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념의료 - 왜 병원에만 가면 화가 날까

in #kr7 years ago (edited)

스팀잇에 무슨 글을 올릴까 하다가, 블로그에 쓰는 일기 중 그나마 좀 남들에게 읽혀도 덜 부끄러울 만한 글들을 하나씩 다듬어서 옮겨볼까 하고 있습니다. 그 첫 번째는 <개념의료>라는 책의 서평 내지는 감상문(이라고 쓰고 홍보글이라고 읽는다) 입니다. 2년 전 선택수업 과제로 쓴 글입니다만 그 때나 지금이나 한국의 의료환경이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 같네요...

<개념의료>는 최근 벌어지는 의료계 내에서의 사건사고들에 대해 조금 더 자세히 알고 싶은 분들에게 추천드리고 싶은 책입니다. 사실 그냥 한국사람들이 다 읽었으면 좋겠어요. 한국 의료가 어쩌다 이모양이 되었는지 쉽고 자세히 설명해 놓은 책이니 기회가 되면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ㅎㅎ (사실 이렇게 추천해도 사 읽으시는 분들은 몇 분 없는 것 같아서 증정 이벤트라도 해야하나 생각하고 있습니다..)


본과 2학년 가을학기 선택수업으로, 청년의사에서 편집주간을 맡고 계신 박재영 교수님의 <토크 콘서트>를 수강하였다. '한국에서 좋은 의사로 살아가기' 라는 부제를 달고 있던 이 수업은 우리나라의 의료에 대해 학생들과 교수 모두가 자유롭게 말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교수님 혼자만 이야기하거나 아무도 말을 하지 않는 사태를 방지하기 위하여, 매 수업시간마다 6명의 학생들이 패널처럼 나가서는 교수님의 저서인 <개념의료>의 내용을 기반으로 토의를 이끄는 - 빨리 무슨 말이든 해보라는 교수님의 쪼임을 당하는 - 식으로 진행되었다.

