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성과 교육
지난 「사고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에서 저는 글을 끝맺으며 ‘교육이 학생들을 산수하는 기계로 만든 것이 아니냐’라는 비판과 동시에 ‘인간의 본성상 기계적 풀이를 더 바라는 것 같다’는 푸념을 늘어놓은 바 있습니다.
확실히 인간의 본성은 복잡함보다 단순함을 좋아합니다. 목적지를 향해 여러 갈래로 뻗어나가는 경로을 알기보다는 목적지가 어디인가만을 확인하고 싶어하는 것이 인간의 마음이며, 다양한 요소들의 상호작용의 결과로 이해하는 것보다 특정한 하나의 요소를 집어내어 결론 내리기를 좋아하는 것이 인간의 마음입니다. 기본적으로 인간은 많은 열량을 소비하는 복잡한 추론이 아니라, 적은 열량으로 생존과 안정을 도모하는 진화의 산물인 까닭입니다. 흔히 무지와 비합리성의 산물이라는 마녀사냥도 결국 이러한 인간의 속성에 기인하는 현상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오직 생물학적 진화의 산물인 것만은 아닙니다. 문화 유전자 밈(meme) 또한 우리의 뇌 기능을 운반체(vehicle) 삼아 우리의 사고방식과 행동양식을 좌우합니다. 밈(meme)은 진(gene)에 비해 인간의 근본적인 측면을 제어할 수는 없지만, 진(gene)이 통제하지 못하는 단기간의 변화에 적응하며 사회의 문화를 형성합니다. 그리고 이는 현대에 들어 우리가 고민하는 교육의 문제와 연결됩니다. 인간의 본성이 복잡한 추론을 달가워 하지 않더라도, 교육은 인류가 차곡차곡 쌓은 복잡한 추론법을 가르칠 수 있고 이것이 바람직한 방식임을 인식킬 수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제가 앞서 던진 교육에 대한 비판은 ‘교육이 인간 본성에 영합하여 편의주의적 사고방식을 부추기고 있지는 않은가’와 같습니다.
물론 인간의 본성을 거슬러 어떠한 태도를 주입시키고 성과를 내려는 시도가 결코 쉽지는 않을 것입니다. 문제 유형와 풀이법을 일대일 대응시키고, 덮어 놓고 암기하는 방식이 시험 성적을 올리는 데 적합할는지도 모릅니다. 학생의 입장에서는 효율적으로 좋은 대학을 보내는 선생님이 좋은 선생님일 뿐입니다. 하지만 저는 맹목적으로 문제를 푸는 학생들에게 “학교에서 이렇게 배웠다”는 말을 들으면서, 또 그러한 학습 방식이 몸에 베어 고쳐지지 않는 학생들을 보면서, 이러한 문제 의식을 쉽게 떨쳐낼 수 없었습니다.
편안함과 바람직함
하루는 친한 동생 둘과 함께 카페에서 공부를 한 적이 있습니다. 한 명은 현재 중학교에서 사회를 가르치고 있는 선생님이었고, 다른 한 명은 이제 막 대학 생활을 시작한 새내기 대학생이었습니다. 그리고 마침 대학생인 동생이 학교에서 배운 미적분학을 이해하지 못해 저에게 질문을 하던 상황이었습니다.
저는 보통 학생이 문제를 들고 오면 꽤 다양한 방식으로 답을 내주곤 하는데, 이때에도 마찬가지로 저는 동생에게 각 풀이마다 그 착안점이 어디에 있었는가를 짚어 주며 여러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해 주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여기서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합니다. 그것은 바로 배움의 당사자인 동생과 제3자로서 지켜보는 동생의 반응이 전혀 달랐다는 점입니다.
당사자인 동생과의 대화는 이런 식이었습니다.
“형, 나 그만 알고 싶어. 두 번째 가르쳐 준 게 간단해 보이네. 그것만 외울게.”
“안돼. 두 번째 방식은 이러이러한 점에 착안해서 풀어낸 것이라, 첫 번째 방식에 비해 특수한 풀이 방식이야. 그리고 첫 번째 방식이 이번 단원에서 목표하는 풀이이고. 모르면 안돼.”
“알았어. 그럼 첫 번째만 외울게.”
“무슨 소리야. 두 번째 방식은 다른 단원에서 한번 배웠던 건데. 이미 배운 걸 잊겠다고?”
“헷갈려. 이 단원은 그렇게 풀게.”
“문제가 연습문제처럼 ‘이건 몇 단원에서 나온 문제입네’하고 나오는 게 아닌데 네가 뭘 보고 그렇게 풀어?”
