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 맥줏집 탐방에 나서는 날.
마리엔플라츠로 향한다. 또 다시 신시청사 앞. 오전인데도 어마어마한 인파가 몰려있다. 알고보니 곧 인형극이 시작된단다. 나도 자리를 잡고 기다리기로. 12시 정각이 되어 종이 울리고, 음악이 흐르고, 잠시 후 인형들이 돌기 시작하는데... 돌기만 한다. 빙글빙글. 너무 기대하면 실망할 수준. ㅋ
그러던 중 어떤 할아버지가 말을 건다.
-한국인이니?
-네, 맞아요. 한국에서 왔어요.
-나 한국에 대해 잘 알아. 예전에 부산에 간 적이 있어. 김대중도 알고 평창올림픽이 열리는 것도 알고 있어.
-와우! 진짜요? 쏘 쿨!!
-괜찮다면 너랑 얘기 좀 하고 싶은데.
혼자 여행할 때 가장 중요한 건 뭐다? 직감.
느낌이 약간 이상해서 얼른 유랑카페를 뒤지기 시작했다. 독일, 뮌헨, 할아버지, 접근 등으로 검색을 하니 바로 게시물이 나온다. 유명한 캐논할배다.
한국에서 온 여자들에게 접근해서 신체 접촉을 한단다. 키워드는 위에서 말한 대로 김대중/부산/평창올림픽이다.
내게 커피 한잔하자면서 잡아끄는데, 미안하지만 찾아봐야 할 게 있다고 거절하고 보냈다. 뮌헨에선 이 사람만 조심하면 될 것 같다.
제일 먼저 찾아간 곳은 호프브로이하우스.
여기서 인종차별을 겪었다는 글을 많이 봤지만 꼭 한번은 가보고 싶었다. 그래서 아예 이른 시간에 가기로 했다. 사람이 많은 저녁 시간에 가면 아무래도 소외되기 쉬울 테니.
안쪽 구석에 자리를 잡고 앉으니 메뉴판을 가져다준다. 독일어 메뉴판. 나 영어메뉴판이 있다는 얘길 들었는데 영어메뉴판 좀 줄래? 알았다고 대답은 하지만 안 준다. 아니 왜. 한참을 기다리다가 포기하고 감으로 바이스 한 잔과 바이스 부르스트 하나를 주문했다. 맥주는 금방 가져다 줬는데 소시지는 나올 생각을 안 한다. 어쩔 수 없이 소시지를 받기도 전에 두 번째 맥주를 주문했다.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자리가 거의 찰 때쯤 남자 한 무리가 들어왔다. 여기 앉아도 되냐고 묻는다.
당연하지.
질문 공세가 시작된다. 어디서 왔어? 왜 왔어? 워킹홀리데이야? (워킹홀리데이 하기엔 내 나이가 너무 많아) 어려 보이는데? 스물 한살 아니야?
일행 중 늦게 합류한 남자는 날 보자마자 묻는다.
-넌 한국인인데 (손가락으로 눈을 찢으며) 눈이 이렇지 않네?
-그거 인종차별이야. 너 레이시스트 아니면 그거 하지마.
바로 사과한다. 그러더니 합장으로 인사. ㅋㅋㅋㅋ 이 자식이! ㅋㅋㅋㅋ 그건 한국 스타일이 아니라고 했더니 또 사과하면서 한국 인사법을 알려달라고 한다. 기분 나쁠 수 있는 순간이었지만 잘 몰라서 하는 거고 바로바로 미안하다고 사과해서 화가 나진 않았다. 모르면 배우면 되겠지...
자신들은 북쪽 독일에서 맥주를 마시러 기차 타고 네 시간 왔다고 소개한다. 20대부터 40대까지 섞여있다. 원래 여기서 두어 잔 마시고 장소를 옮길 생각이었는데, 이 사람들과 노는 게 너무 재밌어서 세 시간 가량 놀았다. 내 잔이 비자 옆자리에 앉은 잘생긴 남자가 한잔 사겠다면서 내 맥주까지 주문해주고.
