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당신은 전생을 얼마나 믿나요 ㅡ <아이 오리진스 (I Origins, 2014)>

in #sct5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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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전생을 얼마나 믿나요

아이 오리진스(I Origins, 2014)


과학적 증거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것들이 있다. 그리고 2020년, 우리는 논리적인 타당성을 요구받고 요구하면서도 거리에 즐비한 타로 집에 들어가 내년의 운세를 묻는다.

여기, 한 남자가 있다. 눈으로 직접 보아야 믿고, 과학적인 증거가 뒷받침되어야만 고개를 끄덕이는 이안 그레이(마이클 피트)다. 진화론의 증거를 눈으로 좇겠다며 몇 만개의 종을 탐색하고 쥐의 눈을 치료하며 끊임없이 실험하는 이 남자가 그토록 사랑하는 연인은 신기하게도 정반대의 사람이다. 종교를 믿을 뿐만 아니라 "당신을 본 순간 내가 아는 사람이라고 느꼈어요. 전생에서 인연이 있었다고나 할까요?"라는, 이안의 입장에서는 허황된 얘기를 하는 소피(아스트리드 베흐제 프리스베). 그 둘은 기름과 물처럼 전혀 섞일 리가 없어 보임에도 정반대의 매력에 빠져 뜨거운 사랑을 시작한다. 입을 열 때면 신념으로 번번이 충돌이 일어나지만 그럼에도 그들은 가치관을 뛰어넘는 사랑에 결혼을 결심한다.


짧지만 강렬한 그들의 연애 과정을 보고 있노라면 사랑이 이토록 매혹적일 수 있다는 느낌까지 자아낸다. 그러나 관람자는 갈등과 사랑을 반복하는 그들의 연애 서사에 매료되자마자 빠르게 탈출된다. 그들이 혼인 신고를 하겠다며 즐겁게 손을 꼭 붙잡고 달려간 사무소에서는 "마음이 변할 수 있으니 24시간이 지나면 오라"라는 답변을 받는다. 그들은 직원의 현실적인 답변에 단발적 충동으로 야기된 짜릿함을 서서히 잃는다. 그러고 나서 이안 그레이는 그의 연구 동료 카렌(브릿 말링)에게 전화를 받게 된다. 통화의 내용은 앞을 보지 못하지만 눈의 구조가 나타날 수 있는 PAX6의 유전자를 지닌 생물체를 찾아냈다는 소식. 이안 그레이에게 이 얘기는 엄청난 과학적 결실이며 그토록 찾아 헤맸던 빛의 조짐이기도 하다.

이안은 즉시 소피를 데리고 그의 연구실로 향하지만, 그곳에서 그들은 또다시 말싸움을 겪는다. 소피는 실험체로 놓인 벌레들의 사체를 보며 "매일 날 내버려 두고 작은 벌레를 고문했던 거야?"며 불편함을 감추지 못한다. 그렇게 이안과 소피는 벌레를 통해 신념의 차이를 한 번 더 확인한다. 소피는 빛을 보거나 느낄 수 없는 벌레를 짚으며 빛을 보고 느끼지 못하더라도 빛이 존재해 이들을 감싸면 돌연변이가 생기지 않을까 하는, 그러니 세상의 모든 것을 알고 있으며 우리 바로 위에 있으면서도 어디에나 존재하는 것을 아는 영혼의 감각이 생기지 않을까 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들은 늘 그래 왔듯 신념적 충돌을 육체적 화해로 발전시킨다. 그렇게 키스를 나누던 도중, 소피의 실수로 이안의 눈에 포름알데히드가 쏟아진다. 그의 동료인 캐런을 부른 덕에 다행히 응급 처치에 성공하지만 소피는 가장 사랑하는 이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무기력과 질투심에 서먹해진 그들은 다시 위기를 겪는다. 미묘한 어색함 속에서 그들은 소피의 집으로 향하지만 그들은 영원히 집으로 함께 다다를 수 없었다. 엘리베이터 고장으로 탈출하는 과정에서 소피의 다리가 잘려 과다출혈로 사망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절규를 하며 상심에 빠져 하루를 허우적거리는 이안에게, 든든한 연구 동료였던 캐런은 이안의 곁에 머물며 감정적 동료의 역할까지 해낸다. 그렇게 그 둘은 인연을 맺고 임신까지 이르지만, 자폐증이 의심된다는 의사의 말에 아기를 데리고 연구를 시작한다. 우연의 일치인지 이안과 캐런이 그토록 시행했던 실험과 비슷한 과정이다. 바로, 아기의 시선을 좇아 눈의 끌림을 추적해 지각을 검사하는 과정.



