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리 궁상
내가 스팀잇을 시작한지 250여 일에 명성도는 58에 이르렀다. 여기 이 부계정도 110여 일 차에 54의 명성도를 가졌다. 결코 적지 않은 기간이었고, 적지 않은 활동이었다. 주계정은 일찍이 과분한 관심을 받아 평균을 훌쩍 넘는 보상을 받아왔고, 부계정 또한 다른 이들에 비하면 절대 나쁜 수준이 아니었다. 최근들어 내 활동이 드문드문한 탓에 보팅수는 확연히 줄어들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나를 지원해 주는 따뜻한 이웃들이 있다.
한데, 언제부터인가 내 지갑의 추정 자산가치가 고정된 채 변동이 없다. 분명 뜸하나마 글을 쓰고 있고, 보상받은 돈을 단 한 푼 스팀잇 밖으로 소비한 적이 없는데도 말이다. 결국 나는 한때 1글1닭으로 광고 되었던 스팀잇을 하면서 근 몇달간 조금도 돈을 벌지 못한 셈이다. 물론 스팀의 꾸준한 가격 하락 덕이다.
그러나 이러한 나의 곤궁함은 사실 내가 스스로 자초한 면이 있다. 나는 지금껏 추가 보상을 받을 수 있을 법한 활동을 전혀 하지 않았던 것이다. 짱짱맨 태그를 써서 virus707 님의 기본 보상을 노려본 적도 없고, 팔로워의 영향력에 따라 보팅을 받을 수 있는 busy 태그를 달아본 적도 없다. 포스팅 주제도 마찬가지였다. 테이스팀, 스팀헌트, 트립스팀 등 내가 잘 할 수 없거나 할 말이 없는 내용은 굳이 적어 내지 않았다. 그나마 마나마인의 필진이 되어 보상을 지원 받고 있으니 순전히 운이 좋았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내가 물욕을 초월한 성인군자라서 혹은 저작에 남다른 자부심이 있어서 그러한 것은 아니다. 나도 한낱 욕심 많고 나약한 필부에 지나지 않는다. 돈을 바라지 않는다고 하면 그것은 새빨간 거짓말이다. 게시글에 찍힌 금액을 보고 실망한 적도 하루 이틀이 아니다. 오히려 나의 반(反)수익성 행동은 내가 인간의 자식임을 잘 아는 까닭에 취하는 전략적 선택에 가깝다.
인간의 자식
인간은 목적지향적으로 사고하는 경향이 있다. 진화의 과정에서, 사회를 이룬 인간은 끊임없이 타인의 행동에서 의도를 읽고 목적을 간파해야 했는데, 부정 오류(false negative)보다 긍정 오류(false positive)가 생존에 유리했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쉽게 말해, 상대방이 목적을 갖고 한 행동이든 아니든 의심하고 보는 것이 이득이었다는 말이다. 그리고 진화의 특성상 이러한 사고방식은 굳이 인간과 다른 대상들을 구분하여 발달하지 않았다. 인간은 살아있는 동식물부터 무생물과 자연 현상까지 어떠한 목적을 갖는 존재로 믿었다. 예컨대, 자연 재해를 인간에 대한 하늘의 뜻이라 여겼던 과거의 통념이 이러한 사고방식에 기인한다. 여기에서 재미있게도 인간은 자기 자신조차 목적지향적 사고의 예외로 두지 않았다. 인간은 스스로에게 삶의 목적을 묻고, 자신의 행위에 가치를 매기기에 이르렀다. 인간은 목적을 추구하고 이에 따라 자신의 행동을 결정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한편, 인간은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하도록 사고하는 경향이 있다. 상황을 판단하는 대뇌 피질이 인체의 다른 기관과 긴밀하게 협업하는 관계가 아닌 탓이다. 마이클 가자니가(Micheal Gazzaniga)의 유명한 분리뇌 실험에서 보듯, 뇌량이 끊겨 우반구와 좌반구 사이로 정보가 오갈 수 없는 피실험자는 우반구의 시각 영역에 제시된 명령어 “walk”에 의해 걷기 시작한 것임에도 “콜라를 마시고 싶어서”라는 대답을 내놓는다. 즉 우리의 두뇌는 우리의 몸이 취한 행동을 관찰하여 해석하고, 목적지향적 사고방식에 따라 결과를 도출하는 것이다. 흔히 인지부조화로 불리우는 현상 또한 인체로부터 들어오는 새로운 정보들을 해석하면서 기존의 의식 체계와 부딪히는 부분을 수정하는 과정이다. 결국 본인이 추구해 왔다고 믿는 목적이 사실은 행동에 따라 사후 결정된 것일 수 있는 뜻이다.
