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격보다는 수비! 제 생각에도 선 수비, 후 공격이 맞지 않나 싶습니다. 저의 개인적 편향도 공격보다는 수비쪽인 듯 합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더파이팅(The Fighting)이라고 하는 일본 복싱 만화에서도 주인공 일보가 구사하는 복싱 스타일이 마이크 타이슨(Mike Tyson)의 피커부(Peek-a-boo) 스타일인데요. 이 스타일 자체가 타이슨이 가드를 내리는 습관 때문에 고안된 방식으로, 인파이팅에 들어가기 전에 풀가드 상태를 고수하는 것이죠.
일보의 복싱 스타일도 수비중심이라 거의 모든 경기가 극강의 수비 후 역공으로 전환하는 모양입니다. 제가 일보를 참 좋아해서.... 글을 읽는내내 고개를 끄덕끄덕하며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궁금한 것은 신라가 삼국통일을 한 이유가 방어지형 때문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제가 알기로는 백제가 신라의 왕 김춘추의 사위와 딸을 죽여서 그에 분노해서 당나라에 연합을 제의해서 나당연합을 맺고 당의 군력을 바탕으로 삼국통일을 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조금은 다른 이야기지만 통일을 하게 된 가장 큰 이유라면 나당연합이 아닌가 싶어서 여쭙습니다.
그래서 대충 이렇게 뭉뚱그려 적었습니다. 직접 원인으로 지목되는 사건들이 있지만 그 배경에 수비라는 요인도 작용하고 있다라는 점을 이야기해 본 것 입니다.
상술하자면, 삼국시대 대부분의 역사에서 백제가 한강 유역을 장악하고 있었으나 백제는 신라를 멸하지 못하였고, 고구려 장수왕이 남진하였을 때에도 장수왕은 소백산맥 앞에서 진격을 멈춘 바 있습니다. 반면에 백제는 신라가 한강을 차지하고 나니 평야지대를 방어하기 위해 곳곳에 군대를 배치해야 했고, 이후 한번도 한강을 되찾지 못한 채 멸망을 맞이하였습니다. 한강을 신라에 빼앗긴 사건으로 백제는 당나라가 아니었더라도 국력이 쇠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발생한 것입니다. 고구려 같은 경우에도 오랜 역사동안 북쪽의 침입을 굳건히 방어했고 수·당의 대군을 막아낸 바 있지만, 백제가 망하고 평지인 아래에서부터 올라오는 신라의 부담이 더해지자 멸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당연히 모든 것이 지형 문제만은 아니고, 중앙집권화 되지 않은 정치 체제와 그에 따르는 정치적 내분도 큰 원인입니다. 그러나 당시에는 모든 나라가 봉건적 정치 체제였고, 내분은 위기의 순간 어느 나라나 발생하기 마련입니다. 수나라가 침입했을 때도, 당태종이 쳐들어 왔을 때도 고구려의 북쪽은 요동성부터 산악지대를 형성해 쉽게 방어할 수 있었는데, 이때에도 고구려의 정치적 상황은 갈등의 연속이었습니다. 이처럼 강력한 수비력은 내부적 위기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아 후일을 기약할 수 있는 기회를 줍니다. 신라라고 어떠한 위기가 없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 상황에서도 소백산맥이라는 자연의 요새가 신라를 존속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는 데에서 제가 말한 삼국통일의 바탕을 이해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