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사랑이 멈춰버린 시간 속에 있지? 그래서 사랑했던 시간을 더 그리워하는 것이겠지. 지나간 사랑의 시간은 다시 되돌릴 수도 없고, 되돌려서도 안 된다는 의미 없는 이야기를 하고 싶지는 않다. 의미없는 이야기는 우리를 지치게 하니까.
나는 사랑의 시간으로 성숙했다. 사람들은 내게 묻는다. 그네들은 나의 ‘사랑의 시간’을 부러워하는 것인지, 나의 ‘성숙한 모습’을 부러워하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계속 묻는다. 어떻게 그렇게 많은 사랑의 시간이 가능했느냐고. 딱히 할 말이 없었다. 왜냐하면 그냥 그랬던 것이었거든.
정말이다. 사랑하며 사랑받고 또 상처 주며 상처받았던 그 많은 시간들이 가능했던 이유는 별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다. 더 정직하게 말해, 누군가 나를 다시 쓰다듬어 주길 바랐고, 나 역시 누군가를 쓰다듬어 주길 바랐을 뿐이다. 욕망인지 욕구인지 명징하게 구분할 수 없었던, 그 모호한 ‘원함’을 별 생각이 없이 따랐다. 철없던 시절의 무지함이 나를 구원한 셈이다.
너는 왜 사랑이 멈춘 시간에 서 있을까? 너를 드러내고 싶지 않아서? 상처받고 싶지 않아서? 한 동안은 그랬을 수도 있고, 지금도 그런 마음이 없지는 않겠지. 하지만 지금 네가 사랑이 멈춘 시간에 서 있는 본질적인 이유는 앎 때문이다. 너무 많이 알아버려서 사랑이 멈춘 시간 속에서 방황하는 것처럼 보인다.
너는 알고 있지. 0인 사랑도, 1인 사랑도 없다는 걸. 그 사이에 무한히 존재하는 소수점의 개별적 사랑이 존재한다는 것을 너는 너무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너는 그걸 알아버려서 사랑하지 못한다. 0.12의 사랑이 시작되려 할 때 너는 그 빌어먹을 앎 때문에 사랑을 멈춰 세운다. ‘0.12의 사랑은 예전의 상처를 주고받았던 미성숙했던 사랑의 반복은 아닐까?’ 라는 생각으로. ‘그러니 이제 0.26 정도의 사랑은 해야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
0인 사랑도, 1인 사랑도 없다는 말의 진의는 ‘그냥 사랑하라’는 말이다. ‘그냥 사랑하라’라는 말은 만져주었으면 좋겠다는 사람을 그냥 만나고, 만져주고 싶은 사람을 그냥 만나라는 말이다. 너는 "지금은 그런 사람이 없다"고 말했었지? 거짓말이다. 0과 1 사이에 빈곳이 있더냐? 그 사이에는 무한히 많은 점들이 이미 존재하고 있다. 빈곳이 있다고 말하는 이들은 0과 1로 세상을 나누는 사람이다.
0.000001인 사랑이면 어떠냐? 욕정인지, 동경인지, 연민인지, 박애인지, 우정인지, 끌림인지, 사랑인지 명징하게 알 수 없는 감정이면 어떠냐? 머리는 잠시 멈추고, 몸이 원하는 대로 가라. 감정을 따라가라. 분명 아픔도 있고 상처도 있겠지. 하지만 아픔과 상처인 시간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멈춰버린 시간보다는 훨씬 더 기쁜 시간으로 기억될 게다.
아는 것의 궁극은 결국 잊는 것이다. 그러니 생각하지 마라. 그냥 살아라. 그냥 누군가를 만나라. 만지고 만져지고 싶은 사람을 그냥 만나라. 나는 네가 그리 살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