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이월드, 네이버, 티스토리, 이글루스, 페이스북 등 여러 플랫폼을 떠돌아 다녔습니다. 공부 기록을 남기고 자료를 저장하고 그럴듯한 글들을 좀 써서 남겨놓고 싶었습니다. 사람들과 소통도 하고요. 하지만 그저 며칠 간 조금 끼적이다 스스로 낡아버리는 게 고작이었습니다. 실력은 제자리, 자괴감만 커졌습니다. 결국 어디에도 정착하지 못했습니다. 의지나 열망이 부족했던 탓일 겁니다. 하지만 조심스레 주장하건대, 동기나 유인을 확충하기 어려운 것 또한 문제이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방금 말한 의지와 동기는 서로 다른 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달리 말해, '원인'에는 적어도 두 종류가 존재하는 듯 합니다. 하나는 의지나 열망 같은 직접적인 원인입니다. 이 원인은 특정한 결과로 향하는 길을 열어젖힘으로써 이후의 사태가 진행될 수 있는 점근선을 그려놓습니다. 이렇듯 폭발적이지만 단기적인 효과를 발휘한다는 특징을 가집니다. 하고자 한다고 저절로 다 되는 건 아니니까요. 예를 들어, 제게 블로그를 새로 개설하는 일은 글쓰기에 대한 순간적이고 강렬한 의지와 열망에서 비롯되곤 했습니다. 오점 없이 완벽하게 쌓아올려진 텍스트의 산을 꿈꾸고 있었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해나가야 할 것인지도 정해져 있었습니다. 그저 꾸준히 공부하며 써나가면 됩니다. 하지만 의지(열망)라는 원인은 처음처럼 지속되기 어려운 탓에, 이런저런 일로 한번 두번 못 쓰다 보면 결국 실패로 귀결되곤 했습니다. 약간의 성근 텍스트와 무력감, 열등감, 후회 등만 남게 되었습니다.
그런 까닭에 의지 이외의 다른 요소가 필요하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그 요소가 반드시 의지의 내용과 인척 관계에 있을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다르게 말해보자면, 학술적 글쓰기의 완숙을 바란다 해서 그 글쓰기의 과정이 매번 학술적 목표에만 결부될 필요는 없다는 뜻입니다. 좋은 글을 쓸 때마다 다른 사람으로부터 받을 수 있는 관심, 거기서 비롯되는 쾌감이 실제로는 학술적 글쓰기의 매 과정을 이끌어 나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듯 '비-학술적인' 행위들이 누적되어 결국 '학술적인' 성숙을 이끌어낼 수도 있는 것입니다. 이 예시에서 타인의 인정을 바라는 욕구는 학술적 글쓰기의 완숙이라는 근엄하고 진지한 목표와는 다소 거리가 있을 수 있습니다.
물론 처음부터 학술적 글쓰기의 완숙과 인정욕구가 중첩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저의 요점은 만일 그렇지 않았다 해도 그 자체를 문제삼을 수는 없으며 그래서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저 근엄하고 진지하며 덩치가 큰 목표 뿐이라면 금방 힘이 빠지는 법이니까요. 실제로 학업을 지속하는 사람들이 단지 그 읽고 쓰고 말하고 생각하는 과정에서 얻는 지적 쾌감을 이유로 이 경제성 떨어지는 산업에 자신의 삶을 투여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지적 즐거움에 충실한 생활이란, 투자한 자원과 에너지를 언젠가 회수할 수 있을 거라 기대하기조차 애매모호한 비합리적 삶의 방식입니다. 그러나 그 '간접적인' 원인이 없다면 인류의 지적 누적과 성장 같은 과업들(이토록 '직접적인' 문명의 원인이라니!) 또한 애초에 성취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따라서 의지가 열어놓은 길을 따라 꾸준히 전진할 수 있는 사소하고 습관적인 간접적 원인, 즉 '준-원인' 또한 존재하는 것입니다. 의지(열망)를 활용하여 무엇을 하고 싶다거나 무엇이 되고 싶다는 식으로 선언하기는 오히려 쉽습니다. 정말 어려운 것은 의지한 바를 현실화해 나가는 일입니다.
