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렬한 제목을 갖고 있는 마루야마 겐지의 "인생 따위 엿이나 먹어라"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
"세상은 절대 편한 곳이 아니야.
지금부터라도 당장 혼자 어떻게든 잘 버티며 살아가겠다고 생각해야 돼.
집을 얼른 떠나서 독립해.
회사에서 노예로 지내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지도 마.
국가는 널 위해 존재하거나 보살펴주지 않아.
신도 마찬가지고.
그러니 넌 혼자야.
그래도 너한텐 자유가 있으니 멋대로 살아보란 말이야."
강한 독설이다. 니체를 능가한다.
어쩌다 기분이 우울하거나 상태가 나쁠 때 조심스레 생각만 해볼 뿐 감히 말하지 못했던 얘기들도 거침없다.
특히, 첫 장을 넘기자마자 '부모를 버리라' 한다.
깜짝 놀라 말이다. 너무 강렬하라.
제목도 만만치 않는데 이렇게 시작한다.
좀 더 들어야 보자. 목차가 이렇다.
- 부모를 버려라, 그래야 어른이다
- 가족, 이제 해산하자
- 국가는 당신에게 관심이 없다
- 머리는 폼으로 달고 다니나
- 아직도 모르겠나, 직장인은 노예다
- 신 따위, 개나 줘라
- 언제까지 멍청하게 앉아만 있을 건가
- 애절한 사랑 따위, 같잖다
- 청춘, 인생은 멋대로 살아도 좋은 것이다
- 동물로 태어났지만 인간으로 죽어라
부모도 버리고, 가족도 해산하란다.... 국가도 못 믿는다고... 말이 되는 소리인가?
"젊어서 이미 죽을 준비를 끝낸 보통 사람들은,
자기보다 뛰어난 자와 만날 일이 거의 없고,
오래 눌러앉아 있어 봐야 성취감은 털끝만큼도 얻을 수 없으며,
불굴의 정신 따위도 전혀 필요하지 않는 그런 잿빛 코스를 밟는다.
그리고 그 길에서 튀어나와 이탈한 자들을 고립적이고 가엾은 존재로 간주한다.
몇 곳을 더 들여다 본다.
국가는 당신에게 관심이 없다
불합리에 대한 분노를 포기한 인간은,
저항의 정신을 내던진 인간은,
인간임을 포기했을 뿐만 아니라 삶 자체도 스스로 포기한 어리석고 우매한 자에 불과하다.
이치가 그러한데,
아직 청춘의 한창 때를 보내고 있으면서도 이미 죽어 있는 젊은이가 얼마나 많은가.
...(중략)... 세상의 한 귀퉁이에서 숨을 죽인채 시궁쥐처럼 두리번거리기만 하고,
자신과 직접 관계없는 일은 돌아보지 않거나 없는 일로 치는 소극적인 삶의 모습.
불끈거리는 혈기와, 극적인 사상을 꿈꾸는 불온한 감정과,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고뇌하는 정신의 갈등은 다 어떻게 한 것인가.
머리는 폼으로 달고 다니나
자립에 반하는 삶의 방식은 곧 명석함이 부족하다는 것을 뜻한다.
자립이란 인간이 약한 존재라는 사실을 충분히 곱씹은 후,
강한 인간을 지향하면서 과감하게 분투하지 않으면 가능하지 않다.
몇 번이나 말하는데, 편안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이 아니다.
그런 시대는 지금까지 단 한번도 없었고, 앞으로도 절대 없을 것이다.
끊임없이 긴장하고, 그 긴장감에서야말로 살아 있음과 사는 기쁨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신 따위, 개나 줘라
영험하다는 장소를 기웃거려 봐야,
또 그곳에서 머물려 장시간 명상에 잠겨 봐야,
갑자기 정신력이 강해지는 것도 아니고, 절대 아니다.
그럴 시간이 있다면,
자신의 생활 자체를 재점검해야 한다.
타인에 의지하지 않고, 모두 자기 힘으로 해 나가야 한다.
습관적으로 해야 한다.
그래야만 자기 잠재 능력의 위대함을 깨닫고 자신감을 회복할 수 있다.
본래의 모습도 깨달을 수 있다.
청춘, 인생은 멋대로 살아도 좋은 것이다
자신 속에 어떤 보물이 잠들어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자신도 모른다.
그 보석이 하나뿐이라고도 할 수 없다.
몇 개가 숨어 있을지 모를 일이다.
그러니 이제 싫고 좋음이나 자기류의 해석은 모두 무시하고,
온갖 일에 도전해 보면서 자기 안에 소리 없이 숨겨져 있는,
곤히 잠들어 있는 재능을 발굴해야 하는 것이다.
듣기 불편한 소리를 읽었는데 오히려 기분이 상쾌해진다.
왜 그럴까?
삶의 본질을 포크로 콕 찍어
햇살 푸른 하늘로
들어 보이는 느낌이다.
속 시원한 책을 오랫만에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