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보 피로도가 높고 선택 장애의 현대인들을 겨냥한 큐레이션은, '더 많은 선택'을 경쟁력으로 삼았던 과거의 전략을 뒤로하고 '더 적은' 하지만 더 좋은'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전략이 성공하고 있다.
옥스퍼드대 브룩스 국제센터 연구원 마이클 바스카는 책 『큐레이션』에서 현대의 큐레이션을 “불필요한 것을 과감히 덜어내는 힘, 선별과 배치를 통해 시장이 원하는 것만 가려내는 기술”로 정의한다. 큐레이션은 미술관이나 박물관의 담장을 넘어 패션·인터넷·금융·유통·여행·음악 등 모든 분야에 영향을 미치는 새로운 트렌드가 됐다.
주요 기업에서는 디지털 자산을 수집하고 분류·관리하는 디지털 큐레이션을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있다. 파편화된 정보를 꿰맞춰 의미 있는 콘텐트, 자산으로 바꾸는 일이다. 이론상으로는 이 작업을 통해 누구나 콘텐트 아카이브에서 최대치를 뽑아낼 수 있고, 구성원 간 공유가 수월해져 조직 경쟁력으로 이어진다.
유통업계에서도 이러한 전략으로 성공을 거둔 대표적인 업체가 있다. 바로 '스티치 픽스' 이다.

스티치 픽스의 성공은 더는 유통업에서 다양한 상품 확보나 빠른 배송은 의미가 없다는 점을 시사한다. 소비자가 이를 당연하게 받아들여서다. 이젠 공급자가 철저히 소비자에 맞춰야 한다. 대중을 위한 유통이 아닌 ‘개인을 위한 유통’으로 패러다임 전환이 빠르게 이뤄지는 이유다. 사업자 입장에서 큐레이틸(Curated+Retail), 소비자 입장에선 큐레이핑(Curated+Shopping) 시대로의 전환이다.

패러다임 전환을 빠르게 포착한 스티치 픽스가 ‘패션계의 넷플릭스’로 등극한 것은 순식간이었다. 직원은 2012년 5명에서 현재 5700명으로 늘었고 실리콘밸리에서 가장 주목받는 유니콘 기업이 됐다. 스티치 픽스의 지난해 영업이익은 7억7000만 달러(약 8800억원)로 올해는 30% 이상 증가할 전망이다. 지난달 말엔 기업공개(IPO)를 위한 사전 작업에 돌입했다. 증권가 추산 기업가치는 30억~40억 달러(약 3조4000억~4조5000억원)에 달한다.

스티치 픽스의 사업 모델은 '개인의 스타일을 대중에게 파는 법'
스티치픽스의 비즈니스 모델은 간단하다. 우리는 당신이 좋아할 만한 옷과 악세서리를 보내준다. 그럼 당신은 그중에서 마음에 드는 건 갖고 마음에 안 드는 건 우리에게 돌려보낸다. 이는 마치 와비파커(안경 온라인 판매)의 사업모델과 유사하지 않은가
[사업 모델]- 주문이 들어오면 스타일리스트가 배정된다.
[차별화] 데이터 과학을 활용해 우리는 이렇게 개인화된 판매를 대규모로 진행한다.이는 전통적인 매장 및 전자상거래에서의 구매 경험을 능가한다. 고객은 전문 스타일리스트가 옷을 골라주는 걸 즐기고, 또 서비스가 편리하고 단순해서 좋아한다.
- 스타일리스트는 5개의 아이템을 고르고 각각 어떻게 입을 수 있는지를 안내하는 카탈로그, 직접 쓴 편지를 상자에 담아 배송한다.
[차별화] 다른 의류업체들은 최저가격이나 가장 빠른 배송을 통해 차별화를 시도한다. 우리는 개인화로 차별화를 한다. 우리가 '픽스' 배송이라고 부르는 각 배송은 우리가 당신만을 위해 고른 다섯 종의 옷과 액세서리 아이템이 든 상자다.
아이템당 가격은 평균 50~60달러 정도지만 주문자의 예산에 맞춰 준다.
소비자는 입어 보고 마음에 들지 않는 아이템은 반송 봉투에 넣어 되돌려 보낸다. 5개를 모두 사면 25%를 할인해 준다. 배송 비용은 스티치 픽스가 부담한다.
[차별화] 선택은 당신과 수백만 명의 다른 사용자가 준 정보를 토대로 이뤄진다.가입할 때 당신이 작성하는 긴 설문지, 그리고 각 배송 이후 당신이 우리에게 보내는 피드백이 그 기본정보다

