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언들에게 곰은 특별한 의미가 있어. 여러 의미가 있지만 그 중 곰은 자연의 힘 그 자체를 의미하기도 했지. 즉 생산의 생산을 하는 자연을 의미했어. 그래서 곰은 자연의 여성적 원리를 상징하기도 해. 우리 단군신화에서도 그렇지? 아마 어떤 원형(아키타이프)일 거야.
그런데 인디언들이 곰을 만나는 건, 사냥을 통해서였어. 그 사냥은 보통의 사냥이 아니지. 즉 영화에서 많이 보는 서양에서 귀족들이 하는 헌팅이 아니었어. 그것은 하나의 예禮였기 때문이야. 자연의 생명 그 자체를 만나러 가는 것이기 때문이지. 그래서 사냥을 하러 갈 때 언어도 조심했지. 즉 총이라고 하지 않고 흰학이라고 하거나 이런 식으로. 어떤 부족은 곰을 만나면 좋은 무기를 사용하지 않았어. 좋은 무기는 곰에 대한 실례라고 생각했던 거야. 대신 원초적이고 단순한 무기를 가지고 곰과 상대를 했지. 그게 곰과 싸우는 예의라고 생각한 거야.
가을의 전설에서 보면, 브래드 피트가 열연한 주인공이 곰과 맨손으로 싸우잖아. 자연의 영혼에 맞는 예를 갖추는 거지. 그리고 곰이 되어버리잖아. 자연이 되는 거야. 인간이 기술로 자연의 힘을 빼앗아서 저장하는 게 아니라 자연의 힘을 받는 것이기때문에 예를 갖추는 거야.
쉽게 생각하면 이런 거야. 오늘날 현대인에게도 순수 증여를 얻기 위해서는 예를 갖춰야 한다는 야생적 사고가 살아 있어. 가장 잘 드러나는 사례가 연애할 때야. 여성의 원리를 상징하는 곰에게 예를 갖추는 것처럼, 남자들은 여성을 만날 때 예를 갖추잖아. 관계를 갖는다고 해도 충분히 전희가 중요한 것처럼 말야. 그런 섬세한 예가 없으면 관계가 틀어지고 말지. 순수증여에 접하는 건 예를 갖추는 것이야. 진짜 야생적 사고를 가진 남자는 여성에 대해 섬세한 예를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지. 나쁜남자하고 달리.
하이데거라는 독일철학자가 있었어. 그는 테크네techne와 포이에시스poiesis를 구분했어. 테크네는 자연의 힘을 도발에 의해 가져온다는 의미를 갖고 있어. 반면 포이에시스는 자연이 주는 것을 부드럽게 받아들인다는 의미가 있었지. 그런데 현대 기술문명은 자연의 힘을 테크네를 통해 가져오고 축척하려고만 해. 그래서 순수증여에서 이탈되어 있고 결핍에 오히려 더 민감한 거야. 그러나 포이에시스는 그렇지 않지.
우리는 예라고 하면 어떤 형식적 질서를 먼저 연상하게 되. 그러나 예라는 게 발현된 그 신석기의 사고를 추적하다 보면 그렇지 않다늘 걸 알게되. 예는 유한한 개체가 순수증여의 생명력을 갖는 자연에 대한 관계 방식이었어. 그 방식은 그렇기 때문에 충분히 감각적이면서도 충분히 대상을 존중하면서 관계 중심적이야. 그렇기 때문에 자연의 힘을 순수증여로서 받을 수 있는 거고.
혹시 마음에 결핌감을 느껴? 그럼 돌이켜봐. 순수증여의 자연(여성)을 테크네로 대했는지, 포이에시스로 대했는지 말야. 예로 대했는지 기술로 대했는지. 그럼 순수증여를 받는 법에 대해 습득하게 될 거야. 장담.
형 말에 깊은 깨달음을 얻고 가. 예전의 난 자연을 테크노로 대한것 같아. 지금은 포이에시드로 대하려고 노력하는 중이야. 받아들이는것도 노력이 필요한것 같더라구. :)
응 함께 받아들이는 예를 갖추자~^^ 나도 배우는 중이야.
!!! 힘찬 하루 보내요!
감사합니다 !!
그렇다면 autopiesis가 自動然이 되겠네요.
禮의 의미를 함축하는 단어가 서양에서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혹시 님의 생각이신가요? 아니면 어디서 참조하셨는지요?
음.. 글의 모자이크를 만들때 소재가 되었던 조각들이 있습니다. 그것을 일일이 언급하는 것보다, 가만히 놓아 두시는 게 좋을 듯 합니다.
애독자로서의 관심으로서 너그러운 아량을...
질문이 결례였나봅니다. 본의는 그게 아니었네요.(저의댓글을 보니까 제가 따지려는 뉘양스였네요. 다시한번 꾸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