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마음을 무겁게 짓누르는 어두운 추리소설에서 벗어나 아름다운 시 한 편을 소개합니다.
누구한테나 특별한 시 한 편, 책 한 권은 있을 것입니다.
저한테도 그런 시 한 편이 있습니다.
중학생 시절 저를 사로잡은 최초의 시詩이며,
혼란스럽던 20대에 날마다 되뇌이던 시詩이자
늘 사막으로 달려가고 싶게 만들던 시詩 입니다.
생명의 서 제1장 • 유치환
나의 지식이 독한 삶의 회의(懷疑)를 구하지 못하고
내 또한 삶의 애증(愛憎)을 다 짐 지지 못하여
병든 나무처럼 생명이 부대낄 때
저 머나먼 아라비아의 사막으로 나는 가자
거기는 한 번 뜬 백일(白日)이 불사신같이 작열하고
일체가 모래 속에 사멸한 영겁의 허적(虛寂)에
오직 알라의 신(神)만이
밤마다 고민하고 방황하는 열사(熱沙)의 끝
그 열렬한 고독 가운데
옷자락을 나부끼고 호올로 서면
운명처럼 반드시 나와 대면(對面)케 될지니
하여 나란 나의 생명이란
그 원시의 본연한 자태를 다시 배우지 못하거든
차라리 나는 어느 사구(砂丘)에 회한 없는 백골을 쪼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