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에 앞서 이 글은 뮤지컬 [잭 더 리퍼]의 인물에 대해 제 개인적인 생각을 담아 분석한 글로써 객관적인지 않을 수도 있고, 뮤지컬 내용에 대해 스포일러가 다수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후에 흥미진진하게 공연을 관람하시기 위해서는 이 글은 안 읽으시는 게 좋습니다! 이 글은 이미 뮤지컬 [잭 더 리퍼]를 보고 오신 분들의 회자와 이해를 좀 더 돕기 위한 글입니다.
앤더슨은 극 중에서 잭 더 리퍼가 저지른 연쇄살인사건을 수사하며 잭의 행방을 좇는 런던의 수사관이다. 앤더슨은 기자 먼로에게 특종거리를 줄 것을 결탁하고 뇌물을 받고, 마약을 항시 달고 사는, 현재에 빗대어 본다면 절대로 앤더슨은 형사로서 부적절한 행동양상을 주로 보인다. 맞다. 앤더슨은 형사로서 상당히 부적절한 인물이다. 사건에 대한 통찰력이 부족했고, 자신을 속이는 뻔한 거짓말에 속아 다니엘이 잭이라는 것을 눈치 채지 못했고, 잭이 죽었는지 아닌지에 대한 확인 또한 간과했다. 그리고 후에는 자신의 개인적인 이유 때문에 잭의 정체를 일부러 은폐한다. 하지만 앤더슨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당대를 살아갔던 사람들 중 가장 ‘인간적인 모습’을 갖고서 ‘인간적인 판단’을 했던 인물이었다.
이것을 이해하려면 당대의 영국 런던과 화이트채플의 모습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다. 1880년대의 영국은 실업과 가난이 만연했다. 19세기 중반 영국은 수많은 아일랜드 이민자들로 넘쳐났으며, 이들은 영국 각지의 대도시들로 밀려들었는데 런던도 예외는 아니었다. 아일랜드 이민자들이 런던 동부 끝자락에 정착한 뒤인 1882년부터는 동유럽과 러시아에서 유태인 난민들이 같은 지역으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영국 런던의 동쪽 끝이라고 할 수 있는 외곽에 위치하고 있던 화이트채플은 심각한 인구 과밀지역이 되었다.
하위계층 지역이었던 화이트채플에는 가죽공장이나 양조소, 정육소 등이 모여 있었다. 16세기 후반부터 경찰을 포함한 공권력의 통제가 거의 미치지 않았으며, 일자리 부족과 취약한 주거환경으로 갖은 문제를 겪고 있었다. 직장을 구하거나 집을 얻는 것이 어려워지자 수많은 빈민이 양산되었으며, 17세기 이후에는 거대한 빈민가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이 지역에 사는 많은 남자들은 실업자이거나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일용직 노동자들이었으며, 여성들은 생존을 위해 몸을 팔게 되었다. 1888년 10월 런던 경찰은 화이트채플 지역에 62개소의 매춘업소가 존재하며 1200명의 여성들이 매춘업에 종사하고 있는 것으로 집계했다.
화이트채플에서는 강도와 폭력사건, 알코올 의존으로 인한 병폐가 끊이지 않았다. 또한 경제 악화로 지속적인 사회적 긴장감이 야기됐다. 1886년과 1889년 사이에는 시위가 자주 발생하였는데, 1887년 11월 13일의 시위 때는 공권력이 개입하여 분위기가 더욱 흉흉해졌다. 인종차별, 범죄, 소요가 끊이지 않는 화이트채플 지역은 악명 높은 부도덕의 온상으로 각인되어 갔으며, 1888년 잔인 흉포한 연쇄살인이 발생하면서 언론사의 집중 조명을 받게 됐다. 흔히 엘리펀트 맨이라고 잘 알려진 조셉 메릭이 살았던 것도 이곳 화이트채플이었다. 이처럼 오랫동안 대표적인 런던의 빈민가로 유명했던 화이트채플이지만,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런던 대공습의 피해를 직격으로 입으면서 그 흔적은 상당 부분 사라졌다.
부정적인 시대적 상황 속에서 화이트채플의 사람들은 점점 미쳐갔고, 그것은 뮤지컬 넘버에서 ‘회색도시’, ‘이 도시가 싫어’, ‘버려진 이 거리에’와 같은 노래에서 자주 표현되고 있다. 공포에 떠는 대상인 잭 더 리퍼를 숭배하기까지 하는 사람들 속에서 앤더슨이라는 인물은 당대의 사람들에게 부족한 인간성을 채우는 인물이었고, 당대의 모습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과연 살인마는 누구인가? 진짜 살인마는?’, ‘누가 살인마인가? 누가 희생자인가?’, ‘미쳐가는 세상에 왜 난 살아 있는가? 무얼 위해 널 잡아야만 하는가?’. 앤더슨은 모두가 미쳐서 돌아가는 그 시대 속에서도 꿋꿋이 진짜 지켜내야 하는 것, 인간으로서의 양심이나 최소한의 인간성, 그리고 절대로 깨져서는 안되는 도덕이라 하는 것, 그것들을 지켜내기 위해 자신을 버릴 것조차 각오한다.
극중에서 앤더슨이 가장 고민하는 것은 그것이다. ‘과연 이 미쳐가는 세상에서 옳고 그른 것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것과 ‘무엇을 지켜야 맞는 것인가?’에 대한 것이었다. 이것은 앤더슨 개인의 내적갈등에서 끝나지 않고 뮤자컬을 관람하는 사람들에게까지 질문을 던진다. “과연 당신이 이러한 시대 속에서 살아간다면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어떤 것을 따르겠는가?” 관람객들을 유혹해 매료시키고 무대에 온 신경을 집중시키는 인물이 잭이라면 관람객들을 무대로 끌어와 그들을 화이트채플의 시민 중 하나로 만드는 인물은 앤더슨인 것이다. 이렇듯 앤더슨은 무대 전체를 이끌고 나가는 스토리텔러임과 동시에 무대가 내포하는 의미를 좀 더 풍부하게 구성하는 인물이라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