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4월 23일 오후 7시 45분에 일기를 쓰다. 오늘, '모바일 시대의 글쓰기'에 대해 재고해볼만한 제언을 듣고 필자가 드린 답장.
<수취인 불명, 시대에 고하는 편지>
모바일 시대라는 점은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내용이 무엇이냐에 따라 분량은 달라질 수도 있고,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제 글에서 ○○의 상황을 '사고 실험'해 본 부분은 결코 한두 문장으로 정리될 수 있는 내용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 외의 부분들도 쉽게 가감할 수 없는 내용들이라고 생각하고요. 정독하셨으면 아셨을 텐데 제 여행 에세이는 단순히 감상이나 감탄만 나열하는 기행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원고 안에 기술된 것들은 모두 나름대로 서술 체계상 필수불가결한 대목들입니다.
○○이 인터넷 매체이고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이 얼마만큼 클릭해주고 정독해주느냐에 따라 존명이 좌우될 수 있다는 점은 충분히 이해합니다. 하지만 글의 퀄리티와 무관하게 무조건적으로 사이트 내의 글들을 A4 2-3매 분량으로 정량화하는 것이 과연 장기적으로 봤을 때 ○○에게 도움이 되는 컨텐츠 선별 기준인지는 의구심이 듭니다.
악화가 양화를 驅逐하듯이 가독성 좋은 글들을 선호하는 수요자들만 사이트에 몰리면, 오히려 수준 높은 글을 쓰려는 생산자와 그를 소비하려는 구독자들은 줄어들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숙고해볼 거리가 많고 복잡한 사안인 경우 짧은 글로는 요체를 담아낼 수 없을 때가 있습니다. 〇〇이 한낱 잡지도 아니고 무려 ‘글’과 ‘문장’을 진지하게 다루는 곳인데, 가독성 좋은 컨텐츠로만 승부하려는 태도는 조금 납득하기 힘듭니다. 물론 그러한 〇〇의 기조와 운영 원칙이 있고 제 글이 그에 부합하지 않는다면 저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죠.
저는 제 글을 수정할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분량을 줄여버리면 이 에세이는 흔해빠진 여행기가 될 것이 뻔합니다. 제 글 <…省略…>는 정식 글로 채택해주시지 않으셔도 됩니다. 어차피 제가 지금 출간을 준비하는 책 안에 넣을 원고였기에, 조만간 제 책에 싣겠습니다.
예전에 《…省略…》에 관한 서평 때도 그렇고, 이번 여행 에세이 사안도 겪어보니 ○○에 어떠한 형식의 글을 드려야할지 조금 감이 옵니다. 앞으로는 제 원고들 중에서 가독성 좋은 것들만 선별해서 송고해드리겠습니다. 하지만 매번 제 글에서 분량을 지적하시는 운영진분들의 쪽지에 꼭 한번 오늘처럼 제 소견을 밝혀드리고 싶었습니다.
모쪼록 글의 분량으로 번거롭게 해드려 죄송합니다. 다음부터는 짧은 원고들만 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