이는 제가 그동안 보아온 학생들과 다름없는 일관된 반응이었습니다. 동생은 친하니 직설적으로 이야기하지만, 그들은 대체로 첫 번째 풀이로 답을 도출한 순간부터 자꾸 연습장에서 시선을 돌리며 딴청을 피우는 데에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학생들은 문제풀이를 논리적 추론의 결과로 보기 보다, 문제를 유형화해서 하나의 풀이법을 외우길 바랄 따름입니다.
반면에 구경꾼인 동생의 반응은 이런 식이었습니다.
“내가 고등학교 때 형처럼 가르쳐 주는 선생님이 있었으면 내가 수포자가 되지는 않았을텐데! 학교에서는 맨날 유형별로 문제를 묶어서 풀도록 하니까, 왜 그렇게 푸는지도 이해하지 못했고, 정작 시험 볼 때는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할지 몰랐다고.”
“하지만 그만큼 쉽지 않은 길이야. 지난 단원을 계속 상기하면서 풀이법을 비교하기란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할 수 없어. 학습 진도도 확실히 더디게 나갈거야.”
“그래도 그렇게 배워야 돼. 수학을 배우는 이유가 논리성 함양이라며.”
흥미롭게도 당사자가 아닌 동생이 오히려 제 풀이를 더 관심있게 지켜보며 집중하고 있었습니다. 시험을 보지 않는 어른이 된 지금, 암기가 아닌 논리로 수학을 익혀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말입니다.
요컨대, 배우는 학생 입장에서는, 천성에 따라서이든 암기식 교육의 관성에 따라서이든, 편하게 공부할 방식을 찾아 암기를 선택하고자 하는 것이고, 이 수업의 관객이자 선생님을 직업으로 가진 입장에서는 다양성과 열린 사고를 장려하고자 하며 이를 바람직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시범의 목적
제가 이렇게 한 문제에 여러 가지 풀이법을 보여주면, 가끔 사람들은 잘난 척으로 오해를 하곤 합니다. 그러나 이는 고작 ‘나 좀 한다’며 체신을 살리고자 함이 아닙니다. 저는 이로써 학생에게 원하는 바가 분명합니다. 한 문제를 풀어도 두 세 문제를 푼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경제적 이득이나 지난 단원에 대한 복습의 효과는 부차적입니다.
첫째로 저는 학생들이 ‘답을 찾아가는 데에 오로지 한 가지 옳은 방식이 있는 것이 아니다’라는 점을 깨닫기를 바랍니다. 물론 목표에 도달하는 데 다양한 길이 있음은 거의 모든 사람이 아는 사실이지만, 알고 있는 것과 깨닫는 것은 완전히 다릅니다. 사람은 무엇이든 자주 접해야 따라할 수 있게 되고, 또 자꾸 따라해 보아야 습관처럼 그것을 내면화할 수 있습니다. 즉,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위의 명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저 또한 운좋게 모범이 되는 선생님과 친구들을 만났을 뿐이며, 이제는 제가 후배들에게 본보기가 되고자 하는 것입니다.
둘째로 저는 학생들이 ‘느리고 복잡한 풀이라도 끝내 답에 이를 수 있다. 나는 잘못되지 않았다’는 점을 깨닫기를 바랍니다. 가만보면 학생들은 종종 바르게 진행하고 있다가도 숫자가 커지고 문자가 복잡해지면 풀기를 포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분명 주어진 문제에 더 적합하고 간결한 풀이는 있을 테지만, 지금 푸는 방식 역시 결코 잘못되지 않았음에도 학생들은 지레 겁을 먹곤 합니다. 특히 이러한 태도는 시험을 치를 때 문제가 되는데, 이미 한참을 푼 상태에서 자신감을 잃고 새로 시작해야 할지를 고민하게 만듭니다. 그리하여 저는 그들에게 어떠한 풀이든 옳다면 끝까지 풀어내는 모습을 가감없이 보여 줌으로써, 지금의 길이 답으로 가는 다양한 방법 중 하나라고, 조금은 돌아가지만 절대 틀리지 않았다고, 자신을 믿는 법을 가르쳐 주려 합니다.
제 말이 언뜻 삶의 격언과도 같이 들립니다만, 사실 저 역시 제 삶에서는 이 목표들을 전혀 깨닫고 있지 못하고 있습니다. 삶은 연습장 위에 휘갈긴 수식과는 또 다른 이야기인 까닭입니다. 저는 몇 줄의 수식 정도만 깨우친 사람일 뿐입니다. 다만 저는 제게 온 학생들에게 그 범위 안에서나마 제가 깨달았던 것을 전해주고 싶은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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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학생때 나름 수학을 좀 했는데요. 좋아했는지는 가물가물..
