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 움직임 : 독기를 채감한다는 것]
인간은 자기 편향에 사로잡히곤 합니다. 굳이 인지심리학이나 행동경제학 혹은 정신분석학을 꺼내지 않아도 말입니다. 인간의 주관성은 인간이 사회를 형성하고 집단선택에 따라 진화적 우위를 점하게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그 주관성은 곧잘 편향으로 흐르며 고집으로 표현되곤 합니다. 그 편향은 자신을 지키려는 본능적 감정과 이를 합리화하는 가치관을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버려야 살 수 있는 데 버리지 못하는 게 사람의 성향입니다.
그 성향을 형성하는 게 독성이라 할 수 있습니다. 즉 독성은 인간 몸 운영을 어그러지게 하는 건강적 측면이지만, 또한 존재를 편향되게 이끌어가는 것이기도 합니다. 자기 자신이 얼마나 인지적 편향 혹은 존재적 편향에 사로잡혀 있는지는 자기 독성을 체험하는 수 밖에 없습니다.
독한 존재라는 게 타인을 지칭하는 단어가 아니라, 그 단어가 외부를 향한 자신의 그림자 투사라는 걸 [몸으로] 느껴야 합니다.
이를 잘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은, 선한 사람들입니다. 즉 자기 인생에서 착하게 살아왔다고 자부하는 사람, 의미있게 살았다는 사람, 성공했다고 하는 사람. 그런 사람들이 더 잘 느끼지 못합니다. 왜냐면 자기는 희생했기 때문입니다. 인정욕구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걸 넘어서야 존재로 존재할 수 있다 합니다.
그걸 넘어가기 위해서 독성을 몸으로 체험해야 합니다. 독이 발현되서 아파보기도 하고 독에 취해보기도 하고 몸에 종기가 나보기도 하고. 우울의 정조에 감싸져보기도 하고 말이죠. 그걸 삭제하거나 덮거나 피해가면 자기 편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합니다. 소비적이고 휘발적 자유만 맛볼 뿐입니다.
나를 다시하는 몸짓. 이 말을 다시 생각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