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 틈 내기] 타인의 눈을 위한 선택

in #kr7 years ago (edited)

한 해 두 해 경력이 쌓일수록 선택하고 결정해야 할 순간이 많아졌다. 누군가는 그렇지 않은 일이 어딨냐고 위로나 핀잔을 줄 수도 있겠지만 그 말을 하는 사람 역시 선택의 순간이 매번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당장 눈앞에 놓인 선택은 책장에 늘어선 4, 5종의 표지 시안. 일주일 안에는 반드시 5월 말에 출간해야 하는 책 세 권의 표지를 선택해야 한다. 최대한 원고의 느낌을 잘 살려 줄 일러스트레이터를 골랐지만 완성된 그림이 늘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다. 어떤 그림은 스케치부터 채색까지 별다른 수정 없이 한 번에 진행되지만 어떤 그림은 스케치 단계에서부터 여러 사람과 수많은 말들을 주고받아야 한다.

스케치 단계에서부터 흔쾌히 넘어갈 수 없었던 그림은 결국 “일단 최대한 수습해 보았어요.”라는 디자이너의 말이 붙은 채 4개의 시안이 되어 내 앞에 놓였다. 네 가지 중 그나마 나은 것을 선택하기 위한 고민이 시작된다. ‘이 시안에서 배경색을 좀 더 진하게 올리면 어떨까?’, ‘다른 요소들을 좀 더 넣어야 하지 않을까?’ 매력적이지 않은 선택지를 받아든 순간은 괴롭다.

책 표지를 선택하는 일은 내 눈에, 내 마음에 드는 것을 고르는 선택과 비슷하지만 다르다. 다른 사람들 눈에, 이 책을 살 내가 모르는 누군가의 마음에 어떤 것이 더 마음에 들지를 상상해 보아야 한다. 타인의 눈을 위한 선택을 위해 나의 눈을 맞춰야 한다. 이번에 할 선택은 얼마나 더 ‘타인의 눈’에 가까이 갈 수 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상은 얼마나 더 내 눈에, 내 마음에 드는 선택이 되고 말까.

퇴근 시간을 넘긴 채 사무실을 나오며 생각한다. 오늘 저녁 마음과 내일 아침의 마음이 다를 테니, 그리고 나의 눈과 내 동료들의 눈이 다를 테니 좀 더 시간을 두자. 그 틈에 기대 보자. 타인의 눈을 위한 선택은 괴롭다.

  • 일상에 틈을 내기 위한 기록들을 연재해 나갈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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