[리스크]
- 물건을 받아보고 더욱 싼 구입처를 찾으면 반송하는 ‘체리피커’가 생길 수 있다. 실제로 스티치 픽스의 의류 판매가엔 스타일링 비용(한 달에 20달러)이 더해지기 때문에 최저가를 제안할 수 없다.
우려와는 달리 스티치 픽스 이용자의 80%는 1개 이상의 아이템을 구매한다. 가격보다는 시간이 더 중요한 소비자가 그만큼 많다는 의미다.
[장점]
전문화된 인간과 데이터 분석 알고리즘의 AI 적용을 CEO의 스폰서십을 바탕으로 제대로 활용 하고 있다.
인간 스타일리스트 3700명을 고용하고 있지만 스티치 픽스의 ‘원천기술’은 패션이 아닌 데이터와 인공지능(AI)에 있다.
‘패션업으로 위장한 데이터 회사’(포춘)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실제로 넷플릭스의 데이터 과학·엔지니어링 부사장이었던 에릭 콜슨이 2012년 합류해 최고알고리즘경영자(CAO)를 맡고 있다.
그가 이끄는 분석팀(80여 명)은 선호 스타일, 패션트렌드 등에 따라 수백 가지의 알고리즘을 만들어 적용하고 있다.
[알고리즘]
이들은 신체 사이즈, 피부톤과 같은 기본 정보에 분석된 정보를 더해 가입자의 마음에 들 확률이 높은 품목을 찾아낸다. 이미지 인식 기능을 통해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취향도 데이터로 변환하고 있다. 콜슨은 “스티치 픽스에선 ‘판매’보다 우리와 회원의 공생 관계가 중요하다는 것이 핵심”이라며 “그들이 우리에게 원하는 가치(마음에 드는 옷)를 찾아내면 우리 분석이 맞는 것이라 함께 성공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머신러닝이 제대로 활용되기 위해서는 다음의 세 가지가 필수적이다.

데이터과학 팀은 CEO에게 직접 보고한다.
대부분의 회사에서 데이터과학자들은 엔지니어링 팀의 한 부분으로 최고기술채김자(CTO)에게 보고하거나 심지어 재무 쪽에 보고를 하기도 한다. 우리 회사에서는 데이터과학이 별도 부문이다. 그리고 우리는 에릭 콜슨Eric Colson이라는 최고알고리즘책임자가 있다. 에릭은 2012년 8월 넷플릭스에서 합류했다. 이전에 그는 우리의 자문역이었다. 그가 우리 회사에 관심을 갖게 된 건 이 일이 도전정신을 자극했기 때문이다.넷플릭스에서 누군가가 그에게 "앱을 열면 바로 그 사람이 좋아할 만한 영화가 재생되도록 해보면 어떨까?" 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건 대담하지만 위험한 아이디어였다. 하나의 추천에 올인하는 것이기 떄문이다. 그는 스티치픽스가 하는 일이 바로 그런 일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자문역으로 우리에게 조언을 주던 시절에, 그는 휴가를 가서도 우리의 데이터를 가지고 놀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그래서 우리 회사에 풀타임으로 합류하기로 결정했다. 그의 합류는 우리 같은 조그만 스타트업에 엄청난 사건이었다.
알고리즘에 의한 추천이 얼마나 뛰어난가에 따라 매출이 결정되기 때문에 데이터과학자들이 CEO와 직접 소통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또한 이런 구조가 조직 전체에 우리의 가치관과 전략방향을 공표하는 역할을 한다고 믿는다. 데이터과학은 대단히 중요하며, 마케팅과 엔지니어링과 같은 다른 부서들도 데이터과학 팀과 긴밀하게 협력을 해서 역량을 향상시킬 수 있다.
데이터과학이 혁신을 이뤄낸다.
'우리는 아무도 요청한 적이 없는 수십 개의 알고리즘을 개발했다.데이터과학 팀이 새로운 솔루션을 만들어내고 사업적 가능성이 있는지를 판단하도록 자유롭게 놓아둔 덕분이다. 예를 들어, 아무도 데이터과학 팀에 재구매 추천 알고리즘을 개발해 달라고 공개적으로 부탁한 적이 없다. (재구매는 특정 아이템이 잘 팔려서 더 많이 재고를 확보해야 할 때 일어난다.), 우리의 알고리즘은 재구매 트렌드를 더 일찍, 더 정확하게 볼 수 있도록 도와준다. 이에 따라 재고를 보다 효율적으로 확보하고 고객 수요 급증에 대비할 수 있다. 또 이 팀은 최근 창고에서 일하는 직원들의 움직임을 추적하는 방법을 만들었고, 이에 따라 직원의 경로를 최적화하는 알고리즘을 개발했다. 많은 돈을 들여 창고 설계를 바꾸지 않아도 되게 말이다.
사람들은 종종 데이터 과학이 우리 문화에 얼마나 뿌리 깊이 새겨져 있는지를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우리는 현재 많은 종류의 알고리즘을 쓰고 있으며 개발 중인 알고리즘도 많다. 개인화 된 옷 추천도 당연히 머신러닝이 주도한다. 주문 처리와 재고 관리에서도 알고리즘을 사용해 자본비용을 낮추고, 재고를 적절히 관리하며 배송을 효율적으로 관리한다. 제품개발 부서는 유전학의 알고리즘을 활용해 성공하는 옷의 특성을 찾는다. 심지어 옷 디자인을 하는데도 머신러닝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우리의 자체 의류브랜드인 하이브리드 디자인 Hybrid Design은 어느 비 오는 날 오후에 두 명의 데이터과학자가 시장에서 제품의 틈새를 어떻게 메워야 할지에 대해 생각하다가 탄생했다. 예를 들면, 많은 40대 중반 여성고객이 어꺠와 팔 위쪽만 덮는 짧은 소매 블라우스를 요청했지만 우리의 재고목록에는 그런 스타일은 없는 상황이었다. 1년이 지난 지금,우리는 컴퓨터로 디자인된 일반 체형용, 플러스사이즈 체험용 여성의류29가지를 보유하고 있다. 고객 니즈가 있었지만 과거엔 충족시키지 못했던 부분이다.