두 가지 고민
나는 전형적인 인간의 자식으로서 스팀잇을 시작하며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첫째로 목적지향적 인간으로서 내가 스팀잇을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였고, 둘째로 합리화의 인간으로서 내가 이 목적을 지키기 위한 행동은 무엇일까였다.
첫 번째 고민은 사실 별로 어렵지 않았다. 기본적으로 나에게 글쓰기라는 창작 행위는 즐거움을 가장 큰 보상으로 삼는 까닭이었다. 뭇사람들로부터 받는 인정도 괜찮은 동기였다. 원래 다른 곳을 거점으로 글을 쓰려 했던 차였으므로, 다른 이유를 대는 것도 우스운 일이었다. 그리고 여기에 금전적 보상은 이 같은 기쁨에 따라 붙는 덤이었다.
문제는 두 번째 고민이었다. 돈이란 참으로 매혹적인 것이어서 글을 씀으로서 보상으로 받다보면, 1차 목적과 2차 목적이 곧 전도될 수 있어 보였다. 특히 나처럼 의지가 박약한 인물은 끝이 뻔했다. 나의 의식은 금새 돈을 목적으로 삼을 것이고, “어차피 돈 벌려고 하는 스팀잇인데 표절이면 어떻고 거짓말이면 어때”라고 생각하며 돈을 벌기 위한 어떠한 행위든 하게 될 게 분명했다. 끝내 나는 글쓰는 재미까지도 돈 속에 묻어 버리고, 즐거웠던 취미 생활을 하나 잃어 버리게 될 것이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보상을 받지 않음은 스팀잇이라는 플랫폼을 이용하는 이유 자체를 소멸시킨다는 점에서 이율배반적이었다. 더 나은 작업 환경과 더 많은 독자가 있는 다른 플랫폼이 많은데도 스팀잇에 글을 쓰는 이유가 금전적 보상에 있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다시 말해, 두 번째 고민은 의식 작용의 모순에서 출발한 문제였다. 그리고 이 고민의 종착은 결국 맨 처음 설명한 나의 반(反)수익성 행동이었고, 그에 따른 궁상이었다.
요컨대 나의 궁상은, 나에 대한 불신에서 비롯한, 최소한의 염치를 지키고자 하는 설계이자, 취미 생활을 오랫 동안 지켜 내려는 설정의 결과인 셈이다. 이제와 생각건대, 조금 과도한 제한은 아니었는가 싶지만, 역시 인간의 근원적인 보수성 탓에 또 이를 벗어나지는 못하는 형국이다.
완전 공감됩니다. 보상 때문에 스팀잇을 하지만 왜인지 자꾸 반수익적으로 활동하게 되는...
제가 @thelump님을 처음 봤던 때부터 좋아하는 이유일지도 모르겠네요ㅋㅋㅋ 참 사람은 모순적인 존재입니다
이글이 좋아요.
그리고 wakeprince님은 분명 스팀잇을 애정하시네요. ㅎㅎ 예의를 다하기위한 고뇌가 느껴져요.
감사합니다. 애정한다고 할 만큼 열심히는 아니지만, 일단 몸 담은 곳이니 착하게 굴고 싶습니다ㅎㅎ
과도한 제한입니다. (단호히)
훗, 부정함의 끝을 보고 싶으십니까. 오늘부터 저와 함께 마크다운을 긁어 테이스팀을 하시죠. ㅎㅎ
ㅎㅎㅎ 룸구님...응..원 남기고 갑니다!
화, 화이팅?