그럴 수 있었던 이유 첫째는 많이 외울 필요가 없었고,
둘째는 푸는 방법이 한가지가 아니라서 혹시 공식을 몰라도 풀수도 있더라구요 (시범의 첫번째 목적 빙고^^).
그런데 제가 부모가 되고 나니까 다른 것 보다도 시범의 두번째 목표를 꼬맹이한테 알려주고 싶더라구요.
이건 수학 아니라 우리 매번 맞닿드린는 문제들을 대할때도 마찬가지니까 알려주고 싶지만 그렇다고 꼬맹이가 받아들이는 건 아니니까.. 어렵더라구요 ㅎㅎ
정말 머리로 아는것과 몸으로 받아들이고 실천할 마음을 갖는 것은 달라서, 누구에게나 어려운 듯합니다. 저도 두 번째 목표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직접 푸는 모습을 보여주는건데 잘 따르게 하지를 못하겠네요.
지난 세기동안 수학이 인간의 논리성함양에 이바지 했겠지만, 대중 공교육에서는 오히려 교육의 장들을 망치고 있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논리교육이 복잡한 수학풀이로는 불가능하지도 하지요 ㅠㅠ
수포자의 한마디입니다.
원래는 일상 언어에 담긴 모호성을 제거하여 형식 논리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하는데 목적이 있지 않았나 생각하지만, 답을 맞추기 위한 공부에서 그렇게 받아들이는 사람이 별로 없어 보입니다.
수학이 잘 따라가다 잠시만 한눈 팔면
따라가기 힘든 과목이지요.
바로 제가 그랬습니다.
그러나 수학이 합리적 사고나 인내심을 기르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기도합니다.
감사합니다.
리스팀합니다.
감사합니다! 보통 수식을 쓰는 과목들이 조금만 한 눈 팔면 저 멀리 가버리죠ㅎㅎ
개인적으로 요즘 걱정되는 것 중의 하나는 선행학습입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문제풀이의 다양한 방법을 찾아가는 데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선행학습은 진도를 빠르게 나가기 위해서 학생들이 생각할 시간을 뺏고 가장 편리한 길만 알려주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저도 학창시절에는 한눈을 팔다가 수학의 많은 부분을 날려버리고, 지금와서야 조금씩 수학의 재미를 알아가고 있습니다. 생각해보면 참 아쉬운 시간들입니다.^^
그래서 저도 선행학습을 반대하는 입장입니다. 제가 어릴때도 학부모들이 외고보낸다 과고보낸다 하면서 초등학교 때부터 선행학습을 참 많이 시켰었는데요. 우리 어머니께서 그런 어머니들을 만나고 오면, 누구는 고등학교 몇 학년꺼까지 몇 번을 봤다더라, 이미 대학교 교재를 본다더라 이야기를 듣고 오셨다고 합니다. 저에게 좀 미안한 내색을 하시면서 말입니다.
근데 막상 제가 좀 자라서 운좋게 그런 친구들과 함께 공부해 보니, 그 친구들도 제대로 알고 있는 게 별로 없더라고요. 어설프게 진도만 뺐지, 내용을 잘 이해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물론 어디나 예외는 있어서 다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천재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해당하지 않는 경우였습니다. 알고 있는 것으로 따지면 이제 새로이 배우는 저와 별 다를게 없는 상황이었던 것입니다. 그럴 거면 대체 선행학습은 왜 한 것인지. 오히려 그 아이들에게는 스스로 생각하는 법을 빼앗는 독이 아니었을는지 생각했었습니다.
제 생각도 비슷합니다. 그 학년 그 나이에 배움과 함께 해야할 고민과 생각을 할 여유를 주지 않는 점이 안타까웠습니다.
