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프로포즈의 기억, 그리고 본격적인 준비

in #kr7 years ago



어쨌든 그렇게 프로포즈의 날은 다가왔다.

나도 그녀도 깜짝이벤트 같은 것은 딱히 하고 싶지도, 받고 싶지도 않아 했다.

이를테면 명동 한복판에서 풍선다발을 바치는...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 취향이 그렇다는 것이다.

어쩌면 좀 뻔하더라도 둘만의 소중한 시간이 되길 원했다.

레스토랑, 꽃다발, 편지, 그리고 반지...

정석대로 가기로 했다.



당일-


오랜만의 데이트를 가장하고 종로로 나섰다.

아, 어찌나 두근거리던지.

나름 종로 스카이라운지를 예약해뒀는데, 자연스럽게 유도해야만 했다.

자연스럽게...

아니 자연스러울 수가 없었다.

배우가 되고 싶은 꿈을 잠시 가졌다가 얼굴때문에 포기했건만

문제는 얼굴뿐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긴장해서 사진도 없다. 

젠장.


여튼, 어찌어찌 자연스럽게 레스토랑에 들어가긴 했다.

저녁 노을도 슬쩍슬쩍 보이고 생음악이 흐르는 분위기도 나쁘지 않았다.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식사가 나오고.. 


식사하기 전 첫번째 사소한 문제.

말했듯이 그녀는 오늘이 프로포즈란건 전혀 모르는 상태였다.

레스토랑에 온 것도 나의 뛰어난 연기력에 힘입어 그냥 특별한 한끼인줄 알았고

나는 그녀가 끝까지 모르길 원했다.


근데 뭐 이렇게 프로포즈하는 놈분이 많은건지

스프랑 샐러드 나오는 동안 세커플이나 결혼의 세계로 뛰어들었다.

다행히 그녀는 노을보느라고 정신없었지만, 난 망했다- 고 생각했다.


뭐 여튼, 식사가 나왔으니 일단 맛있게 먹자 싶었다.

아뿔싸.


식사하면서 생긴 두번째 문제.

메뉴 확인은 따로 하지 않았었는데 

- 내 눈에는 스테이크만 들어왔었다. 그녀는 육식동물 -

죄다 그녀가 못먹는 것들 뿐이었다.

그녀는 향에 약했다. 향이 강한 채소나 생선은 그래서 늘 메뉴에서 빠졌었다.


스프는 양송이 크림스프.

전채요리는 연어샐러드.

연어와 버섯이 주가 된 환상적인 메뉴들.

심지어 어찌나 쓸데없이 싱싱하고 고퀄리티인지 

스프는 버섯 그 자체인양 내가 바로 양송이!!! 하고 존재감을 뿜어냈고

연어 또한 방금 강으로 돌아온 놈을 잡았는지 산낙지마냥 꿈틀거릴 것만 같았다.


뭐..


내가 다 먹었다.

메뉴 확인도 제대로 안한 내 잘못이지 누굴 탓하리...


여튼, 어찌어찌 스테이크는 잘 먹었다. 고기 잘 구웠더라.

물론 난 스테이크가 레토르트식품이었어도 알지 못했을 만큼 얼어있었다.

후식이 나오고, 드디어 때가 왔다.


음악 좋고!


미리 맡겨두었던 꽃과 반지를 웨이터분이 가져오시고,

나는 조용히 그것들을 내밀었다.

무릎을 꿇을 생각은 없었는데 앞에서 하도 꿇어대길래 나도 멋지게 꿇었다.


다행히도


몇가지 사소한 문제들은 있었지만 그녀는 꽤나 감동해 주었다.

(@종로 탑클라우드) 어두운 곳에서 폰카로 찍었더니 화질이..ㅠㅠ


멋진 프로포즈 사진이 없는 건 아쉽지만

지금도 저 표정이 담긴 사진을 보고 있으면 뭐 어떤가 싶다.



두그릇이나 비운 버섯스프와 연어들이 뱃속에서 부글거리고 있었지만

그날 나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남자였고

그녀 또한 아마도 그렇지 않았을까 싶다.


2015년 겨울날, 우린 부부가 되기로 약속했다.



자, 이제는 결혼을 하기 위해.....

그 남들도 다 하는 수많은 것들을 함께 할 차례다.

 ....뭐 이런것들.


아 난 참 훌륭한 남편인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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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분이 행복하시는게 너무 이쁘게 보이네요^^ 저도 제 남편한테 프로포즈 받앗을때 매우매우 행복햇는데. 그때생각이 계속 나네요~ 정말 멋지세요^^

읽기만해도 입가에 미소가 지어지네요. 따뜻한 이야깁니다. 준비하는 동안의 고단하지만도 설레는 이야기도 더 들려주세요. 기대합니다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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