그러나 실험 도중 이안과 캐런은 이상한 기분에 휩싸이고, 실험을 중단하기까지 이른다. 그렇게 아이의 시선이 향했던 장소를 찾아가는 이안에게는 커다란 기시감이 찾아온다. 이내 의사의 실험이 자폐증 실험이 아닌 '인간의 홍채 구조가 같다면 그 사람의 환생이 아닐까'라는 문제의 답안을 찾기 위해 아이를 이용한 게 아니겠냐는 물음이 생긴다. 그렇게 이안은 석사 시절 찍었던 홍채들을 시스템에 돌리고, 인도 어딘가에 소피의 홍채 구조와 동일한 아이가 있음을 발견한다. 소피와 동일한 홍채 구조를 가진 아이의 이름은 살로미나. 이안은 그녀를 데리고 소피의 환생이 맞는지 몇 가지의 실험을 거치지만, 44%라는 확신할 수 없는 숫자로 끝이 난다.


그렇게 아쉬운 발걸음을 뒤로하고 살로미나와 함께 숙소를 나오지만, 어떠한 사건을 계기로 이안은 소피와 동일한 홍채 구조를 가진 살로미나가 어쩌면, 소피의 기억을 지닌 환생의 존재가 맞다는 확신을 한다. 소피와 끊임없는 말싸움을 할 때에도 전혀 수긍하지 않았던 영적 존재에 관한 믿음의 시작점이다. 이안은 그렇게, 소피와 있을 때는 열지 못했던 마음의 문을 살로미나를 통해 활짝 열어 보인다.

넓디넓은 인도 한복판에서 소피를 찾도록 도운 프리야 바마(아치 판자비)는, 살로미나를 찾기 전 이안에게 달라이 라마의 말을 인용하며 이렇게 묻는다.



"한 과학자가 어느 날 달라이 라마에게 질문했어요. 만일 어떤 과학적 사실이 당신의 믿음이 틀렸다는 것을 입증하면 어떻게 하겠느냐? 한참 생각한 후 그가 말하길, 난 모든 보고서를 읽어보고 모든 연구를 확인해보고 진정으로 사물을 이해하려 노력할 것이고 그래서 최종적으로 내 정신적 믿음이 틀렸음을 과학적으로 입증하는 증거가 만일 확실하다면 내 믿음을 바꿀 것이오. 만일 정신적인 어떤 것이 당신의 과학적 믿음이 틀렸음을 입증한다면 어떻게 하겠어요?"

명명백백히 이해되는 과학적 증거를 바탕으로 사물을 이해하던 이안에게는 한 번쯤 자신의 가치관을 돌이켜보는 기회를 제공하고, 살로미나와의 사건을 계기로 그는 처음으로 그렇게 부정하던 영적 존재가 어쩌면 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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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리적인 증거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주장에 있어 크나큰 취약점이 되는 시대다. 하루가 지나면 세상은 더욱 다양한 발견으로 채워지고, 몇 백번의 실험 끝에 동일한 결과가 나와야 그 결론을 사실로 인정하기도 한다. 그렇게 쌓이고 쌓인 과학적 입증 결과는 우리가 진정 타인에게 자신 있게 알릴 수 있는 '사실'의 근간이 된다. 그렇기에 내가 보고 느낄 수 없었던 것들은 허구로 규정한다. 그렇게 종교의 힘은 서서히 약해지고, 타로나 사주를 믿는 이들은 바보 취급을 당한다.

그런데 여기서 전생을 운운한다면? 아마 분위기는 싸해질 것이고 공상과 망상에 빠진 비현실적인 사람으로 도태될 가능성이 높다. 영화는 묻는다. 시각적으로 증명된 사실만을 믿는 이에게 질문한다. 영적 존재를 믿으라는 것은 전혀 아니겠으나, 어쩌면 단단히 굳어진 가치관에 작은 물방울을 떨어뜨린다.

인간은 육체가 있기에 자신의 시각에 의존해 이해에도 한계가 부딪힌다는 말이 있다. 인간의 홍채 구조가 같은 이들이 윤회사상으로 일부분이나 비슷한 기억을 공유한다는 사실은 SF적 요소가 가득한 얘기이나, 그렇다고 아예 헛된 망상으로 치부할 수는 없다. 그렇다. 세상에 확실한 것은 없다. 우리는 계속 세상에 물음을 던져야 하고, 시각에만 국한된 시선을 버려야 한다. 전생은 있다고도, 없다고도 단언할 수 없다. 인간은 계속해서 물음을 던지고 찾아가는 과정 속에서 유한하다. 당신은 전생을 믿는가. 어느 정도로 믿는가. 허황된 얘기는 가짜로 치부되는 세상 아래 당신은 어느 정도로 환생을 믿고 어느 정도로 전생을 신뢰하는가.

나는 당신의 생각이 궁금하다.


Eye Origins?
I Origi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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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 믿음이 강한 저는 꼭 봐야할 것 같습니다~^^
사실 정신적인 어떤 것이 최근에는 과학적으로 증명되고 있죠~!

저도 영적 믿음이 강한 편이어요.
꼭 과학적으로 증명하지 않더라도 이해되는 영적 믿음.. ㅎ_ㅎ 신기합니다.
긴글 읽어주시고, 댓글 남겨주셔서 정말 감사드려요 파치아모님!

영화가 어렵네요. ^^

오랜만에 포스팅 보니 좋습니다.
그동안 잘 지내셨죠?

건강하시기를...

사과님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마주하니 정말 좋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길 바라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