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친일파, 진보=빨갱이
미리 말하자면 나부터 종종 극단적인 견해를 표출하는 사람임을 밝혀 둔다. 다름과 틀림의 차이를 깨닫고, 나와 다른 생각을 이해해야 한다고 항상 입으로는 말하고 있다. 그러나 다름을 보면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선입견과 편견이란 잣대를 들이 대고 있다. 왜 나는 그런 인간인 걸까.
인간의 빅데이터 선입견
4차 산업혁명이란 키워드가 유행을 하며 큰 관심을 받는 것 중 하나가 아마도 '빅데이터'일 것이다.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우리는 정보 홍수 시대에 살고 있고, 넘쳐나는 정보의 가치는 떨어졌다. 그래서 정보를 분석하고, 상황에 맞는 해답을 찾을 수 있는 기술이 필요해졌다. 많은 정보를 통하여 가장 효율적으로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기술에 가치를 두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빅데이터 기술은 4차 산업혁명이 가져온 신기술일까?
빅데이터 기술은 인간이 태초부터 사용해 온 기술이다. 인간은 태어나 수많은 정보를 얻으며 살아간다. 먹는 것부터 사람과의 상호관계까지 수많은 정보와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빅데이터를 저장한다. 그리고 자신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무엇을 먹을 것이며, 어떤 행동을 할지, 어떤 사람과 관계를 맺을지 등을 결정하며 살아간다. 그리고 본인의 결정에 따른 피드백과 함께 세상의 모든 것을 본인의 데이터에 맞춰서 분류한다. 이러한 과정으로 형성된 인간의 빅데이터를 선입견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선입견은 인간의 효율적인 생존기술이다. 수 없는 선택을 해야만 하는 인간으로선 매번 비슷한 상황을 고민하여 결론을 내리기보단, 지난 경험에 비추어 판단하는 것이 쉽고 빠르게 결정할 수 있는 방법일 것이다. 분명 선입견 때문에 사람들은 잘못된 결정을 하기도 한다. 두 상황이 99% 비슷하다고 하더라도 1%의 차이가 상반된 결과를 산출하는 것처럼 사람의 빅데이터 기술이 아무리 발전한다고 하더라도 모든 상황을 예측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선입견을 통한 예측은 성공의 확률이 실패의 확률보다 크다(선입견=성공>실패).
나이가 들면서 많이 하는 말 중 하나가 '어른들 말씀 틀린 것 하나도 없다'이다. 살다 보니 나보다 많이 살아본 사람들의 말이 10개 중 7개는 맞는 것 같았다. 그리고 꼰대들은 이해 못한다고 빡빡 우기던 시절 나의 행동과 결정들이 10년이 지나 돌이켜 생각하면 이불킥이 절로 나오기도 한다. 따라서 나는 선입견이란 빅데이터 기술이 잘못된 결과를 산출할지라도 그런 위험은 기꺼이 감수하기로 한다. 항상 더 큰 가능성을 선택해야 하는 것이니까.
나의 선입견을 주무르는 정치
정치는 인간이 효율적으로 살기 위해 선입견이란 빅데이터 기술을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매우 잘 알고 있다. 그리고 그 선입견을 어떻게 주무를지 연구하고 분석하는 것이 정치이다. 그래서 심리학과 통계학이 가장 활발하게 이용되는 분야 중 하나가 바로 정치 분야이다.
정치가 사람에 관심을 가지고 선입견에 대해서 연구하고 분석하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일이다. 사람들의 생각을 알아야 바른 정치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치가 사람들의 생각을 읽는 것에 그들의 영역을 한정 짓지 않는 것이 문제이다. 사람들의 생각을 주무르기 위해 정치인들은 그들이 만든 프레임을 사람들에게 주입하려 한다. 그래야 소수가 다수를 다루기 쉬워지기 때문이다.
그러한 극단적인 예로 히틀러를 들 수 있다. 히틀러와 나치는 독일인들의 생각을 지배하기 위해 아리안 신화라는 프레임을 만들었다. 히틀러는 독일인들에게 게르만족인 독일인은 아리안족(백색 계통의 인도 유럽 종족)의 후계자이기에 다른 열등한 민족을 지배할 권리가 있다고 세뇌시켰다. 그리고 이러한 세뇌를 실현시키기 위해 독일의 역사를 왜곡하고 심지어 다른 민족의 역사까지도 주무르려는 노력을 하였다. 그리고 나치가 만든 프레임의 성공으로 유대인 600만 명이 인종청소라는 명목 아래 학살되기도 하였다.
