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을 공부하면 머리가 굵어지죠. 그래서 때로 철학을 꽤나 공부한 이들은 오만해지기 쉬워요. 언젠가 철학 꽤나 공부했다는 친구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어요. "철학은, 잘 살기 위한 도구고, 잘 산다는 건, 사랑하고 사랑받는 존재가 된다는 의미에요" 그 친구는 제게 따지듯 말했지요. "저는 선생님의 말씀에 동의하지 않아요. 사랑이라는 것으로부터도 자유로운 존재가 되고 싶어요. 그렇게 온전히 자유롭게 살아가는 것이 잘 사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웃음을 참느라 애를 써야 했어요. 어떤 철학에 영향을 받았고, 또 얼마나 열심히 철학을 공부했는지 얼핏 보였기 때문이었죠. 그 귀여움에 저는 이런 답을 돌려주었어요. "자유로움은 의존하지 않는 상태가 아니라 의존의 대상을 스스로 정할 수있는 상태에요."
철학을 공부하면, 때로 오만해질 수 있어요. 그 오만은 오해로부터 시작되죠. 인간이라는 존재가 가진 한계에 대한 오해. 근본적으로 인간은 혼자 살 수 없어요. 인간은, 나약하게 짝이 없는 존재에요. 그걸 인정해야 해요. 어떤 철학자가 인간의 본성을 ‘vulnerability’(상처받기 쉬움, 취약성)로 정의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일 거예요.
철학은 기존의 사고방식을 넘어선 새로운 전망을 열어주기에, 한 사람의 세계관에 강렬하고 깊숙이 들어오죠. 철학은 너무나 날카로운 칼이에요. 그래서 조심해서 다뤄야 해요. 자신이 공부한 몇몇의 철학으로 현실을 해석하려 하면 됩니다. 그건 '해석'이라기보다 '구겨넣음'에 가까울 거예요.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보려 하기보다 자신이 감탄한 철학에 현실을 구겨넣으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철학의 궁극은, '진여'眞如에 있어요.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 저는 그것이 철학의 궁극이라고 믿고 있어요. 철학을 통해 '진여'에 도달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많던가요. 삶의 진실을 보려하기 보다, 자신이 보고 싶은 것을, 보고 싶은 대로만 보려는 이들이 얼마나 많던가요. 그네들은 곧 알게 되거예요. 철학이라는 날카로운 칼에 깊게 베어버린 자신을요.
철학에 대한 이해가 깊어질수록, 철학의 날카로움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