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닝 리뷰 (스포있음)

in #kr7 years ago (edited)

이 리뷰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영화는 관객에게 매우 불친절한 영화이기 때문에 될 수 있으면 키워드 중심으로 쉽게 적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보고 오신 분들이 이 포스팅을 읽을 것라 믿고 줄거리는 생략합니다.

버닝


버닝burning의 사전적인 의미는 '태우다' '불타다'는 뜻 입니다.
하지만 반대로 모든 기력을 소진했다는 의미로도 쓰입니다.

젊은이들이 많이 쓰는 말이다. 불태우고 열중하고 싶을 때 쓰는 말이지만 그렇지 못할 때 쓰이는 이중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 - 이창동 감독 인터뷰 중

전자는 한강의 기적으로 상징 되는 앞선 세대의 가난을 벗어나기 위한 열망.
후자는 그 후 버닝된 세계에서 살게 된 젊은이들의 상실과 무력감.

이 영화는 쓰여지고 버려진 아버지 세대에서 쓰이지도 못하고 버려진 아들로
전의된 분노의 근원을 찾으려는 이야기로 보였습니다.

낡고 쓸모 없는 것


젊은 나이 잘 먹고 잘 사는 나라를 위해 인생을 받쳤던 아버지는 재판을 받고 있습니다. 아버지는 산업의 일꾼이었고 베트남 참전 용사(본지 몇 일이 지나 긴가 민가 하지만)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80~90년대 남들 다 하던 부동산 투기를 반대하고 모은 돈으로 시골에서 농사꾼으로 살아가던 애국자였습니다. 그의 현재는 어떤가요? 그에게 남은 것은 암소 한 마리 뿐입니다. 반면 땅을 사고 건물을 샀던 이들은 일하지 않고도 즐겁고 재미있게 살아갑니다.

아버지는 공무 집행 방해죄로 기소가 되어 있습니다.
그의 분노는 결국 국가를 향했던 것이죠.

우직하고 자존심 쎈 이 남자는 지금 너무나도 낡고 쓸모없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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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창작과를 졸업한 뒤 소설가를 지망하는 종수(유아인 분)는 택배 아르바이트를 하며 일용직으로 살아가고, 해미(전종서 분)는 카드 빚에 쫓겨 나레이터 모델을 하며 작은 옥탑방에서 힘겹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아버지 세대가 국가를 위해 자신의 삶을 바쳤다면 자녀 세대는 자본을 위해 삶을 받치고 있습니다.

종수가 일하는 곳은 아르바이트 지원자들을 숫자로 부릅니다. 종수가 빠져도 언제나 그 자리를 채울 젊은이들은 많습니다. 하나의 인격체가 단순히 숫자로 불리우는 이곳은 바로 자본주의의 세계입니다.

그들은 낡지 않았지만 가난하고, 그래서 약하고, 그래서 쓸모 없는 존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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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는 위대한 개츠비가 너무 많아."
"개츠비가 뭔데?"
"뭐 하는지는 모르겠는데 돈은 많은 미스테리한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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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스티븐 연 분)은 해미가 아프리카에서 만난 의문의 남자입니다. 그는 여행을 다니고, 포르쉐를 몰며, 그냥 노는게 일이라고 하는 돈 많은 젊은이입니다. 그는 매우 사려 깊고, 친절하며, 사교성 있고 매력적인 사람입니다.

그리고 새롭고 쓸모 있는 것들을 잔뜩 가졌습니다.

아케이드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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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파리의 아케이드

벤야민의 <아케이드 프로젝트>는 19세기 초 프랑스 파리에 만들어진 아케이드를 통해 자본주의의 유년기를 관찰한 단편적인 기록의 거대한 모음집입니다. 아케이드는 지금의 백화점과 같은 곳입니다. 유행하는 옷과 전시장, 향수와 보석, 매춘, 예술 모든 것이 화려한 유리 천장 아래에 길을 따라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자본주의가 인간의 삶을 어떻게 바꾸었는지 그는 설명하지 않고 보여줍니다. 보여 줌으로 써 느끼게 만든 것이죠. 예를 들자면 이런식입니다.

편의점에서 일하는 중년의 남성은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젊은 손님이 가게로 들어오자 "손님. 어서 오십시오." 하며 재빨리 일어나 계산대 앞에 섰다.

