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풍지존, 오대산 노인봉 그리고 소금강

in #tripsteem5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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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공기가 제법 서늘해졌습니다. 계절의 순환은 어김없죠. 긴소매 셔츠에 바람막이 재킷까지 겹쳐 입고서 집문을 나섭니다. 물러 설 것 같지 않던 불볕더위도 때가 되면 사그라들지요. 요때가 산행하기 딱 좋은 날씨입니다.
혹세무민이 들끓는 어수선함 역시 때가 되면 잦아들겠죠? 추색으로 물들어가는 산길을 걸으며 갑갑한 마음을 털어버릴 요량으로 또 산을 찾습니다. 양재역 출구를 빠져나오니 전국 산으로 향하는 산악회 버스들이 줄지어 산객을 맞고 있네요.

오늘은 고교 동문들과 함께 강원 오대산으로 향합니다. 낯익은 얼굴들과 수인사를 건넨 뒤 좌정했습니다. 오대산 국립공원 진고개탐방센터를 들머리로 하여 노인봉(해발 1,338m)에 올랐다가 천혜의 소금강계곡을 따라 소금강 주차장까지 총 15km를 걷는 코스입니다.

엔진음을 거칠게 토해내며 산구비를 돌아오른 버스는 10시 경, 고갯마루에 멈춰 섰습니다. 주문진과 下진부를 경계하는 해발 960m, '진고개'입니다. 일본을 강타한 태풍, 하기비스 영향 때문인지, 동해에 면한 이곳은 쾌청하던 서울하늘과는 달리 구름이 온통 하늘을 가렸습니다.
비가오면 땅이 질어 '진고개(泥峴)'라는 설과 고갯길이 길어 긴(長)고개라고 하다가 방언의 구개음화(ㄱ→ㅈ)로 진고개가 되었다는 설이 상존하죠. 고갯마루에서 목계단을 딛고 오르면 고려엉겅퀴가 지천인 비탈진 묵은 밭을 지나 본격 숲길로 접어듭니다. 어제 내린 비로 숲길 걷는 내내 질어서 질퍽질퍽했습니다. 소생은 질어서 '진고개'라는 썰에 한 표 얹겠습니다. ^^

완만하던 숲길은 잠깐, 다시 팍팍한 계단길이 보란 듯 이어집니다. 30여분 남짓 쉼없이 올라서자, 길은 다시 완만해지면서 비로소 추색이 눈에 듭니다. 전나무, 팥배나무, 고로쇠나무, 피나무, 시닥나무, 쪽동백나무, 서어나무, 느릅나무, 신갈나무 그리고 투구꽃까지, 등산이라기 보다 한가로이 가을 수목원을 거니는 기분입니다.

그렇게 3.6km를 호사스럽게 걸어 이른 곳은 노인봉 삼거리, 날머리 소금강분소까지는 아직 10km나 남았습니다. 삼거리에서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 300m를 오르면 노인봉이지요. 노인봉 오름길은 지금까지와는 달리 좁고 비탈집니다. 교행에 있어 양보와 배려가 필요한 구간입니다.

해발 1,338m의 오대산 노인봉에 이르자, 수많은 산꾼들로 북새통입니다. 화강암 봉우리에 비집고 올라설 틈이 없습니다. 겨우겨우 올라붙은 노인봉에 노인은 없고 건각들만 가득합니다. 워낙 사람이 많아 발 딛고 서 있기가 위험합니다. 조금만 밀려도 우르르 굴러떨어질 것만 같아 서둘러 내려섰습니다. 노인봉에서의 조망은 역시나 명불허전이더군요. 북쪽으로 오대산의 주봉인 비로봉(1,563m)이 위용을 더하고 남쪽으로는 노인봉과 마주한 황병산(1,407m)이 듬직하게 다가섭니다. 사방으로 내닫는 첩첩 고봉준령은 장쾌하고 역동적입니다.

노인봉을 내려와 삼거리에서 소금강 방향으로 100m를 진행하면 노인봉대피소입니다. 무인으로 운영되는 대피소지요. 이곳 대피소에서 소금강 주차장까지 거리는 10km가 넘습니다.

대피소를 지나 산비탈로 난 완만한 숲길을 걷다보면 서북 방향이 탁 트이는 바위능선을 맞닥뜨리게 됩니다. 이쯤에서부터 편안하던 길은 비로소 조금씩 본색을 드러냅니다. '낙영폭포 위'라 표시된 이정표를 지나 고무매트가 깔린 목계단을 어느만치 내려서니 희미하던 물소리가 점점 또렷해져 옵니다. 소금강 계곡의 시작점인 낙영폭포가 가까워졌다는 신호지요.
'작은 금강'이라는 뜻의 '小금강'이란 이름은 조선시대 학자인 율곡 이이의 저서 '청학산기'에서 유래한 것으로 주변 산세의 규모와 경관이 금강산을 닮았다하여 붙여졌습니다.

드디어 계류를 만났습니다. 암반을 타고 흐르는 물이 벼랑을 만나 하얗게 포말을 일으키며 곤두박질 칩니다. 낙영폭포입니다.
낙영폭포를 시작으로 광폭포, 삼폭포, 상팔담, 이련폭포, 오작담 등 크고 작은 폭포와 소가 계곡을 따라 무릉계까지 쭈욱 이어집니다.

오대산은 만추일 때 그 존재감을 확실하게 드러냅니다. 만산홍엽의 단풍지존이지요. 진고개를 들머리로 노인봉(해발 1,338m) 찍고서 소금강계곡 따라 소금강주차장까지 15km를 빡쎄게 걸으며 가을을 만끽했습니다.



단풍지존, 오대산 노인봉 그리고 소금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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