이 자기네 나라에서 돈 쓰고 가겠다는데 설마 국가 차원에서 싫어하겠어? 말만 잘 하면 없는 법이라도 만들어서 내보내줄 것 같은데.
다시 용기를 내보기로 했다. 환승객들의 여권과 표를 확인하는 사람에게 가서 최대한 불쌍한 표정을 지으면서 말했다. 나 시내에 나갔다 와야 하는데 실수로 여기로 들어왔어. 나 진짜 아에로익스프레스 표도 예약하고 돈도 바꿨는데 안 나가면 안 돼. 도와줘.
오래된 기차역을 지키는 인자한 역무원처럼 생긴 직원분은 안쓰러운 얼굴로 웃으면서 대답했다. "아이쿠! 실수? 내가 도와줄게. 따라와."
그렇게 보내진 곳은 transfer center.
헐 이런 곳도 있었구나. 한참을 기다려 자초지종을 말했더니 내게 또 어디론가 가라고 했다. 거기로 갔더니? 나보고 트랜스퍼 센터로 가란다. 나 지금 거기서 왔는데? 그래도 거기로 가란다.
또 갔더니 담당직원이 한심한 눈빛을 보내더니 ㅋㅋㅋㅋㅋ 남자 직원을 딸려 보낸다. 내가 갔던 곳의 바로 옆 사무실 문을 두드리더니, 나 대신 자초지종을 설명한다. 그 곳의 직원이 무서운 눈빛으로 쳐다보길래 다시 비굴한 웃음, "미안해. 내가 실수로 여기로 왔어. 내보내줘."
내 여권과 티켓을 확인하더니 또 어디론가 데려가고, 거기서 또 날 쏘아보면 난 또 비굴한 웃음을 짓고. 결국 환승객이라는 확인표를 받아들고 밖으로 나왔다. 와 감격해서 눈물이 다 날 것 같았다.
같은 공항 안인데 바깥으로 나오니 공기가 왜 이렇게 색다르지요.
다시는 인터넷에서 본 글만으로 위험한 짓은 안 하기로 했다. 방법은 찾았지만 두어 시간이 그냥 다 지나가버리고 말았다. 덕분에 생각했던 일정은 전부 다 틀어지고.
어쨌든 모스크바에 이렇게 발을 디딘다.
어차피 짧게 머물거라 환전은 여행 전 하나은행에서 십만원 가량만 바꿔뒀고(소액이라 모스크바에서 환전하느라 쓸 에너지를 비싼 수수료와 맞바꿨다), 예약하면 더 저렴한 아에로익스프레스 티켓도 있다. 공항에서 유심칩만 하나 구입해서 모스크바 시내로 출발.
여행지 정보
● Russia, Moscow Oblast, Khimki, 셰레메티예보 국제공항
trips.teem 으로 작성된 글 입니다.
와 맥주여행 부럽습니다. 저도 맥주 엄청 좋아하는데~
이제 모스크바 여행기 기대해도 되는건가요??
안녕하세요. @trips.teem입니다. 정말 고생하셨군요. 여행이니까 겪을 수 있는 경험이겠죠? 앞으로도 멋진 여행경험기 많이 소개해주세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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