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트로츠키: 쇠도 너무 강하면 부러진다.

in #russianrevolution7 years ago

드라마 트로츠키Троцкий : 쇠도 너무 강하면 부러진다.

오랜만에 인생드라마 하나 제대로 건졌다. 강렬한 록 음악, 거친 대사와 유혈이 낭자한 격투신 등, 갱스터 물을 연상시키는 마초적이고 남성적인 매력이 물씬 풍긴다. 그런 의미에서 나의 또 다른 인생 미드 보드워크 엠파이어가 연상이 되면서도 그와는 다른 매력을 가지고 있다. 1920년대 미국 암흑가를 장악하려는 아일랜드와 이탈리아 갱단들의 역사를 그리는 보드워크 엠파이어는 폭력, 살인, 암살, 납치와 같은 자극적이지만 금방 잊혀지는 '하드코어적' 성향이 다분했다면, 이 드라마 트로츠키는 본인이 실현 시키려고 하는 이상향과 그것을 추구하는 과정 속에서 부딪치는 자신을 둘러싼 외부세계와의 갈등 그리고 내적인 갈등이 잘 그려져 있으며 보는 이로 하여금 감정적 여운을 계속 남겨준다.

(하지만 너무 남성적이고 마초적인 드라마의 특성상 상대적으로 그리고 다분히 여성비하적인 측면도 존재한다. 특히나, 리비도(Libido)와 인간심리학의 상관관계를 주장한 대 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와 설전을 주고 받은 후, 미래 부인이 될 나탈리아 여사한테 « 러시아에 있는 민중들은 우리네 일반 여성과도 같소, 수동적인 여성이 강하고 카리스마 있는 남성이 나타나면 자신의 몸을 허락하면서, 이끌어 주길 고대하듯, 러시아에 있는 무지몽매한 민중들도 그들을 이끌어줄 강하고 능력있는 지도자를 기다리고 있소. 그래서 혁명이 필요한 것이오» 라는 장면이 있고 권력과 카리스마 있는 트로츠키와 엮이려는 여성혁명가들의 모습은 다분히 여성을 기회주의적 그리고 수동적인 존재로 부각하는 측면이 강하기에 현재 미투운동으로 ''여권''이 뜨거운 감자가 된 한국에서 바로 방송불가 판정을 받기에 충분하다고 보여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러시아 역사연구자의 입장에서 머리 속에 있는 지적 호기심이나 흥미를 끌어당긴 측면과 더불어서, 거대한 이상에 사로잡혔던 트로츠키라는 한 남자가 추구하는 '욕망'의 서사시라는 스토리가 공감대를 후려쳤기에 극찬을 하지 않을 수 가 없다.

드라마는 1940년 트로츠키의 정치적 망명지였던 멕시코에서 프랭크 잭슨(스탈린이 트로츠키 암살을 위해 보낸 NKVD요원 라몬 메르카데르Рамон Меркадер의 가명)와의 인터뷰에서 회상 신으로 진행이 된다.

내가 드라마-영화 전문평론가는 아니지만, 굉장히 상징적인 대목은 트로츠키의 매 회상 신마다 무장기차Бронированный позед가 달리는 모습이 과거 트로츠키의 일생에서 중요한 순간과 오버랩이 되는 것인데, 이것은 적군Красная армия의 총사령관이자 혁명가 트로츠키의 욕망과 이상을 상징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주변을 살피지 않고 오로지 앞 만 보고 달리는 기차처럼, 트로츠키의 인생여정도 주변을 살피지 않고 오로지 세계혁명Мировая Революция과업의 실현을 위해서 쉬지않고 달렸다는 것을 보여준다. 명석한 두뇌와 논리, 비전을 가지고 있지만 호감을 가지고 있던 여인 앞에서 어리버리한 나름 «인간미»가 있었던 트로츠키에서 회를 거듭할 수록, 점점 본인의 혁명과업에 매몰 돼 «혁명의 악마»로 변해가는 장면은 백군토벌 기간 중, 기차에 쓸 땔감을 구하기 위해 정교도 전통을 따르는 일반농민들의 무덤에서 십자가를 뽑아버리고 저항하는 사람들을 그냥 쏴 죽여 버리는 장면, 자식들이 아픈데도 불구하고 임시정부를 전복하기 위해, 가족들 마저 무시해버리는 인간성이 결여된 «혁명의 악마»가 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에서 나타난다.

