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많은 여행자도 아니고, 오가며 도시 한 군데를 더 들러볼 수 있기에 경유 항공편을 선호한다. 뮌헨으로 가는 항공권을 검색해 보니 모스크바를 경유하는 러시아 아에로플로트 항공이 가장 저렴하다.
다만 악명이 높다. 툭하면 짐이 분실되고 분실된 짐은 보상도 잘 안 해주고 연착도 잦단다. 그래도 다른 항공권에 비해 너무 싼데?
찾아보니 짐이 없어지는 건 환승시간이 3시간이 채 안 될 경우 생길 수 있는 문제란다. 환승시간을 넉넉하게 잡으면 짐 분실도, 연착도 크게 문제될 것 같진 않다. 게다가 앞으로 내가 러시아를 따로 여행하진 않을 것 같아서 이 때 한번 모스크바를 들러보고 싶은 마음 또한 컸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연착도 없었고 짐도 잘 왔다. 좌석 사이도 꽤 넓고 서비스도 좋았다. 환승대기시간만 넉넉하게 잡을 수 있다면 난 앞으로도 이용할 것 같다. 그리고 연착은 사실 좀 복불복인 것 같다. 기상이변이나 기체 이상은 언제 어디서든 생길 수 있으니.
피치 못할 사정이 있을 때만 타라는 피치항공도 아무 문제없이 타고 다녔으니, 계속 내 운을 믿어야지.
미리 웹체크인을 해뒀고 자동출입국 심사를 이용하니 공항에서의 시간이 매우 절약된다. 초고속 통과. 초고속으로 통과하면 뭘 하냐고? 라운지에 가서 맥주를 마셔야지.
맥주로 시작하는 맥주여행
pp카드를 신청했다. 기존에 시티카드를 사용하다 분실한 상태였기에, pp카드를 제공하는 시티카드를 재발급 받았다. 이미 가입이 되어있어서 빠른 카드 발급. 근데 카드는 왔는데 pp카드가 올 생각을 안 한다. 여행 날짜는 다가오는데 어쩌지. 안절부절 못하다가 조바심이 극에 달해 전화를 걸어볼까 하는 시점에 도착했다.
먼저 입장한 아시아나 비즈니스라운지. 2018년 1월부터 타 항공사 승객은 이용이 불가능해졌지만 여행 시점인 2017년 11월엔 아직 pp카드로 이용이 가능했다. 거의 마지막 열차를 탄 셈. 생각보다 먹을 건 많지 않지만 휴식을 취하거나 개인적인 시간을 보내기엔 쾌적한 환경이다. 곧 싱싱한 독일 맥주를 마시러 떠날 테지만, 맥주로 시작한다.
두 번째로 찾은 마티니라운지는 음식은 다양하지만 사람 역시 많다. 성수기엔 줄 서서 대기한다는데 그 정도는 아니었다. 약간의 음식과 함께 맥주를 마시다 보니 탑승시간이 임박해졌다. 내달린다. 탑승마감시간이 거의 다 되어서야 도착했는데 탑승구에서 내 티켓을 보더니 여기가 아니란다. 게이트가 변경됐단다. 그래도 다행히 바로 옆 게이트. 면세품 사느라 탑승시간 놓친 사람 얘긴 많이 들어봤어도 맥주 마시느라 놓친 사람 얘기는 못 들어봤는데, 부끄러울 뻔했다.
아에로플로트 첫 탑승
승객이 많은 편이었지만 운 좋게 내 옆자리는 비어있었다. 방해 받지 않을 수 있다!...고 좋아했지만 옆옆자리 남자가 나를 넘어다녔다. 남자를 밀치고 나가는 것보단 다리가 덜 긴 내 앞으로 가는 게 편하긴 하겠지. 중간에 "저 좀 내렸다 탈게요."하면서 지나가는데 "내렸다 탈 수 있어요? 그럼 나도 쫌 내릴래요."라고 하고 싶은 걸 꾹 참았다. 그런 실없는 소리라도 내뱉고 싶을 정도로 비행은 참 길고 따분하다.