자본주의가 태생하며 바뀐 노동과 소비의 변화를 메모와 스케치, 단편적인 기록을 13년 동안 썼으니 엄청나게 많은 자료가 쌓여 있겠죠. 하지만 그는 이 책을 완성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납니다. 때문에 <아케이드 프로젝트>라는 검색을 하면 후대에 들어서 작성된 다양한 해석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바로 이곳에서 우리가 알고 싶은 버닝의 주제를 읽을 수 있습니다.

참을 수 없는 세계(판타스마고리아)란 어쩌면 새로움에 대한 강박적 추구에도 불구하고, ‘권태와 무위’ 속에서 ‘항구적인 일상적 진부함의 상태’를 살아가게 하는, 그런 세계가 아닐까. 이런 세계는 사유의 불가능성을 조장한다. 반복되는 삶의 패턴들 속에서 사유할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는 상태를 조장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끔찍한 일이다. - <세계와 역사의 몽타주, 벤야민의 아케이드 프로젝트> P.167

여기서 새로움에 대한 강박적 추구란 소비자로서의 심리 상태를 말합니다. 즉 자본주의에서는 새로운 것을 사지 않으면 '항구적인 일상적 진부함 상태'를 만들어 버린다는 것이죠. 그리고 그런한 세계는 사유를 불가능하게 만듭니다. 자본주의에서는 오직 새로운 것을 사는 것 만이 일상적 진부함을 벗어나는 일이고 가치가 있는 일이기에 '돈'을 가진자가 가치있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우물


"너 왜 남자들 앞에서 그렇게 옷을 벗고 다니냐? 그런건 창녀들이나 하는 짓이야."

종수의 말에 충격을 받은 해미는 사라졌습니다. 그 뒤 이어지는 장면에서 택배 회사에서 젊은이들을 숫자로 불렀던 것과 자신이 해미에게 했던 말이 동일한 속성인 것을 깨달게 됩니다.

그리고 종수는 그 곳을 뛰쳐나와 해미가 있을지 모르는 비닐 하우스를 찾아다닙니다. 이것을 스토리텔링적으로 분석하자면 주인공의 각성입니다.

해미는 주인공을 스몰 헝거에서 그레이트 헝거로 이끄는 전형적인 히로인입니다. 그에게 각성의 계기를 주는 인물이죠. 마을 한가운데 우물이 있었냐? 없었냐? 가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 그가 살아오면서 했던 유일하게 가치 있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이야기를 자신이 영웅인 것을 잊은 주인공을 히로인이 도와 영웅의 세계로 이끄는 전통적인 영웅 플롯으로 봤습니다. 그 부분에서 아마 비평이 있을 것 같네요.)

그리고 결국 종수는 우물이 있다, 없다라는 개념을 떠나 우물이 없다는 것을 잊는 은유의 세계에 진입합니다. 이야기를 따라가 보면 결국 해미는 벤(자본주의의 유산)에게 희생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낡고 쓸모 없는 것을 태운다


벤은 낡은 비닐 하우스. 즉 가난, 약함, 낮음을 태워 없에는 것이 가슴을 뛰게 만든다고 합니다. 낡은 것을 없에는 것은 새로운 것만 있는 세계를 더욱 빛나게 해줄테니까요.

하지만 종수에게 낡고 쓸모 없는 것은 포르쉐와 벤과 자신의 낡은 옷. 즉 기성 세대의 오래된 유산인 아무것도 사유할 것이 없는 세계였다고 생각합니다. 독재와 자본이 만든 아주 끔찍한 세계.

종수는 결국 이 세계를 파괴하기 위해 소설이라는 상징과 은유의 세계로 진입해 벤을 죽였던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마지막 장면은 소설 속의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영화가 굉장히 상징적이고 함축적이기 때문에 각자의 경험에 따라 해석은 다를 것 같습니다. 이로써 1회차 리뷰를 마칩니다. 2회차 관람 후 글을 더 보태게 될지 모르겠네요.

마지막으로 좋아하는 작가 가네시로 가즈키의 단편 소설 <태양은 가득히> 한 장면을 옮깁니다. 은유의 세계로 진입해 친구를 구하려고 하는 플롯이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영화를 보다 떠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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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cob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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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수의 말에 충격을 받은 해미는 그 뒤 사라졌습니다. 그 뒤 이어지는 장면에서 택배 회사에서 젊은이들을 숫자로 불렀던 것과 자신이 해미에게 했던 말이 동일한 속성인 것을 깨달게 됩니다.