관전포인트는 정말 다양하다. 8부작으로 구성되어있는 이 드라는 무엇보다도 러시아 혁명을 통해서 소련정권의 승리자 레닌, 스탈린에 밀려 상대적으로 주목을 덜 받았던 트로츠키의 모습을 디테일 하게 다룬 것, 특히나 트로츠키의 관점으로 본 ''러시아 혁명사''이다. 소련시절을 겪은 50~60세가 넘으신 교수님들께 « 소련시절 당시 트로츠키는 어떤 인물로 평가 받았습니까?» 라고 물어보면 하나같이 다 부정적으로 대답했다. 그런 의미에서, 제작자가 다양한 모습의 트로츠키를 보여주려고 해석한 측면도 매우 마음에 든다. 레브 다비도비치 브론쉬테인에서 트로츠키라는 닉네임의 모티브를 주었던 오데사 교도소 소장과의 면담, 두번째 부인 나탈리야 사도바Наталья Садоба 여사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 긴장하고 고군분투 하는 모습, 죽음을 앞두고 자식들을 그리워하는 아버지의 모습은 그 동안 역사책을 통해서만 알았던 냉혈한 트로츠키의 모습 만이 아닌, 인간 트로츠키의 모습을 느껴 볼 수 있는 대목이다.

드라마를 보면서 정말 ''지린다''라고 느낀 대목은 트로츠키의 운명의 라이벌이자 숙적 «코바동지» 스탈린과의 대립 각을 묘사한 것이다. 로마노프왕가의 붕괴와 러시아 혁명이라는 혼돈의 시기가 잉태한 이 두 명의 풍운아들은 달라도 너무 다르고 상극이어도 너무 상극이었다. 지적이고 샤프한 외모,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도 코너로 몰아붙일 정도의 논리력, 민중을 사로잡는 웅변술과 카리스마를 가지고 있는 그야말로 인텔리의 갑of 갑인 트로츠키의 모습에 비해서, 스탈린은 코카서스 남성특유의 거칠고 억센 모습, 그리고 지방출신이라는 게 극명히 들어나는 악센트 섞인 러시아어, 우중충하고 후줄근 한 모습으로 극명하게 대비된다.

네임벨류면에서도 아주 큰 차이가 있다. 소련붕괴 직후, 접근이 금지된 문서고 자료를 이용해 레닌, 스탈린, 트로츠키 등 주요인물들의 전기를 연구한 역사학자 드미르트리 볼코그노프 Д.А Волкогнов.선생님은 본인의 저서 «Троцкий Демон Революции»에서 혁명가로서 혁명초창기라고 볼 수 있었던 1905년 피의일요일부터 유럽에서의 망명생활 동안, 트로츠키의 명성은 러시아를 넘어 뉴욕, 파리, 런던, 베를린까지 트로츠키의 목소리가 퍼질 정도로 그의 영향력은 세계적인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스탈린에 대해 묘사하기를, 볼코그노프 선생님은 또 다른 본인의 저서 소련의 7지도자”Семь Воздей''에서 «----1917년 10월 혁명 전 까지 주가시빌리는 그저 레닌주변의 많고 많은 볼세비키들 중 하나였다. 이 시기 레닌이 스탈린에게 정말 out of 안중이 였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 1915년 레닌이 지노비에프Г.Е Зиновиьев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지노비에프 동무 혹시 코바동무 성이 어떻게 돼는지는 아십니까?'라고 쓰기도 했다»란 대목을 통해서 이두명의 풍운아들이 초창기 네임벨류면에서 큰 차이가 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드라마 속에서 정말 대박이였던 장면은 트로츠키와 스탈린이 처음만난 1903년 브루쉘에서의 회동Съезд를 묘사한 것이다. 트로츠키가 러시아 혁명은 오로지 «행동»에 의해서만 실현될 수 있다는 연설을 하고 스탈린을 포함한 모든 혁명가들이 «사이다 발언»을 해준 트로츠키에게 존경심을 보내며 악수를 청한다. 이 과정에서 트로츠키는 악수를 청한 스탈린을 그냥 무시하고 지나쳐버리는 장면이 미래 두 사람의 관계를 암시해준다. 이는 스탈린의 회고록에서도 «트로츠키가 항상 연설을 하고 난 뒤에는 그의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질문을 하려 득달같이 달려왔다»고 회상하기도 했다.

혁명가로서 커리어나 영향력면에서 두 인물간의 극명한 대조가 돋보이기에 더 흥미롭다. 어떻게 트로츠키가 스탈린한테 권력싸움에서 졌는가... 이 대목은 드라마에서 트로츠키의 대사에 잘 묻어난다. « 이것은 부메랑과 같다. 나는 내 스스로 골렘을 창조했고, 그 골렘은 자신의 창조자가 죽을 때까지 계속 쫒아 올 것이다.»

