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야, 벌써 몇 번째 소개팅이냐? 헤어 진지 얼마나 됐다고.”
“힘들어서 그렇지.”
“뭐가 그렇게 힘드냐?”
“그냥 내가 무의미한 존재가 된 것 같기도 하고, 자존감도 낮아지는 것 같고.”
이별한 친구와 나눈 대화다. 여자 친구와 헤어지고 일주일도 채 안되어 소개팅만 벌써 5번째다. 친구는 힘들어서 그렇다고 답했다. 무엇이 힘들었던 걸까? 옛 추억, 비어 있는 옆자리의 허전함 등 이별이 주는 힘듦은 많다. 하지만 친구의 힘듦은 그런 것이라기보다 자신이 무의미한 존재가 되어 가는 것 같다는 이야기였다. 그래서 심지어 자존감마저 낮아진다고까지 말했다.
이별이 힘든 데는 많은 이유가 있다. 옛 추억, 그리움, 허전함 등등. 하지만 그 친구가 힘든 이유는 좀 달랐다. 자신이 보잘 것 없는 존재가 되어가고 있다는 느낌 때문에 힘들다고 했다. 그렇다. 이별이 힘든 이유는 뜨거웠던 연애가 끝나면 갑자기 자신이 아무 것도 아닌 존재로 전락하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제 알 것도 같다. 매일 같이 소개팅을 해서라도 다시 연애를 하려고 했는지 말이다. 그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메워보고 싶었던 것이다.
삶이라는 드라마에서 우리는 엑스트라다.
왜 연애를 하려고 할까? 연애가 주는 달콤함? 설렘? 안정감? 다 맞다. 그런데 연애가 주는 본질적인 만족감은 전혀 다른 곳에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네 삶을 드라마라고 생각해보자. 우리는 어떤 역할일까? 집에서는 아버지, 어머니가 시키는 대로 해야 하는 조연이다. 학교에서는 강의실을 가득 채운 수많은 학생들 중 한 명인 조연이다. 직장은 어떤가? 김 대리, 박 대리, 최 과장 사이에 존재하는 비중 없는 조연이다. 주인공은 언제나 부모, 선생, 사장, 팀장이다.
조연이라도 되면 그나마 다행일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삶에서 조연도 아니다. 거의 엑스트라다. 우리는 학교, 직장에서 있는지 없는지도 모를 엑스트라 중에 한 명일지도 모르겠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와 사람들의 관심을 받는 주인공은 당연히 자존감이 높다. 왜? 자존감은 사랑(인정, 관심, 칭찬)받은 기억의 합이기 때문이다. 엑스트라는 당연히 자존감이 낮을 수밖에 없다. 왜? 사랑받은 기억의 합이 현저히 적기 때문이다.
‘왜 연애를 하려고 할까?’라는 질문에 이제 답할 수 있을 것 같다. 언제까지나 엑스트라로 살 수만은 없지 않은가? 삶이라는 드라마에서 주인공이 될 수 있는 기회가 있다. 연애다. 우리네 평소 삶은 조연 혹은 엑스트라다. 하지만 연애에 빠지게 되면 우리는 순식간에 주인공이 된다. 아직도 기억난다. 발 디딜 틈 없이 인파가 넘치던 명동 시내, 약속 장소에서 서로를 단박에 알아봤던 그 순간이. 마치 영화 속 배경이 흐릿하게 처리되고 오직 나와 연인만이 선명한 장면처럼 그렇게 주인공이 된다.
연애로 주인공이 된다.
연애를 하면 순식간에 주연이 된다. 연인과 데이트를 할 때면 상대는 오직 나만을 바라본다. 나 역시 오직 상대만을 바라본다. 서로가 서로를 주인공으로 만든다. 그게 연애다. 집에서, 학교에서, 직장에서 천대 받고 무시 받았던 엑스트라인 내가 연애를 하면 단박에 드라마를 좌지우지하는 주인공이 되는 황홀함. 그게 바로 연애가 주는 매력이다.
나는 상대를 통해 주인공이 되고, 상대는 나를 통해 주인공이 된다. 친구가 이별 후에 왜 무의미한 존재가 된 것처럼 느꼈는지도 이제 알겠다. 연애를 통해 겨우 겨우 주인공이 되었는데, 그 연애가 끝나 또 비중 없는 조연으로, 존재감 없는 엑스트라 다시 전락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존감도 낮아진 것처럼 느껴진 게다. 그러니 어찌 다시 연애를 하고 싶지 않을까? 영원히 엑스트라로만 살고 싶은 사람은 없을 테니까.
삶의 주인공이 되자!
주인공으로 살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을까? 우리도 당당하고 주도적으로 극(삶)을 끌고 가는 주인공으로 살고 싶다. 다행이다. 이제 이 불행한 악순환을 끊어 낼 수 있는 방법을 알게 되어서. 연애! 너무나 사랑하기에 서로가 서로를 주인공으로 만드는 연애를 통해 주인공이 될 수 있다. 뜨거운 연애를 하면 주인공이 된다. 정확히는 서로가 서로를 주인공으로 만든다. 그리고 주인공이 되는 경험이 충분히 쌓였을 때 우리는 연애 밖에서도 주인공으로 살 수 있다.
생각해보면 정말 그렇지 않은가. 아버지 눈치를 보며 살던 조연인 딸이 연애를 시작했다. ‘귀가 시간을 지키라’라고 말하는 아버지에게 그녀는 이제 주인공이 되어 당당하게 이야기하게 된다. “제 인생은 제 거예요!” 사장과 상사 눈치만 보며 엑스트라처럼 살던 소심한 월급쟁이가 연애를 시작했다. 그는 이제 상사에게 주인공처럼 이야기하게 된다. “오늘은 일찍 퇴근해야 하겠습니다!” 뜨거운 연애를 하게 되면 그렇게 주인공이 된다.
딸과 월급쟁이는 이렇게 외치고 싶은 것이다. “제 인생의 주인공은 저예요!” 연애, 그것은 얼마나 유용한가? 연애 자체가 주는 행복감, 설렘은 물론이고, 흔해빠진 조연이 주인공이 되는 황홀감까지 주지 않던가. 그뿐인가? 연애를 통해 주인공이 되는 그 경험은 연애 밖, 우리 삶 전체에서 주인공이 될 수 있는 힘마저 준다. 이쯤 되면, 아무리 용기 없는 사람일지라도 연애에 사활을 한 번 걸어볼만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