제가 보지 못했던 것들을 보고 가네요.

벤은 낡은 비닐 하우스. 즉 가난, 약함, 낮음을 태워 없에는 것이 가슴을 뛰게 만든다고 합니다. 낡은 것을 없에는 것은 새로운 것만 있는 세계를 더욱 빛나게 해줄테니까요.
하지만 종수에게 낡고 쓸모 없는 것은 포르쉐와 벤과 자신의 낡은 옷. 즉 기성 세대의 오래된 유산인 아무것도 사유할 것이 없는 세계였다고 생각합니다. 독재와 자본이 만든 아주 끔찍한 세계.
종수는 결국 이 세계를 파괴하기 위해 소설이라는 상징과 은유의 세계로 진입해 벤을 죽였던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마지막 장면은 소설 속의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이 부분은 생각하지도 못했습니다. 저에게 다른 시각을 보여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2회차 관람을 하고 싶은데, 기회가 없네요. 관람 후 또 리뷰를 남겨주시면 잘 보겠습니다.

아직 해석 안된 부분도 있어서 2회차 관람을 해야 될 것 같네요. 정말 다양한 해석이 나올 것 같은데 거기에 리뷰 하나 올려봅니다. ㅎㅎ 자세히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 리뷰도 가즈아.

해미에 대해 관심있으신가봐요.흥미롭네요

지금은 님이 더 관심이 갑니다. 흥미롭네요

ㅎㅎㅎㅎ감사합니당 흥미로워주셔서 ㅎㅎ부끄럽네요 다음번에도 또 보러오겠어용

짱짱맨 호출에 출동했습니다!!

대박사건!!

낡고 쓸모 없는건 버려야되는데...

계속 모으고 있어요. ㅜㅠ

영화 보면서 과연 이창동이구나 싶더라구요.
엔틱과 클래식, 레트로는 진리입니다.
모아도 괜찮지 않을까요. ㅎㅎ

영화를 보고 이렇게 멋진 리뷰도 가능하군요
잘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뭔가 느껴졌는데 그게 뭔지 몇일 생각해 봤네요. 나름데로 내린 결론이지만 각자의 감상평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ㅎㅎ

마블영화만 주구장창 보며 단순해진 저의 뇌가 이 글을 보고 혼란에 빠지고 있습니다;

계급자본주의나 구세대의 프레임에서 벗어나 우리가 정말 찾을수 있는 탈출구는 어디에 있을까요? 세상은 우리에게 그런 탈출구를 허락하기는 할지...

모두가 노동을 중지하던가, 소비를 중지하면 자본은 무너지죠. 모르겠어요. 그런 세상일 올지. 그저 뭔가 바꿔야 한다는 생각 뿐인데.. 극중 종수의 말처럼 저에게도 세상은 아직 미스테리 합니다.

보팅해놓고, 영화보고나서 글을 읽어보렵니다. 핳 다시 돌아올게요오

감사합니다. ㅎㅎ 굉장히 힘든 영화에요. 그래도 예술적인 성취는 느낄 수 있습니다.

색다른 시선에 그럴 수도 있겠구나.. 하고 다시금 되새겨보게 되네요.
저는 우물이 극 초반에 나왔던 판토마임과 비슷한 역할이었다고 생각해봤어요. 그리고 우물에 있던 해미를 구해준 종수가 실제로 있었던 일이 아니라 다른 일의 은유적인 표현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구요.. 저도 깊은 생각을 해보게 되네요

영화를 보고 나온 후. 귤이 없다는 사실을 잊는다라는게 뭔지 한참을 고민했어요. 그래서 고전적인 스토리텔링 방식으로 접근 해봤어요. 주인공의 욕망(소설가가 되고 싶다), 적대자(벤), 조력자(해미) . 스토리텔링적으로 접근해보면 - 주인공은 소설가가 되고 싶다. 주인공의 방해하는 적대자의 역활은 무엇인가? 소설가가 되는 것을 방해하는 것. 즉 사유할 수 없는 세계. 이런 식으로 말이죠. 그래서 다른 방식을 통해 영원한 귤이 상징하는 것을 유추해 보면 은유의 세계를 말한다는 결론을 내릴 수 밖에 없겠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