한국에서 만들어진 대표적인 프레임은 3Kim(삼김)정치를 들 수 있다. 삼김정치란, 김영삼, 김대중, 김종필이 만든 정치 프레임으로서 정치 철학이 아닌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라는 지역을 구분하여 정치한 것을 말한다. 간혹 김영삼은 보수이고, 김대중은 진보 아니냐고 말하기도 하지만, 그들의 정치적 이념은 군부정권을 반대하는 같은 뿌리에서부터 시작하였다. 그리고 그들이 정치를 하면서부터 각각의 세력을 구축하기 위해서 그들의 지역색을 입힌 정치를 하기 시작한 것이다. 삼김정치의 문제점은 정치인들이 지역을 나누어 정치를 시작하였기에 작은 나라를 분열시킨 것에 있다. 예를 들어 아주 좋은 정책을 제시한 정당이라도 자신의 지역구 밖에서는 쓰레기 정책이란 소리밖에 듣지 못하는 것이다. 그리고 아무 논리 없이 타 지역 정당, 사람들을 욕하게 만든다.
물론 이런 지역을 나누어 정치를 하는 것은 다른 국가에서도 만연하다. 가장 쉽게 프레임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수의 사람들이 학연, 지연 등의 프레임이나 선입견을 가진 것은 유익하다 말할 수 없지만, 이는 잘못된 것이라고 말할 수도 없다. 이것이야 말로 인간의 본성 중에 하나이기 때문이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는 말처럼 나부터도 나와 인연이(아주 미약한 인연이라도)있는 사람들에게 한 번이라도 더 귀 기울이게 된다.
너 쓰라고 있는 거 아니야 나의 선입견
정치 이론 중 유년기에 형성된 정치 이념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고 이야기하는 이론이 있다. 한번 보수나 진보로 정치적 성향이 형성된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평생 한쪽의 이념을 유지한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정치를 하는 이들이 유권자들 정치 성향 형성에 공을 들이는 것이다. 그래서 정치인들은 역사를 왜곡하고, 정치에 지역색을 입히는 등 정치 프레임을 만드는데 힘쓴다.
그리고 '인생은 줄을 잘서야 된다'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정치인들은 그들이 만들어 놓은 프레임에 들어온 이들에게는 확실하게 보답을 한다. 정치는 세를 불려야 하는 게임이기에 주고 받는 것이 확실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치인들은 자기편에 대한 확실한 보답과 함께 반대에 있는 이들에 관한 선입견을 심는 것에 모든 힘을 쏟는다. 이렇게 이분법적인 사고가 유권자들에게 심어진다. 이분법적 사고에 빠진 사람들은 반대되는 정치 성향을 가진 이들을 보게 되면 색안경부터 끼고 보게 된다. 아무리 옳은 소리를 한다고 해도 곱게 들리지 않는다. 그러다 평범한 이들조차도 친일파가 되기도 하고 빨갱이가 되기도 한다.
정치를 하는 이들은 집요하게 연구하고 분석하고 프레임을 만들어 간다. 그리고 이를 교묘하게 이용한다. 특정인을 언급하고 싶지 않지만, 최근에 사람들의 이분법적 사고를 이용하려는 너무 좋은 예를 보여주었기에 김어준 씨의 사례를 이야기 보겠다.
