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 틈 내기] 언제까지 독지가처럼 회사를 다닐 것인가

in #kr7 years ago

지난 금요일 오후, 다른 업무로 부장과 함께 이사실을 방문했던 그는 생각지도 못한 일로 맹비난을 받고 만다. 이사는 마침 잘 되었다며 그가 이전에 제출했던 기획안 이야기를 꺼냈고, 그는 아무런 준비도 없이 이사가 던지는 질문에 더듬더듬 맥락이 매끄럽지 못한 대답을 해야했다.

독지가 스타일의 기획이 아니라 아이돌을 데뷔시키는 기획사의 기획이 필요하다는 이사의 말은 지극히 타당한 말이었다. 하지만 그 말은 생각지 못한 불구멍을 열어 그의 가슴에 화를 지폈다. 한 달 한 달 월급을 받고 사는 편집자가 야근 시간을 쪼개 쓴 기획안에 돈 많은 독지가가 쓴 기획안이라는 꼬리표를 붙이는 것은 분명 부당했다.

그날 저녁부터 그는 가슴 속에 화가 치밀어 잠을 잘 수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가 낸 기획은 사실 그가 쓰고 싶었던 글이었다. 그 기획안은 책을 쓰는 사람 대신 책을 만드는 사람이 되고 만 그가, 이제 그만 포기하고는 수첩 속 깊숙이 적어 두었던 글쓰기 아이디어를 세상에 디밀며 누군가 이 주제로 나 대신 글로 써 주었으면 좋겠다고 한 항복 선언이기도 했다.

그런 그의 기획이 무엇이 문제인지, 어디가 허술한지까지만 지적했다면 당연히 화가 치밀어 잠을 자지 못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그는 자신의 잘못은 쿨하게 인정하는 편이다). 이사가 덧붙인 한마디는 하지 말아도 될 생각을 너무 많이 불러일으켰다.

“이건 돈 많은 독지가가 이 필자가 좋아서 쓴 기획안이지.”

그는 그의 ‘항복’을 독지가의 여유쯤으로 읽은 이사의 말을 참을 수가 없었다. 토요일 새벽 세 시, 이불을 걷어차고 다시 책상 앞에 앉는 그는 책장을 오래 들여다보았다.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나.’
‘언제까지 독지가처럼 회사를 다닐 것인가.’

그는 삼 일째 잠들지 못하는 밤을 보내는 중이다.

  • 일상에 틈을 내는 기록을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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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들지 못하는 시간만큼 나중 결정에 도움이 되길 기원할 뿐, 무슨 위로를 드려야할지 모르겠네요. 앞으로도 좋은 글 기대할게요.

그 불면 덕분에 이곳에 글을 올릴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어요. 이상한 용기가 불쑥. 일상을 꾸준히 기록해 보려고요. 응원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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