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에서 모든 배우의 움직임에는 이유가 있어야 한다. 그 이유가 합당해지면, 왜 그 한 공간에만 머물러야 하는지에 대해서 관객들은 의문을 달지않는다. 충분히 공감하고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그리고 그렇게 머물러야만 하는 배우의 심리를 자연스럽게 따라가고 동화 되어간다. 그 묘한 긴장감이 이야기의 밀도를 더할수록 연극적인 재미는 커질 수밖에 없다.
연극무대에서 올려질 이야기가 영화로 옮겨질 때 그 밀도감이 충분해진다면 영화를 통해 연극적인 재미까지 만끽할 수있다. “대학살의 신”은 그런 블랙 코미디이다. 한정된 공간에서 벌어지는 위선적인 우리들의 자화상을 보여주는 이 영화는 그런 연극적인 재미가 가득하다.
영화는 11살 재커리가 친구들과 다투다가 막대기를 휘둘러 이턴의 앞니 두 개를 부러트리면서 시작이 되고, 이 장면이 영화의 모티브이면서 영화의 마지막도 이 아이들의 모습으로 끝이난다. 아이들의 싸움을 해결을 위해서 한 거실에 모인 가해자 앨런부부와 피해자 마이클 부부, 교양있는 만남으로 시작이된 이들 부부의 이야기는 1시간 20분동안의 런닝타임동안 한 공간인 마이클 부부의 거실에서 대화만으로 이야기의 기승전결을 이뤄간다. 어른들의 위선적인 심리안에 피할 수 없는 갈등은 증폭되어 폭발하고 결국 더 이상의 가식도 위선도 없이 오로지 자신의 불행과 자신의 이야기에만 집중하는 인물들은 모두 자신의 맨모습을 드러내고야 만다
은근한 메시지를 전하는 광고세계에서 그 광고의 의도가 드러나게될 때 그 광고는 혐오를 주게된다. 솔직한 감정을 숨기고, 가식과 위선의 가면 아래에서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가면증후군. 사회적인 자신의 위치와 경제적인 부요에 대한 우월감, 정신적인 풍요와 자부심으로라도 살기위해 써야하는 가면. 그래서 본질을 잊어버리고 다른 사람과의 소통을 외면한채 자신의 이야기에만 집중하는, 정신적으로는 아이와 같은 현대인들의 나약한 자아상은 가면이 벗겨지는 순간 모두가 똑같은 처연한 모습일 수밖에 없다.
영화 중간 중간 앨런과 낸시는 “왜 우리가 계속 이 집에 머물러야만 하는건지 모르겠다” 고 중얼거리기도 하고 투덜거리기도 한다. 닫혀있는 공간안에서 맴도는 이 영화의 배경은 타인과의 소통은 외면한채 가면을 쓴채 자신의 이야기, 자신의 방에만 갇혀있는 우리의 자화상을 은유적으로 표현하고 있지 않은가.
영화의 마지막, 아직 열려있는 공간에 있는 아이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평범하게 화해를 하는 모습으로 영화의 마지막을 위트있게 비틀어 마무리한다. 하지만, 아무리 밀도있는 스토리라 해도 이런 영화일수록 배우들의 연기가 중요할텐데, 이 영화에 나오는 배우 4명은 마치 강호를 대표하는 무림의 고수들 같다. 현란한 그들의 명연을 보는 것이야말로 이 영화의 즐거움이라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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