최근 대한민국을 들썩이게 하고 있는 #METOO 운동에 관하여 그는 하나의 예언(?)을 하였다. 미투 운동을 좌파 정치인들을 공격하는데 이용하는 정치 공작이 있을 것이라는 것이다. 분명 그가 이야기한 것처럼 성추행 가해자의 정치적 성향때문에 특정 정치이념을 비판하는 자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발언을 한 김어준 씨가 이들보다도 먼저 정치 공작을 한 것이 문제이다. 그는 그와 같은 정치 성향을 가진 사람들에게 시그널을 보낸 것이다. 앞으로 같은 정치 성향을 가진 이들이 미투 운동으로 인해 공격을 받는다면 이에 대한 방어를 해야 한다고. 분명 김어준 씨는 그의 발언 전에 많은 비난을 받을 것이란 것도 예측했을 것이다. 그러나 정치 좀 하는 그에겐 그의 프레임 밖에 있는 이들에게 받는 비난은 오히려 득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정치는 자신의 프레임 안에 있는 이들에게 확실한 보답을 해주고 프레임 밖에 있는 이들의 비난은 Out of 안중이기 때문이다(오히려 비난은 많은 언론의 관심을 받게 되어 정치를 하는 이들에게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된다). 하지만 그의 이번 발언은 분명 문제가 있다. 왜냐하면 정치 공작은 문제의 본질을 흐리기 때문이다. 정치가 끼지 말아야 할 곳에 정치가 들어서면 모든 경계가 흐려진다. 성추행 피해자가 정치인들의 이념 싸움 때문에 비난받을 수 있는 여지가 생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불행히도 이러한 정치 공작은 우리 사회에 만연하고, 우리는 알면서도 또 당한다. 이미 우리는 내편 네 편이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We are the chess masters
한 케이블 프로그램에서 미국인 타일러의 이야기를 듣고 무릎을 탁 친 적이 있다. 미국인들은 미국 대통령을 체스 플레이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상대편 체스 플레이어(다른 국가들)들과의 체스 게임을 두며, 그 게임을 이길 수 있는 체스 플레이어들을 국민들이 선택하여 게임을 이어간다는 것이다. 국민들이 체스 게임의 감독이 되고, 대통령이 체스 플레이어가 된다는 비유는 많은 것을 내포하고 있었다. 하나의 목표를 가진 국민들이 체스 게임의 감독이 되어 가장 유능한 체스 플레이어를 선출한다. 그리고 체스 플레이어는 자신들의 이익이 아닌 게임의 승리라는 목표를 위해 자신들의 전략을 구사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현실은 타일러의 비유와 전혀 반대이다(이건 타일러의 미국도 다르지 않다). 현실에서는 체스 플레이어인 정치인들이 체스 게임의 판을 짠다. 그리고 체스 플레이어를 제어해야 할 국민들은 체스 플레이어도 아닌 체스판 위의 체스 말이 되어 있는 형국이다. 그렇다고 우리가 이러한 현실을 모르는 것도 아니다. 뉴스에 흘러나오는 정치인들의 구린 이야기들을 들으며 항상 이야기한다. 정치는 원래 더러운 것이라고. 정치는 원래 저런 것이라고. 그렇게 쉽게 인정하고 관심을 꺼버린다. 마치 정치라는 것이 그들만의 리그인 것처럼.
이제부터는 우리가 게임의 판을 짜야할 것이다. 선수가 감독을 조종하는 비상식적인 형국을 벗어나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더 이상 정치인들이 만든 정치 프레임 안에 갇히지 말아야 한다. 체스판의 말이 아니라 체스판의 마스터가 되어야 한다.
보수는 친일파, 진보는 빨갱이. 지금 시대에 이러한 프레임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일본 식민지 시대도 아니며, 6.25 전쟁 중도 아닌 지금 이 시점에서 왜 우리는 아직도 보수는 친일파가 되어야 하고 진보는 빨갱이가 되어야 하는가? 일본 식민지 시대에 진짜 친일파도 6.25 전쟁 중에도 진짜 빨갱이는 대부분 정치하는 이들이었지, 다수의 국민은 그 무엇도 아니었다. 그런데 지금도 정치인들은 정치 프레임을 만들어 국민의 반은 친일파, 반은 빨갱이로 만들고 있다.
보수와 진보는 민주주의 정치를 이끄는 핵심 원동력이다. 보수와 진보의 건전한 이념 경쟁은 민주주의를 더욱 단단하게 만든다. 정치인들은 지금부터라도 건전한 보수와 진보를 선택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정치인들을 준비된 체스 플레이어라 여기고, 적재적소에 플레이어들이 플레이할 수 있도록 결정하기만 하면 된다.
이는 매우 간단한 이야기이지만,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이뤄지지 못한 이상적인 이야기이다. 하지만 현실 가능성이 없는 이상이라고 하여도 방향이 맞다면 꿈꾸어야 맞는 것이고, 꿈을 꾸다 보면 이상과 조금 더 가까워질 수 있다. 그렇다면 언젠가는 우리가 만들어 놓은 프레임 안에 정치인들이 들어가 우리가 짜 놓은 게임을 플레이하는 시대가 올 수도 있지 않을까 바라본다.
가끔 생각 하는 거지만, 지금 얼마나 어디서 부터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거짓인지 구분하기가 쉽지 않은것 같습니다. 어떤 자세를 가지고 세상을 바라봐야 날것들을 볼 수 있을까요 ? 팔로우 하고 갑니다
그런 의문을 가지고 계시다면 이미 날것을 보고 계신것 같은데요 :) 맞팔합니다~
3월의 시작을 아름답게 보내세요^^
짱짱맨님도 아름다운 3월 보내세요 :)
프레임에 다수를 가두고 편가르기하는 정치나 언론을 보면 지금이 도대체 2018년이 맞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러니까요. 아직도 낡은 정치가 먹히고 있으니까요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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