치수 데이터에도 정량적인 접근방법이 사용된다. 옷의 유형에 따라 적게는30개에서 많게는 100개까지 치수 측정값을 기록한다. 이제는 핏이 어느 정도일 때 고객들이 조금 불편하더라도 옷을 사는지 알게됐다. 이는 200만 명이 넘는 실제 고객 경험을 토대로 한 것이다.
남성 셔츠에서 가슴둘레와 셔츠폭의 최적 비율도 안다. 가슴이 넓은 남성을 위해 셔츠의 옷깃과 첫 번째 단추 사이의 거리도 재조정했다. 데이터과학 덕분이다. 27인치 길이의 바지를 입는 인구의 비율을 알고 있으며 그 비율에 따라 재고를 확보한다.

하지만 어떤 면에서 이건 쉬운 일이다. 진짜로 어려운 일은 필요한 시기에 필요한 색상과 필요한 크기의 드레스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걸 알기 위해 복잡한 수학이 필요하다. 모든 치수는 물론 고객의 성향, 계절, 장소, 과거 트랜드 등 많은 변수를 고려해야 한다.
회사에 투자할 수 있는 1달러가 주어지고 마케팅과 제품, 데이터 과학 중에서 선택해 투자할 수 있다면 우리는 항상 데이터과학을 선택한다. 나는 전통적인 소매업체를 변화시키기 보다는 데이터과학을 중심으로 회사를 시작했다는 점이 기쁘다. 기존의 업체를 바꾸려는 시도는 실패했을 것 같다. 전통적인 소매업체가 "스티치픽스가 하는 방식으로 해보자"라고 한다면 그건 내가"지금 키가 더 크고 싶어요"라고 말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데이터 기반 사업]
앞으로 유통에서는 적절한 데이터를 가장 빨리 분석해 소비자에게 즉각 제공할 수 있는 업체만이 살아남을 전망이다. 세계 유통업 플랫폼을 모두 빨아들이고 있는 아마존은 일찌감치 이를 간파했다. 데이터를 활용한 쇼핑 관련 실험을 다양한 형태로 시도해 왔다. 아마존의 AI 스피커 ‘에코’는 음성명령으로 상품 주문·결제·배송 신청을 한 번에 할 수 있다. 환경에 따라 어울릴 만한 옷을 추천해 주거나 말동무도 해준다. 구글 역시 이미지 인식 기술을 이용한 쇼핑으로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사람 또한 중요하다.
내 두뇌의 분석적인 부부는 우리 회사의 알고리즘 접근방식을 사랑한다.하지만 쇼핑은 본질적으로 개인적이고 인간적인 행위다. 그것이 인간 스타일리스트와 데이터를 합쳐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다. 스타일리스트는 알고리즘이 제시한 제품 구성을 바꾸거나 뒤엎을 수도 있어야 한다. 우리의 스타일리스트들은 디자인업계, 소매업계 등 다양한 출신배경을 갖고 있지만 모두 데이터의 중요성을 인정하며 고객에 대한 사랑과 공감을 느낀다. 인간은 어떤 면에서는 기계보다 훨씬 낫다. 앞으로도 오랫동안 그럴 것이다.
예컨대, 고객이 "7월에 있을 야외결혼식에 참석할 때 입을 드레스가 필요하다."라는 매우 구체적인 요청을 작성하면 우리 스타일리스트는 어떤 드레스로 옵션이 적당한지 바로 알 수 있다. 또 고객들은 종종 임신했다거나, 급격한 체중감량이 있었다거나, 새로운 일자리에 취직했다거나 하는 등의 세세한 사생활을 알려주기도 한다. 컴퓨터는 그 중요성을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스타일리스트는 그런 삶의 순간들이 얼마나 특별한 의미를 갖는지 정확히 알고 있다. 온갖 방법을 동원해 그런 상황에 맞는 옷차림을 구성하고 고객과 연락을 하며 필요하면 창의성을 발휘할 수도 있다. 이는 믿을 수 없을 정도의 브랜드 충성도를 이끌어낸다.
