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스 블룸은 철조망을 훔쳐 파는 등의 일을 하는 좀도둑. 우연히 사고 현장의 영상을 찍어 방송국에 파는 것이 돈이 된다는 것을 알고는 자신의 진로를 결정한다. 처음엔 전당포에서 구한 값싼 캠코더로 시작한 그이지만, 특유의 노력과 집념으로 점점 규모를 불려나가고....
무섭고 소름이 돋아야 정상인 영화겠지만, 내가 이 영화에서 받은 오싹함의 일부는 얼마 전 <라라랜드(2016)>를 극장에서 봤기 때문이었다. 밝은 색감으로 자아내는 상큼함, 다소간 씁쓸한 뒷부분을 제외하면 더없이 아름답고 찬란한 이 뮤지컬 영화 역시 같은 LA, 심지어 거의 같은 풍경을 배경으로 잡고 있었으니까.
이 영화는 어둡다. 낮이 나오지만, 그 낮조차도 어둡다. 분장인지, 아니면 어느 수준의 경지를 초월한 연기에의 몰입이 만든 자연스러운 다크서클인지를 헷갈리게 만드는 제이크 질렌할의 얼굴처럼.
루 블룸은 부지런한 사람이다. 학력과 출신은 일천하지만, 그런 자신의 처지에 불평하지 않고항상 매사에 노력한다. TV나 책, 인터넷 등 자신이 활용 가능한 모든 수단을 통해 배움에 몰두하고 명사들이나 감명 깊게 읽은 책의 구절을 외우며 그 가르침을 실제 자기 삶의 안으로 적용시키기까지 하는 보기 드문 사람이다.
정말 완벽한 사람이 아닌가? 한치의 거짓도 없는 이 묘사만으로 보면, 그 누가 루 블룸이라는 사람을 싫어할 수 있을까. 자기개발서나 여러 명사들을 통해 세상을 긍정적으로 사는 방법이 널리 퍼진 세상이지만,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그대로 따르는 기독교도가 드문 것처럼 루야말로 이 세상을 사는 현자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악당이다.
영화의 제목인 <나이트크롤러>처럼, 그는 밤을 기어다니는 악마이자 마귀에 가깝다. 그리고 그를 그렇게 만드는 것은 다름 아닌 요즘 세상이 긍정적이라 떠드는 수많은 복음들이다. 목표를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며, 항상 신념을 잃지 말고 매사에 열정을 가지고 긍정적으로....
이 영화가 이야기하는 주제이자 루가 성공하는 수단은 미디어다. 진실을 전달하는 미디어의 뒷면에 관한 냉정하고 적나라한 고찰. 하지만 살인마의 도구가 될지언정, 미디어를 비추는 적나라한 시선은 <나이트크롤러> 라는 영화가 주는 공포의 근원이 되지 못한다.
노골적으로 피를 튀기는 숱한 영화보다도 이 영화가 오싹하게 느껴지는 이유. 그것은 위에서 말한 루의 ‘덕목’에 있고 생각한다. 현대 사회, 여러 세대를 아울러 당연한 덕목처럼 떠받들어지는, 노력과 열정에 대한 구절들. 그 구절들이 옳다는 것을 믿고 있으면서도, 의지와 노력부족으로 실천에 옮기지 못하는 우리에게 루는 일종의 영웅이나 다름없다. 그를 별종으로 생각하면서도 결국엔 루에게 매혹된 방송국의 여자 앵커는 영웅에게 주어진 히로인, 영화가 진행되는 내내 울려퍼지는 가슴 벅찬 음악이 그의 활약을 두드러지게 한다.
하지만 우리가 실제로 두 눈으로 확인하는 영웅의 모습은, 그 성공의 과정은 우리가 그리던 모습과는 거리가 먼 것이다. 자신이 정확하게 외워 읊는 구절 그대로를 행하고, 심지어 자신의 목표를 이루어 떳떳히 성공했음에도. 루는 찬란히 빛나는 우상이 아닌, 밤을 기어다니는 괴물로서 화(俰)한다.
아니, 처음부터 그랬을런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렇기에 복음들을 충실하게 수행하고, 성공했을런지도. 마지막 장면에서 총을 든 강도가 루만은 쏘지 못하고 응시했던 이유 역시, 살인자인 자신조차 뛰어넘는 완벽한 포식자를 마주한 약자의 전율이 아니었을지.
마지막 장면에서, 마침내 직원들을 거느리게 된 루가 말한다. ‘단연코, 저는 제가 하지 못할 일들을 여러분들에게 시키지 않습니다.’ 영화를 본 관객들은 이것이 진심임을 안다. 그저 입만 산 오늘날의 수많은 열정 예찬론자들과 달리, 루 블룸은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는 사람임을.
또 반드시 그렇게 행동할 것임을.
하지만 그렇기에 소름끼치는 것이다. 우리들이 그토록 옳고, 멋지리라 생각한 영웅의 모습은 결국 밤을 기는 괴물이었기에. 결국 괴물은 승리를 거두고 말았기에.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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