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영화 '리얼'의 스포가 포함되어 있다. (스포가 가능한 영화인지는 모르겠으나..) 영화를 본 뒤, 이 글을 보는 것을 추천한다.------------------------
내가 해석한 '리얼'은 이렇다.
<설정>
영화 전반을 아우르는 설정이 있다. 해석의 핵심 키다.
'시에스타'라 불리는 마약
- 마약에 취했다 깨어나면 취했던 그 순간에 대해서는 기억을 일부 잃는다.
- 마약을 하면 인격이 두 개로 나눠지는 '해리성 장애'를 겪는다.
두 번째 '해리성 장애'에 대해서는 뒤에서 다시 한 번 다룰 것이다.
<영화 속 세계>
내가 해석한 '리얼' 속 세계는 두 가지로 나뉜다.
- 현실세계
- 환각세계(=머릿속세계)
(첫째, 현실세계)
현실세계부터 이야기를 하자면 (영화에 나오는 직접 장면도 있고, 나온 장면으로 일부 유추한 부분도 있다. 여기서부터 기존의 보편적인 해석과 많이 다르다)
장태영(김수현)은 MBN 기자 공채 출신에 르포 작가로 전향한 프리랜서다. 위험하고 베일에 쌓여 있는 취재 현장에 잠입해 이를 익명으로 블로그에 올리는 일을 한다.
그러던 중 사람들이 자꾸 행방불명 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그 내막을 파헤치던 르포 작가 장태영(김수현)은 노염 형사(이경영)와 함께 이 사건에 깊숙히 들어가게 된다.
(노염 형사와 장태영의 관계는 영화에서 전부 나오진 않지만, (전직) 기자와 형사의 관계로 원래 서로 친했던 사이인 듯하다. 일부 영화 속 스쳐가는 장면에서는 노염 형사의 딸도 행방불명 되었고 (노OO 이라는 여자가 행방불명 리스트에 있음) 그 여자가 장태영의 여자친구이기도 했던 것으로 추정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 노염 형사와 장태영의 관계는 중요하지 않다.)
(여기서 행방불명 리스트가 잠깐 나오는데, 성동일, 최진리(설리) 등이 원래와 다른 이름으로 실려 있다.)
이 사건의 중심에는 '시에스타'라 불리는 마약이 있다. 행방불명 된 사람들이 하나 같이 이 마약을 했던 것.
그래서 르포 작가 장태영(김수현)은 취재를 위해 마약을 생산&판매하는 소굴에 잠입해 들어가게 되고, 노염 형사와 함께 마약 사건을 일망타진한다. (이 때 '마약 소굴에 잠입한 장면'은 뒤에 환각세계에서 다르게 발현한다)
하지만 장태영의 여자친구이자 동시에 노염 형사의 딸인 여자는 발견되지 않는다. 마약팀 일망 타진으로 노염 형사(이경영)은 표창도 받지만 정작 실종된 자신의 딸은 찾지 못해 괴로워 한다.
(결국 나~중에 계속해서 추적한 끝에 노염 형사가 딸의 행방을 발견하면서 쓰러지는 장면이 나온다. 약 2초 정도. 시체를 발견한 건지, 딸을 녹화한 비디오테이프를 본건지는 정확히 나오지 않는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장태영(김수현)이 사건을 취재하기 위해 직접 마약을 했었던 것. ("이것은 취재를 위한 기억. 나는 나를 이긴다")
하지만 장태영(김수현)은 마약에 중독된다. 이때까지만 해도 노염 형사와 함께 본인의 여자친구이자 노염 형사의 딸을 여전히 찾고 있는 중이었다.
(노염 형사가 장태영한테 "태영아, 너무 위험해. 넌 이제 이 사건에서 손 떼". -> 이말을 한 시점은 이미 마약 사건은 일망타진한 이후임. 근거=마약사건 해결로 훈장 받은 신문기사가 존재). 함께 실종된 딸을 찾고 있는 중이었는데, 동시에 장태영은 중독된 마약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하던 때이다.)
여기서 중요한 설정이 하나 더 나온다.