간단하다. 좋은 사람과 좋은 알고리즘의 결합은 최고의 사람이나 최고의 알고리즘만 있을 때보다 훨씬 뛰어나다. 사람과 데이터를 경쟁시키는 게 아니다. 둘은 함께 일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기계가 사람처럼 행동하도록 훈련을 시키는 것도 당연히 아니다. 그리고 누구나 틀릴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스타일리스트, 데이터과학자, 그리고 나 자신도 실패할 수 있다. 심지어 알고리즘도 그렇다. 그 실패로부터 계속 배우는 것이 중요하다.
[실적]스티치픽스는 2016년 7억 3,000만 달러어치의 옷을 팔았고 2017년에는9억 7,700만 달러어치를 팔았다.
매출의 100%는 우리가 추천하는 상품에서 나온다. 우리가 미국에 200만 명이 넘는 실제 고객을 확보하고 있으며 700개가 넘는 브랜드를 취급한다.
당신이 장바구니에 집어넣은 블라우스에 잘 어울리는 값비싼 벨트도 사라고 권유하는 '엡셀링' 수법도 사용하지 않고, 전에 당신이 산 적이 있다는 이유로 특정 브랜드를 강매하지 않으며, 당신이 웹브라우저에서 구경하는 패턴을 보고 깜찍한 검은색 드레스를 살 것이라고 예측하지도 않는다. 이런 방식들은 실제 구매로 연결되는 비율이 낮다. 그 대신 우리는 데이터와 머신러닝을 인간의 전문적인 판단력과 결합해 개성 있고 개인적인 아이템을 추천해준다.
데이터 과학은 스티치픽스의 기업문화와 엮여 있는 정도가 아니다. 우리의 문화 그 자체다. 전통적인 조직구조에 데이터 과학을 추가했다기보다는 데이터과학을 중심으로 사업을 시작했고 회사의 알고리즘을 고객의 필요에 맞춰 구축했다. 현재 80명이 넘는 데이터과학자를 고용하고 있으며 이들 중 대부분은 수학과 신경과학, 통계학, 천체물리학과 같은 정량적인 분야의 박사 학위를 갖고 있다. 데이터과학 부문은 나에게 직접 보고한다. 스티치픽스는 데이터과학 없이는 존재하지 않는다. 아주 심플하다.

[유사 업체]
해외. 개인화된 온라인 부티크를 표방하는 ‘글림스’의 경우 주문자의 소셜미디어를 주로 분석한다. 페이스북에서 누른 ‘좋아요’나 친구의 수,
핀터레스트에 올린 사진 등을 통해 취향을 유추하고 이에 맞춘 카탈로그를 제작해 제시하는 식이다.
국내. 네이버가 최근 선보인 이미지 검색 서비스 ‘스마트 렌즈’도 그중 하나다. 이 서비스는 제품 사진을 찍으면 유사한 상품을 추천해 준다.
11번가는 2014년부터 개인화된 큐레이션 서비스를 목표로 조직을 정비해 왔다. 현재 개발인력은 130명으로 이 중 30명이 AI 전문가다. 아직 걸음마 단계지만 지난 3월엔 AI 쇼핑챗봇 ‘바로’를 선보이기도 했다.
바로의 채팅창에 원하는 걸 적으면 간단한 응대와 제품 추천이 가능하다.
- 출처: 1. HBR MAY-JUNE 2018, 카트리나 레이크 Katrina Lake, 2. 중앙일보 개인 맞춤형 ‘큐레이틸’ 유통 패러다임을 바꾼다(2017.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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