꼰대처럼 mansplain할 의도는 없지만, 러시아역사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스탈린의 숙청작업이 너무 임펙트가 커서, 소련시기 정치적 반대파에 대한 테러하면 곧 잘 스탈린을 연상시키지만, 사실 이는 트로츠키가 기반을 닦아놓은 것이다. 혁명이후 폐지되었던 사형제도를 다시 도입한 것도 트로츠키이고 그것을 통해서 ''공포의 규율''을 통해 오합지졸의 적군을 조련했으며 내부적으로 자신의 방해물을 제거하기도 했다. 드미트리 볼코그노프 선생님은 매우 재밌는 표현을 해주셨는데, 레닌은 볼세비키 혁명의 고무자 Вдохновитель, Еncourager 역할을 했고, 트로츠키는 그것을 자극시키는 Возмутитель, Stimulator 자극기의 역할 그리고 스탈린은 그것을 집행하는 집행자 Испольнитель, Executor 역할을 했다고 썼다.

드라마의 마지막 회는 러시아 내전기 이후, 모스크바 내부 정치조직을 자신의 사람으로 채워 결국 스탈린이 레닌의 후계자가 되고 트로츠키는 망명을 하는 장면이 그려진다. 그리고 회상신이 끝나고 트로츠키는 프랭크 잭슨에게 곡괭이로 머리를 가격 당해 사망하는 장면으로 끝난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단순히 러시아역사연구자가 아니라 그냥 일반 남자로서 이 드라마는 울림을 주는 메시지가 있다. 스탈린에 비해서 너무 잘났고, 혁명가로서 커리어의 출발선이 매우 극명하게 차이 났던 정말 잘났던 트로츠키의 이야기는 ''쇠도 너무 강하면 부러진다''란 말을 떠올리게 한다. 나는 소련사 전공자도 아니고 스탈린에 대해서 상세하게 알지도 못하고 옹호할 생각도 없지만, 트로츠키의 인생은 드라마 속에서 묘사했듯 정말로 주변과의 소통은 안한 채 오로지 자기 생각만이 옳다라고 맹신하는 천상천하, 유아독존의 모습을 보여준다.

드라마에서 정말 인상적이었던 장면이 있는데, 백군토벌기간 동안, 트로츠키로부터 본인의 의견이 묵살당하자 모욕감을 느낀 스탈린은 트로츠키에 « 트로츠키 동무, 우리 코카서스 지역에서 예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날 하늘을 날고 있는 독수리는 호숫가에서 여유롭게 수영하고 있던 오리를 발견하는데, 그때 독수리는 자신이 하늘의 제왕이고 오리는 날지도 못하는 미물이라는 것을 보여주려는 자기과시욕에 사로잡혀, 멋지게 하늘 높이 날아 연못으로 낙하해서 자신의 발톱으로 오리를 낚아채려 합니다. 이때 오리는 독수리가 오는 것을 미리 인지해서, 물 속으로 헤엄쳐 들어가고, 독수리는 오리를 잡는데 실패합니다. 이때 독수리는 자신 보다 하찮은 오리한테 당했다는 생각에 너무 화가나 더 강하게 낙하하기 위해서 하늘높이까지 올라갔다가 오리가 있는 호수로 다시 낙하를 합니다. 하늘 높이에서 너무 강하게 낙하한 독수리는 결국 자신의 가속도를 주체 못하고 호수 밑바닥까지 추락하고, 질식사해서 숨을 거두게 됩니다. 이 오만한 독수리처럼 되기 싫으시면, 내 앞에서 작작 좀 나대십시요.» 라는 대사를 스탈린이 던지는데, 이는 어떻게 보면 트로츠키의 최후를 암시하는 것 같아서 매우 흥미롭게 다가왔다.

자기 PR의 시대라는 미명아래 성장해오면서, 참 «위대하고 잘나신 선배, 후배, 동기분»들이 내 주변을 많이 스쳐 지나갔다. 트로츠키랑 비교할 것은 아니지만. 정말 하나같이 Big Mouth들 뿐 이었고 내용물 없는 시끄러운 빈 수레에 지나지 않았다. 그렇게 알차디 알찬 트로츠키도 이렇게 당했는데, 자기가 잘났다라고 떠드는 위대하신 분들은 이 트로츠키의 드라마를 보기를 추천해 드리고, 가끔은 입 닥치고, 주변을 관찰하면서 때를 기다리는 것이 낫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미야모토 무사시가 강조했듯, «가장 이상적인 학습은 아직도 내가 모르는 것이 더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매일 새로운 기술을 끊임없이 배워나가는 것이다». 겸손함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깨우치게 된다트로츠키.jpg스탈린 트로츠키.jpg스탈린.jpg청년 스탈린.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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