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 틈 내기] 책을 쓰는 자가 아니라 책을 만드는 자가 되다

in #kr7 years ago (edited)

자기 책을 쓰고 싶었던 한 사람이 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자신은 앞으로 글을 쓰는 사람이 되겠다고 막연히 생각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점은 그가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막연히’ 했다는 점이다.

초중학교 시절 그는 일기를 열심히 썼다. 자신이 쓴 일기를 다시 읽어 보며 자주 감탄했다. 아무리 봐도 글을 꽤 쓰는 것 같았다. ‘막연히’ 글을 쓰고 싶었던 그는 국문학과로 진학한다.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이 공부가 될 수 있다니, 전공 수업은 대학이 그에게 준 최상의 선물이었다. 대학 도서관 서가를 오가며 수많은 책등을 눈으로 훑을 때면 그는 늘 가벼운 흥분 상태였다.

문제는 글을 쓰고 싶었던 그가 어떤 글을 써야 할지 잘 몰랐다는 점이다. 글을 쓰는 것과 작가가 되는 것 사이에는 폭이 넓은 강이 흐르고 있었고, 그 강을 건너기 위해서는 뗏목이 필요했다. 누군가는 시로 만든 뗏목을 타고 강을 건넜고, 다른 누군가는 소설로 만든 뗏목을 타고 강을 건넜다. 드물긴 했지만 드라마 대본으로 만든 뗏목을 타고 강을 건너는 이도 있었다. 그 외에도 많은 종류의 뗏목이 있었겠지만 사실 그의 눈에는 잘 보이지 않았다.

그는 소설로 만든 뗏목을 타고 강을 건너고 싶었다. 먼저 소설로 자기만의 뗏목을 만들어야 했다. 그는 일 년에 한두 편씩 소설을 연습했다. 어째서 한 달에 한두 편이 아니라 일 년에 한두 편이었는지는 아마 당신도 눈치를 챘을 것이다. ‘막연히’는 소설을 호락호락 내어 주지 않는다.

10년이 지났는데도 그는 뗏목의 재료가 될 통나무를 절반도 만들 수 없었다. 대신 수많은 질문을 만들었다. 자신이 소설에 어울리는 사람인지, 왜 60매에서 80매로 넘어갈 수가 없는지, 자신보다 어린 등단 작가들의 작품이 대체 어디가 좋은 것인지, 과연 소설이란 것이 살아가는 데에 쓸모가 있을지. 그는 아무런 답도 얻지 못했다. ‘막연히’ 시간이 흘렀고 그에게도 밥벌이가 필요했다.

그는 글을 쓰는 것과 가장 가까워 보이는 곳의 문을 두드렸다. 문 안은 책을 만드는 곳이었다. 그의 전공과 자기소개서는 책을 만드는 문 안으로 가는 발판이 되었다. 그는 소설을 쓰는 데에 실패했다는 사실을 감춘 채 다른 사람의 글을 책으로 만드는 일을 시작하게 된다.

굳이 정확히 말하자면, 그는 책을 쓰는 자가 아니라 책을 만드는 자가 되고 만 것이다.

  • 일상에 틈을 내기 위한 기록을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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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쓴다는 것은 매력적이지만, 쓰는 것은 참 어렵더군요. 화이팅하세요.

응원 고맙습니다! ^^ 무엇이건 꾸준히, 기록을 이어가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