이 글은 이 수업의 과제 중 하나인, <개념의료> 감상문 작성을 위해 쓰여졌다. 사실 감상문보다는 홍보에 더 가까운 글이다. 굳이 메일로 제출해도 되는 과제를 블로그에 올리고 스팀잇에까지 가져오는 이유도 이런 좋은 책은 널리널리 알려져서 더 많은 사람들이 읽어야 한다는 것이 '누군가'의 개인적인 생각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어짜피 읽으면 다 나올 책 내용을 줄줄이 쓰는 건 의미가 없으니(그럴 거면 책을 살 이유가 없잖아?), 나의 이야기를 먼저 풀어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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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다른 의대생들과 달리 특이한 점 하나가 있다면, 예비 의료인으로서의 경험 못지않게 환자로서의 경험과 생각들이 나의 정체성을 이루는 데에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앓고 있는 만성질환 개수부터가 그러하거니와, 희귀난치성질환 환자로서 산정특례 대상자인 의대생은 흔치 않을 테니까 말이다. 아마 동기들 중에는 아직도 산정특례가 정확히 무슨 말인지 모르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어릴 때 부터 안 아픈 곳이 없었던 나는, 지금도 한 달에 영화관, 노래방, 당구장, 술집을 가는 횟수를 합친 것보다 병원에 가는 횟수가 더 많다. 이렇게 병원을 많이 다니게 된 데에는 내가 그만큼 자주 아픈 것과 한국에서 의료의 접근성이 굉장히 높다는 점이 중요하게 작용하겠지만서도, 한국에서 괜찮은 의사를 만나기 어렵다는 점도 한 몫 한다 할 수 있겠다. 의사가 괜찮은지 아닌지 평가하는 기준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나를 포함한 많은 환자들에게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한 목적으로 불필요한 치료를 하지 않는 것'은 매우 중요한 기준 중 하나일 것이다. 이전엔 의사가 하자면 하자는 대로 전부 다 하는 착한 환자였지만, 의대를 다니면서 의학지식을 갖게 된 후 그간의 환자경험들을 돌아보았을 때, 내가 만난 의사선생님들이 항상 나에게 최선인 선택'만'을 하지는 않았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나의 수많은 질환 중 하나인 요추 추간판 탈출증 (a.k.a. 허리디스크)로 인한 통증 때문에 병원에 방문한 적이 있었다. 사실 어지간한 정도의 디스크 통증은 쉬면 괜찮아진다. 하지만 그 때 나는 계속 앉아서 시험공부를 해야 하는 불쌍한 본과 1학년이었으므로 빨리 병원에 가서 신경차단술을 받으려고 하였다. 그런데 그 날 나를 진료한 의사는 나에게 은근히 '신경성형술'이라는 시술을 자꾸 권하였다. 저 시술은 엉덩이뼈의 구멍을 통해 긴 카테터를 넣어 디스크가 튀어나온 부위에 마취제와 소염진통제를 주사하는 것으로, 사실 신경차단술하고 효과에는 유의미한 차이가 없는 시술이다. 얼마간의 실랑이에서 승리한 나는 결국 신경성형술 대신 신경차단술을 받는 걸로 합의를 보았다. 내가 내는 비용은 신경차단술이 신경성형술에 비해 1/20 정도로 저렴했는데, 그 때문인지 아닌지 모르겠으나 의사는 5분도 채 안 되는 시간동안 후다닥 주사를 넣고 쌩 나가버렸다. 이렇게 이따금씩 불필요한 시술을 권하는 의사와 한바탕 신경전을 벌이고 나면 시장판에서 물건값 깎듯이 흥정을 한 것 같은 기분이 들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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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편, 예비의료인으로서 선배 의사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대한민국에 이보다 억울한 직업이 있긴 한 걸까 싶은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의 의료 급여항목의 원가 보전율은 평균적으로 약 70%수준이라고들 한다. 이 말은, 평균적인 의사가 나라에서 국민 건강 보전을 위해 필수적으로 보장해주는 항목들에 대해서 원가가 100원어치인 행위를 했을 경우에 70원만 받게 된다는 뜻이다. 이게 말이 되는 소리인가? 그럼 의사들은 도대체 어떻게 먹고 사냐? 비급여라는 말이 여기서 등장한다. 건강보험에서 보장하지 않는 의료행위들은 비급여 항목으로 분류된다. 이 항목들은 쉽게 말하자면 '부르는 게 값'이다. 여기서 의사들이 먹고 살 길이 트이는 것이다. 위에서 말한 나의 경험에서, 일반적인 환자들은 몇 백만원 단위의 큰 지출을 한다. 단, 여기서 오해하지 말아야 할 점은 모든 비급여 항목이 불필요한 지출은 아니라는 것이다. 초음파는 불과 2016년에 급여 항목으로 인정되었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의사들이 굶어 죽지 않기 위해서는 비급여를 최대한 끌어모아 환자로부터 돈을 더 많이 받아내야 하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그리고 그 중에는 불필요한 의료비 지출이 상당한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 또한 부정하기 어려운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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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외에도 우리나라 의료의 문제점, 사건사고들을 꼽으라면 관련 사례들이 줄줄이 사탕으로 따라나온다. 급여 비급여 실랑이는 오히려 귀엽게 봐줄만한 축이다. 큰 병 아닌 줄 알았던 사람이 느닷없이 죽었다는 이야기, 어느 간호사가 경구약을 정맥주사해서 환자가 사망한 이야기, 어느 병원이 몇 년 동안이나 의료장비를 제대로 소독조차 안 하고 쓰다 병을 무더기로 퍼뜨린 이야기, 어느 응급실에서도 받아주지 않아 누군가가 골든타임을 놓친 이야기, 이억만리 떨어진 곳에서 시작된 질병이 뜬금없이 우리나라의 대형병원들에서 창궐한 이야기, 어느 벽지 시골동네는 아이 받을 산부인과 의사가 없는데 서울엔 성형외과가 포화라는 이야기 등...세계 경제 10위권에 인당 GDP 3만불을 가네 마네 하는 국가에서 어떻게 하면 일어날 수 있을 지 상상하기 어려운 일들이 우리 의료계에서는 벌어지고 있다. 그런데 '어떻게 하면 일어날 수 있을 지 상상하기 어려운 일들'은 도대체 어떻게 일어나게 된 걸까? 지난 반 세기동안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을까? 그냥 우리가 '원래 그런' 민족이기 때문일까? 정말 우리나라 의료는 눈뜨고 봐줄 수 없는 수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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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부한 말이지만 세상 모든 일에는 밝은 면이 있으면 어두운 면이 있게 마련이고, 힘든 일의 이면에는 좋은 일도 있게 마련이다. 때로는 한 발짝 물러서서 보는 것이 상황을 좀 더 잘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된다. 여름에 바닷가로 피서를 갔을 때를 생각해 보자. 분명히 허리춤 정도 차는 물이었는데 한바탕 놀고 나서 보니 물이 가슴팍까지 차올랐던 적이 있지 않은가? 물때를 잘 보기 위해서는 물에서 나와 멀리서 바다를 바라보아야 한다. 물 안에서 신나게 파도를 타는 동안에는 지금이 밀물인지 썰물인지, 혹시 먼 곳에서 상어가 오지는 않는지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개념의료>는 우리에게 한국 의료의 다양한 모습을 한 발짝 떨어져서 관망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저자의 시선은 마냥 비관적이지도 않으며, 대책 없이 낙관적이지도 않다. 1장에서는 우리가 겪어보았거나 혹은 미처 알지 못했던 우리나라 의료의 면면들을 살펴보고, 2장에 들어서는 어떻게 한국의 의료가 지금의 모습을 갖게 되었는지 담담한 문체로 이해하기 쉽게 서술한다. 나아가 3장에서는 앞으로 한국 의료가 당면할 이슈들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지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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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의료는 어디에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을 만큼 찬란한 면과 어디 내놓기 부끄러울 정도로 참담한 면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우리 사회의 많은 부분이 그러하듯, 불과 반 세기 조금 넘는 시간동안 최빈국에서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으로 급성장 하는 동안 얻게 된 성과와 그 과정에서 생긴 부작용들을 다 안고 있는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 의료에 드러나는 문제들을 표면적으로 덮으려만 하기엔 우리는 이미 너무 많은 일들을 그렇게 덮어왔다. 피할 수 없는 문제가 닥쳤을 때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그것을 외면하거나 과장하거나 축소하지 않고, 그 문제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이다. 뭐든 해보는 것은 그 다음에 생각할 일이다. 이제는 우리 모두가 한 번쯤은 지금 처한 상황을 찬찬히 객관적으로 돌아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다른 일도 아니고 우리 모두의 건강이 달린 일인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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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도대체 왜 당신이 병원에만 갔다 오면 화가 나는지 궁금한가? 우선 <개념의료> 부터 읽고 이야기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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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의료진에 대한 신뢰는 해야 겠지만 ..
좀 생각을 해야~~

감사합니다^^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반려동물을 키워보니
의료보험이 얼마나 절실한지
느낄 수있더라구요

감사합니다. 더 좋은 보험체계를 갖기 위해 다 같이 머리를 모으면 좋을 것 같은데 쉬워보이지 않네요..

글 잘 읽었습니다. 현재 의료정책 방향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봐도 될까요?

 7 years ago  Reveal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