하지만 와이프나 학부모가 된 친구들과 이런 얘기를 하다보면 그들의 주장과 반응은 한결같습니다. 그건 니가 너무 이상적이고 현실을 모르기 때문에 하는 얘기다. 학교에 가면 다른 애들은 이미 다 알고 오기 때문에 이론은 넘기고 문제풀이부터 들어가는데, 하나도 모르고 수업에 들어가면 어떻게 적응을 하겠냐, 한번 놓치면 따라갈 수 없는게 수학이다. 그리고 선행학습안한 너나 내가 그럼 수학을 잘했냐? 아니지 않느냐? 우리도 하고 싶어하는게 아니다 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럼 저는 그렇게 공부해서 애들한테 남는게 무엇이냐?고 물어봅니다. 답변은, 남는게 중요한게 아니다. 남들만큼 하고 시험성적 잘 나오는 것 자체가 목표다라고 합니다. 요컨데 교육방식이 어떻든 잘할놈은 알아서 잘 할것이니 일단 뒤쳐져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안타깝긴한데, 반박하기 힘들기도 합니다. 그래서 현실적인 고민은 이런 환경에서 어떻게 내가 생각하는 교육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점 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암기식 교육을 비판하면서도, 말씀처럼 정작 아이를 키우면서는 교육의 목적을 ‘남들만큼 하고 시험성적 잘 나오는 것’으로 두니 변할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인생이 스물에서 끝나는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그리고 저는 제가 추구하는 방식이 현실과 동떨어진 이상이라고만 생각하지 않습니다. 제가 보기에 항상 시험에 대비하며 공부를 하는 것은, 어린 운동 유망주가 매일 시합 대비만 하고 있는 꼴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운동에서 코 앞의 시합에만 집중하면 당장의 한 경기는 이길 수 있어도, 전체적인 기본기를 습득할 수 없고 몸을 제대로 만들지 못합니다. 꽤 지난 이야기지만 우리나라 축구, 야구 등에서 선수를 키워내는 시스템을 비판하며 나왔던 이야기였지요. 저는 공부도 다르게 보이지 않습니다. 최소한 대입의 최종 관문인 수능을 겨냥해 학습한다 해도 언발에 오줌 누듯 당장의 시험에만 매달려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특이하게 고3들 과외를 참 많이 했는데, 아마 막판에 급한 마음에 저를 호출했던 것이었겠지요. 그런데 저는 이렇게 고3 학생을 가르칠 때마다 ‘이 아이의 최선은 여기까지구나’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다들 너무 기본기가 없어서였습니다. 들어갈 그릇이 작으니 더 가르칠 수 있는 부분이 많지 않았습니다. 고3에게 새로운 방식을 익히도록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까요. 분명 잘 사는 동네에 선행학습도 많이 했을 아이들이었는데, 안타까운 경우가 많았습니다.
물론 그래도 당장의 시험을 간과할 수는 없다는 현실이 있으니 적정선을 맞춰야 하긴 할텐데, 장기와 단기 계획 사이의 밸런스를 맞춘다는 것이 참 어려워 보입니다.
그렇군요, 좋은 경험담 감사합니다. 저도 가끔 아이의 교육문제에 대해 와이프와 얘기하곤 하는데, 선행학습의 효과에 대한 구체적인 근거를 갖고 있지 않아 각자의 주장만 펼치기 일쑤였습니다. 현장에서의 경험을 들려주시니 많은 도움이 됩니다.
먼저 앞으로의 교육방향에 대해 와이프와 합의를 이루어 내고, 다음으로 구체적으로 선행학습대신 어떤 방식으로 학습을 이끌어 줄지에 대해 고민해봐야겠습니다. 두 가지 과정 모두 쉽지는 않아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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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는 왕자님이 아니라 꿈꾸는 왕자님이 되셨습니다그려:-)효율성을 너무 강조하는 폐해인것 같습니다.그런데 사회는 비효율적으로 돌아가니 찝찝하내요. 정답이 없는게 인생인데 정답을 정의하려드니 문제겠죠.
그런 듯합니다. 이 길로 가야 옳다. 저 길로 가야 옳다. 시대가 잘 변하지 않는 옛날이었으면 지혜가 되었을지도 모르는 말도, 이제는 너무나 빠르게 변하는 현재의 시대상 속에서 무의미해지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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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고등학교 선생님은 수학 선생님이셨는데 철학을 좋아하셨죠. 수학의 끝엔 삶과 철학이 담겨있다고 하셨죠.
어느날 수업시간에 limit개념을 설명해주시면서 한 없이 가까워지지만 도달못하는 지점이 있지만 우리는 limit처럼 끝까지 나아가야하는 게 인생이라고 말씀하셨죠. 수학은 신기하게도 삶과 맞닿아있어요.
참 낭만적인 선생님이셨네요
생각해보니 수학이 논리적이라고 가르쳐준 선생님이 아무도 없었기에.... 수학을 멀리 할수밖에 없었네요 하아....
(선생님탓하기)
제가 좋은 명분을 드렸습니다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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