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에 관한 짧은 필름] 사랑은 타인의 영역에 대한 침범이다

in #kr7 years ago (edited)


어느 날 '자기'라는 신이 "내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는 그 순간 두려움을 느꼈다. '자기'는 "왜 두려워하는가? 존재하는 것은 나뿐인데"라고 생각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외로움을 느꼈다. '자기'는 둘로 나뉘어 '나'와 '너'가 되었다.

힌두의 신화에 등장하는 이 이야기는 인간사의 영원하고도 심오한 아이러니인 관계에 대해 요긴한 힌트를 준다. 인간은 모두 자신의 영역을 가지고 태어난 별개의 존재이며, 그럼에도 외로움이라는 출처 모를 감정을 느낀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타인에게 종속적일 수밖에 없는 불완전한 존재다. 따라서 모든 관계는 종류와 성질에 상관없이 타인의 영역에 대한 침범이 된다. 그것이 능동적이든 수동적이든, 혹은 방어적이든 공격적이든 말이다.



<렛 미 인>은 ‘타인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이라는 테마를 품고 있는 영화다. 제목부터가 그렇다. 처음에는 소년과 소녀의 세계가 금발과 흑발의 선명한 대비만큼이나 확실하게 경계 지어져 있었다. 소년은 매일 학교에서 얻어터지고, 밤마다 집 앞 공터에서 나이프를 꺼내 들고 복수의 칼을 꽂아넣을 날을 상상하지만, 상상은 상상에 그칠 뿐이다. 반면 소녀는 밤마다 주저 없이 사람을 죽인다. 다만 피를 양식으로 삼는 육식동물인 그녀에게 살인은 현실의 생존을 위해 필수불가결한 사냥이다. 소녀는 소년에게 말한다. “나는 살기 위해 죽이지만, 너는 상상 속에서 매일 살인을 한다”고. 밤이면서도 낮처럼 빛나는 스톡홀름의 설경은 흑백처럼 다른 세계에 있었던 둘 사이에 접점이 생기기에 딱 좋은 곳이었는지도 모른다.


서로의 세계로 점점 발을 들여놓으면서, 둘은 무의식 중에 상대를 변화시킨다.(다시 말해서 자신이 변한다) 결국 소년은 소녀를 구하기 위해 진짜로―비록 성공하진 못했지만―사람을 죽일 작정으로 칼을 휘두른다. 소녀 역시 소년을 구하기 위해 처음으로 '사냥'이 아닌 '살인'을 한다. 둘 모두 어떤 이득을 계산하고 행한 일이 아닐 것이다. 하나가 둘로 쪼개졌다는 신화는 그런 변화의 지점에서 새롭게 시작된다. 우리가 흔히 사랑이라고 부르는 그 관계는, 타인에 대한 최대한의 침범이라는 점에서 흥미롭게도 살인과 닮았다. 상대를 변화시키지 못하면 의미가 없다는 점에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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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이미 유명한 작품이라 알고 있었지만
힌두의 신화는 정말 흥미롭네요.
잘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