수요미식회 장면 캡쳐하고 로고만 지워서 내보내도 될까요?ㅎㅎ
모순을 품고 활동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셨군요
저 또한 크게 다를바 없기에 심히 공감되는 부분이 적지 않네요
감사합니다. 스팀잇에서 함께 하는 많은 이웃분들이 비슷할 것이라는 생각에 적어 보았습니다.
공감합니다. 항상 고민하는 부분이지만, 기본을 잘 지키는 마음이 중요한것 같아요.
기본이 무엇인가 고민하게 됩니다.
저는 어떻게든 보상을 받으려고...비지에 글쓰고,
오늘은 디클릭에도 첫 도전을.....ㅎㅎㅎ;;;
프린스님도 함께 가...시면 안 될까요?
기본 보팅의 세계로~^_^;;;;;
포지션을 한 번 정하니까 바꾸기 참 어렵네요ㅎㅎㅎㅎ
'수익이야 스팀이 투더문하면 챙기는거지...' 하는 생각으로 반수익적으로 행동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ㅋㅋ
저도 그런 마음이 없지 않아 있습니다ㅋㅋㅋㅋㅋ 투더문하면 되겠거니ㅋㅋㅋ
저도 비슷한 궁상을 좀 떨고있죠 ㅋㅋ
서드파티들을 이용해 먹어야하는데 ㅎㅎ
남들 다하는걸 왜 못하고 있는지
그래서 요즘은 서드파티 전용 부캐를 만들어볼까라는 쓸데없는 생각을 하네요 ㅋㅋ
테이스팀이고 디클릭이고 결코 나쁜 것이 아닐 뿐더러 스팀잇 확장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데도 자꾸 궁상을 떠네요ㅋㅋㅋ
궁상이 아니라 곤조왕자
이제 스팀만 가즈아 하면 됩니다ㅋㅋㅋ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다 이러면서 결국 못 빠져나가는거죠 ㅋㅋㅋ
덫에 걸린 느낌입니다ㅋㅋㅋㅋ
스팀잇에서 "보상"을 빼면 남는게 별로 없지요.
굳이 불편하게 sns를 할 이유가 없으니까요.ㅎㅎ
솔직한 글, 공감합니다.^^
감사합니다!
완전 공감이요. 그 두가지 고민, 고민하다 보니 스팀잇을 떠나있게ㅜ되고 다시 돌아와서도 고민되는 글 읽으니 심란합니다
심란해서 쓴 글입니다ㅠㅠ 공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부계정 운영도 부담없이 스팀잇하면서 재미도 추구하려고 만들었는데, 자꾸 찍히는 금액을 비교하게 되니 씁쓸합니다.
굳이 궁상이라 표현하지 않으셔도 될듯합니다.
저도 몇달째 스달이 전혀 오르지 않아서 봤더니
100% 파워up으로 해 놨더라고요 ㅎㅎㅎ
그림그려드리고 받은 스달들인데...몇달전부터 백만원에서 보상은 느는데 가치는 줄더군요 ^^
일부 파워업해버렸죠 ^^
저와 비슷하신 분들이 많음을 느낍니다ㅋㅋㅋ
공감되네요. ㅎㅎ 다들 한번쯤은 혹은 그 이상 생각해보았을 것 같아요. 다른 플랫폼은 그 플랫폼 자체에 대한 고민이나 언급이나 애정보다는 그 안에서 이야기하는 것에 바쁜데, 이곳은 스팀잇 자체에 대한 이야기도 활발하죠. 수익성을 가져다 주고 스팀잇이 잘되야 우리도 잘된다는 심리가 큰 이유도 있는 것 같아요. 그게 좋다고 느낄 때도 있고 매력도를 떨어트릴 때도 있다고 느낀적도 있어요.
동의합니다. 그래서 스팀잇 자체 이야기를 웬만하면 하지 않으려고 하는데, 가끔씩 한번씩 이런 푸념을 늘어놓을 때가 있네요.
지금껏 활동하신 내용을 보면 본문중 의지가 박약하시다는 것은 지나친 겸손 같으세요.ㅎ
감사합니다! 의지가 약하긴 해도 포기하지 않은 덕이 아닌가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