일반화해서 말하자면, 이 준-원인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관념론보다는 유물론의 관점이 훨씬 용이한 것 같습니다. 더 세심한 고민이 필요하겠지만 의지는 관념의 작용에 가까워 보입니다. 앞으로 나아가지 않고도 꿈은 꿀 수 있습니다(물론 누가 어떤 꿈을 꿀 수 있는가는 그의 계급과 같은 보다 '유물론적인' 요소들이 크게 작용합니다).
준-원인의 경우에는 사정이 다릅니다. 일련의 구체적 행위를 통해 의지의 내용을 실현하는 일은 생각만으로는 되지 않습니다. 동기부여를 위해서는 굳은 다짐 따위가 아니라 그것이 촉진되는 여건을 조성할 필요가 있습니다. 당장 학과시험이 목전이라도 포식해서 배가 부르고, 방은 덥다 못해 후끈하고, 책상 바로 옆에는 푹신한 침대가 있고, 앉아있는 의자까지 불편하다면 빈틈없는 시험준비를 기대하기란 어려운 법입니다.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짐을 싸서 집을 나가 도서관으로 가는 일일 것입니다. 이것은 특정 결과를 유도할 수 있는 일종의 강제 속에 스스로를 위치시키는 일입니다. 집이 편해 공부가 안 되기에 도서관으로 자리를 옮기는 학생은 준-원인의 작동원리를 이해하고 있는 셈입니다.
저의 글쓰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의지의 느슨한 고리를 채워줄 저 자신의 준-원인을 마련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학습에 대한 열망만으로는 불충분했다고 생각됩니다. 필요한 것은 의지의 길을 꾸준히 따라갈 수 있는 어떤 여건이었습니다. 그 여건을 찾아 스스로를 위치시키는 일이었습니다. 지금까지의 저는 이 부분에서 무척 취약했다고 생각됩니다. 준-원인의 결여에 대한 문제의식은 있었습니다. 다만 어느 돛대에 저 자신을 묶어야 할지 알지 못하고 제자리를 맴돌기만 했습니다.
그렇게 방황하던 중 '스팀잇'이라는 플랫폼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흥미를 끌었던 건 보상 그 자체보다도 보상이 포함된 전체 시스템의 존재였습니다. 아직 스팀잇의 세부적인 작동방식을 다 파악하고 있지는 못하지만 거기 자리한 어떤 까다로움이 오히려 플랫폼의 정확하고 효과적인 작동을 가능케 한다는 사실은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스팀달러든 스팀파워든 그것은 구체성의 무게를 지닌 '물리적' 효과에 결부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 구체성의 무게가 어떤 방식으로든 저에게 공부를 강요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해봅니다. 전공의 특성상 특히 관념의 뒤죽박죽인 세계에서 허우적대기 쉬운 입장에서 스팀잇이라는 체계는 매력으로 다가옵니다.
활용 가능한 준-원인에 한 걸음 가까워졌다는 확신이 한낱 섣부른 기대라든지 또 반복되는 허세에 불과하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물론 여기에 순환논증의 위험성이 걸려 있다는 사실쯤은 알고 있습니다. 스팀잇을 사용하고자 하는 의지 자체는 어떤 준-원인에 결부되는가? 준-원인이 그 자체로 의지의 대상이라면 또 다시 준-원인의 준-원인이 필요한가? 이러한 순환이 실제로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지 싶습니다만 적어도 순환고리의 특정 지점에서 불쑥 사슬을 끊고 튀어나와 스스로 준-원인의 단 하나의 원인이 되는 시점이 존재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복잡한 이야기로 들리겠지만, 사실 이것이 우리가 흔히 '결단'이라고 불리는 것입니다. 왜 하필 지금 여기서 결단인가, 라는 질문에는 대답하기 어렵지만 어쨌든 그런 '현상'이 관찰되는 것은 사실이니까요. 저는 스팀잇의 체계성에서 무언가 이전과는 다른 원인의 고리를 느꼈고 거기에 스스로를 걸어보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이것이 성실한 글쓰기에 대한 '마지막' 시작이고자 합니다. 천천히 그러나 치열하게 나아갈 줄 알고 싶습니다.
어서오세요!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 ) 앞으로 성장하시는모습 꾸준히 지켜볼테니 열심히하셔야되욧 !
감사합니다! 열심히 할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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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반가워요.
반갑습니다.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마지막 시작 응원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