웃긴 건 이곳에서 인종차별 당했다는 게 거의 보고도 못 본 채한다, 주문한 음식을 가져다주지 않는다, 오래 기다리게 한다 등등인데 나와 합석한 독일 남자들한테도 똑같이 한다. 맥주 왜 안 주냐고 몇 번이나 소리를 지르고 주문한 음식 안 나왔다고 몇 번을 항의한 끝에 받았다. 그냥 모두가 무시당한다고 생각하면 편할 것 같다. ㅋㅋ
이 사람들과 있다가는 영영 못 나갈 것 같아서 나 먼저 나가겠다고 했더니, 이따 저녁에 숙소에서 파티를 할 건데 함께 하지 않겠냐는 제안을 한다. 마침 숙소가 내가 묵은 호텔 바로 뒤에 있는 웜뱃 시티 호스텔. 오케이. 저녁 일곱시쯤 갈게.
밖에 나왔더니 비가 내리고 있다. 멀리까지 이동할 수가 없어서 바로 맞은 편 아우구스티너로. 여긴 여행객보단 현지인들에게 더 인기가 많은 곳이란다.
맥주 한 잔을 주문하고 나니 따뜻한 게 먹고 싶다. 굴라쉬수프를 추가로 주문. 따뜻하고 맛있긴 하지만 내가 먹고 싶은 건 컵라면인 것 같다. 다음부턴 진짜 컵라면 챙긴다.
옆자리에 앉은 할아버지가 말을 건다. 한국에서 왔니?
네! 한국을 아시나 보네요.
신기하다. 한국에선 이국적으로 생겼다는 얘길 많이 듣고 외국인이냔 오해도 종종 받았는데, 오히려 유럽에 오니 많은 사람들이 한국인인 걸 한번에 맞힌다. 옷차림 같은 걸로 알아본다는 얘긴 있지만, 그래도 기분이 이상하다. 한국에서 너무 좁은 범주로 한국인스러운 걸 정해놓고 거기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놀림감으로 삼진 않는 건지 싶은 생각도 든다.
맥주 맛은 쏘쏘. 두어 잔 더 마시고 나왔더니 피로감이 밀려온다. 감기 기운이 또 올라오고. 독일까지 왔는데 이래도 되는 건가. 말도 안 되지만 이대로 죽을 수는 없으니 또 다시 숙소로 들어간다. 저녁 6시. 해도 짧고 추워서 떠느라 힘들다. 겨울 맥주 여행은 아무래도 다시 생각해 봐야겠다.
여행지 정보
● Neues Rathaus, Marienplatz, Munich, Germany
● Hofbräuhaus München, Platzl, Munich, Germany
● Agustiner Bräu Münder, Munich, Germany
trips.teem 으로 작성된 글 입니다.
안녕하세요 @tsguide 입니다. 독일에서 기분 나쁠 수 있는 상황이었을 텐데 현명하시게 잘 넘기신것 같습니다~ㅎㅎ
이상하면 자세히 보아야 한다고 하던데.. 자세히 보니 인종차별이 아님을 알 수 있었네요 ㅋㅋㅋ
여행 정보는 거의 안 찾아보면서 인종차별 대처하는 법 이런 글은 엄청 읽고 갔어요 ㅋㅋㅋㅋ
영어 잘하시나봐요..저도 여행가서 외국인이랑 말 잘하고 싶어요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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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엉망진창이예요 ㅋㅋㅋㅋ 독일 사람들 영어발음이 그나마 알아듣기 쉬운 데다가 옆에 한국 사람 없으면 정말 아무 말이나 해댈 수 있어서 대화가 되는 거 ㅋㅋㅋㅋㅋ
저는 뮌휀에서 날씨가 비오고 그래서 다시 가보고싶네요. 올리신글 보니 예전 생각이 나고그러네요. ^^
뮌헨은 비 오면 진짜 더 스산해지는 거 같죠? ㅋㅋㅋ 날씨가 안타까워서 전 초여름에 다시 갔어요 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