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며칠, 휴가를 내고 지방으로 여행을 다녀왔다.
구부러진 국도를 따라 하염없이 달렸다.
보석 같은 시간이라고 말하는 그녀 옆에서
나는 우리가 좋아하는 음악을 틀었다.
느슨한 비트가 국도를 따라 미끄러졌다.
나뭇잎의 푸른 빛과 낮은 지붕의 건물들이
우리 뒤로 내달리며 재잘거렸다. 봄이었다.
끝없는 국도는 무중력의 시간이었다.
여기와 저기 사이, 경계 지을 수 없는 공간.
이편도 저편도 필요하지 않은 평등의 공간.
오직 달리는 것만이 삶의 이유인 것처럼
우리는 그렇게 달리고 또 달렸다.
이번 여행에서 목적지는
형식적인 마침표에 불과했다.
그곳이 어디든 우리에겐
달리는 것만이 중요했으므로.
'길 위의 우리'가 중요했으므로.
우리는 목적지의 역할을 축소시켰다.
어쩌면 나는 질렸을 지도 모른다.
목적지가 중요한 여행,
무언가를 목적해야 하는 여행에 대해.
그리고, 목적이 인생을 저울질 하는 시간들에 대해.
순진한 꿈조차 평가의 대상이 되는 세상.
나는 <필경사 바틀비>의 바틀비처럼
아무 것도 하지 않음을 하기로 했다.
목적하지 않기로 했다.
적어도 이번 여행에서 만큼은.
나는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기로 했다.
그 여행에서 나는 아무 것도 하지 않기로 했다.
다만 해끔한 햇살 아래를 걷고 싶은 만큼 걸었고
걸었던 만큼 돌아오기를 반복했다.평서문 같은 시간이었다.
그런 시간도
누군가에게는 간절하고
충분히 만족스럽다.여행 에세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은> 중에서
나는 내 인생이 슴슴했으면 좋겠다.
누군가의 입맛에는 맞지 않을지도 모를 맛.
그러나 오랫동안 입안에 머물며
고요히 기억을 남기는 그 맛.
내 삶에서 그런 맛이 났으면 좋겠다.
연필로 꾹꾹 눌러 쓴,
평서문 같은 삶이었으면 좋겠다.
휴가를 끝내고 돌아온 회사.
다시 물음표와 느낌표로 가득 채워야 하는 시간들.
시간과 함께 흐르는 일상, 그 사이사이에
국도 위에서 보냈던 평서문 같은 기억을 집어넣어 본다.
조금은 위로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