아에로플로트에선 맥주를 제공하지 않는다는 글을 어디선가 봤는데 맥주가 있긴 하다. 마시진 않았다. 장거리 비행에 음주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건 이미 경험으로 알고 있다. 다만 와인은 한 잔 주문했다. 식사와 함께 하는 와인은 술이 아니니까(??).
기내식을 먹고 책도 읽고 영화 한 편을 다 봐도 아직 멀었다. 모니터로 항공 이동 경로를 보니 계속 러시아다. 너무 심심한 나머지 아이폰 메모장을 열고 sns에 쓰고 싶은 글들을 남겼다.
농담) 가도 가도 도착하지 못하는 곳은? 거진.
체념) 가도 가도 벗어나지 못하는 곳은? 러시아. 아무리 가도 러시아. 계속 러시아. 지구의 반이 러시아.
중간중간 끊임없이 음료에 아이스크림까지 제공 받고 한 번의 식사를 더 한 후 드디어 모스크바에 도착했다. 공기가 차다.
셰레메티예보공항에서도 바로 라운지로 향한다.
와, 근데 직원분이 날 보더니 묻는다. "한국인이세요?"
"우와 맞아요. 한국말 하실 줄 아시네요."
"잘은 못해요."라면서 웃는데, 요즘 한국어 배우는 외국인들이 많다는 얘긴 들었지만 러시아분이 한국어를 하는 걸 보니 좀 신기하다. 하긴 중국 칭다오 한 카페에서도 한국어 하는 직원을 본 적이 있다.
다음 탑승 시간을 기다리며 맥주를 마신다. 또 마신다. 계속 마신다. 회식으로 5차까지 간 적은 있었지만 이렇게 국가를 옮겨 다니며 4차를 하고 있다. 바람직한 인생이다.
탑승시간이 임박하니 문자가 온다.
"Dear passenger! Flight SU 2594 is ready for boarding. Please proceed to gate 30. Yours sincerely Aeroflot"
와우!! 누가 아에로플로트와 셰레메티예보 공항이 게이트 바뀌기로 악명 높다고 했는가. 이렇게 친절한데.
탑승게이트에서 항공기까지 가는 버스에 오르니 동양인이라고는 나와 중국인 한 가족 뿐이다. 독일인들이 크다는 얘긴 들었지만 그 사이에 섞여 있으니 진짜 꼬마가 된 기분이다.
러시아까지 함께 타고 온 한국인들은 다들 어디로 가는 걸까. 왜 뮌헨 가는 비행기엔 나뿐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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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tsguide 입니다. 여행중 이동이라는 것은 뺄 수 없는 과정인것 같습니다. 그 과정을 즐기는 것도 여행의 일부라는 생각을 글을 보면서 갑자기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ㅎㅎ 경유항공을 무사히 탑승하셔서 다행이네요~^^
혼자 멀리 떠난 건 처음이라 진짜 어리바리했던 것 같아요. 근데 저 너무 루즈하게 가고 있나요. ㅋㅋ
라운지 투어를 하셨군요. 제 개인적으로는 마티나 라운지의 음식이 단연 최고였습니다 ㅎㅎㅎ 아에로플로트 항공이 짐 분실로 정말 유명하긴 한데, 사실 그것도 다 복불복이죠 ㅎㅎㅎ
분실해도 나 몰라라 하는 걸로도 유명하긴 하더라구요. ㅋㅋ 전 그래서 언제나 백팩에 첫날둘째날 쓸 물건을 넣어서 출발해요 ㅋㅋ
아아 그러시군요 ㅎㅎㅎ 저는 정말 중요한 물품은 다 가벼운 백팩에 넣고, 짐은 배낭에 넣어 붙이곤 합니다. 혹은 아예 짐을 줄여서 기내수화물 1개만 들고 타거나요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