마약을 하면
- 기억을 잃고 이중인격이 된다는 것
- 마약 후 잃어버린 기억을 되찾는 방법이 있다. 얼음물에 몸을 깊이 담그면 의식의 깊은 곳으로 들어가 당시의 기억을 떠올릴 수 있다.
(그래서 장태영은 마약을 하고 정신을 잃은 뒤 깨어나면 꼭 찬물에 몸을 담궈 기억나는 것을 정리하는 방법으로 취재를 했다.)
장태영(김수현)은 여자친구를 찾기 위해 본인도 마약을 즐기는 사람이 되어 마약소굴에 잠입한다. 결국 장태영은 어떤 룸 같은 곳에서 (마약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환각을 즐기는 장소) 행방불명된 여자친구를 찾게 된다. 하지만 마약에 취한 장태영은 여자친구와 함께이어서 마약을 하게 되는데..
- (여기서 내용이 조금 복잡하다. 당시 러시아와 중국이 손을 잡고 마약 사업을 하고 있었다. 이때 장태영이 훈장을 받았던 (일망타진된) 마약 사업은 중국쪽 마약 사업이었고, 장태영의 여자친구이자 노염 형사의 딸인 그 여자는 러시아 사람들이 운영하는 룸에서 마약에 빠져 있었기에 못 찾았던 것이다. 이것의 근거는 후에 김교수라 불리는 세르게이가 먼지가 수북히 쌓여 있는 룸에 나타나 미이라 같이 변한 여자의 시체를 옮기는 장면이 나오는 것에서 유추할 수 있다.(이 부분은 실제 현실세계) 장태영이 얼핏얼핏 떠올리는 룸 현장의 모습에서 '지팡이'가 나타나는데, 이 또한 러시아 쪽 마약룸이라는 것을 암시한다.)
그리고 마약에 취한 채 차를 타고 가다가 사고가 나서 식물인간이 된다. 그리고 62세까지 식물인간으로 살다가 생을 마감한다. 지금까지 이해를 위해 장태영이라 설명했지만 실제 병원 차트 속 이름은 '윤상일'.
이 때 식물인간이 된 윤상일(장태영)의 뇌에는 마약을 했던 당시의 상황이 온전히 기억되지 않고(왜냐면 마약에서 깬 뒤 찬물에 들어가야 온전히 기억이 돌아오는데, 사고가 나 식물인간이 되었으므로) '어떤 문신을 한 사람이 자신의 여자친구를 강간하고 있고, 지팡이를 짚은 사람이 나타났으며, 총성이 울리고 피가 터지면서 방 안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죽었던 것'만이 기억에 남는다.
여기까지가 '리얼' 의 '현실세계' 이야기다.
시간 순서대로 정리하자면
- 르포 작가 장태영이 노염 형사와 마약사건을 취재한다.
- 결국 중국 쪽은 일망타진하지만 그 과정에서 장태영은 마약에 중독되었고, 행방불명된 여자친구이자 노염 형사의 딸은 찾지 못한다.
- 장태영이 여자를 찾기 위해 마약을 하고 한 번 더 마약 소굴에 들어가게 된다. (이번엔 러시아 쪽)
- 그러나 그곳에서 기억이 온전하지 않은 채 ('문신', '지팡이', '총성', '피튀김' 만 기억) 차를 타고 돌아오다가 사고가 난다.
- 식물인간이 되어 생을 마감한다.
까지가 '리얼' 속 현실세계에서 일어난 일이다.
<둘째, 환각세계(또는 머릿속세계)>
자, 이제 영화에서 대부분을 차지하는 환각세계(또는 머릿속세계) 이야기를 해보자.
결론부터 얘기하면 나는 '시에스타'로 대표되는 카지노 이야기가 모두 식물인간이 되어 누워있는 장태영의 머릿속에서 일어났던 일이라고 생각한다. 즉 실제 세계에서 사고가 난 뒤 '식물인간이 되어 죽음에 이르기까지' 이 사이에 식물인간이 된 장태영의 머릿속에서 일어난 일이 바로 카지노 '시에스타'에서의 일이라는 것이다.
이를 뒷받침하는 근거는 마지막에 장태영이 흰 빛에 둘러싸여 정신이 아득한 순간을 보낸 뒤, 갑자기 싸움 잘하는 장태영이 되어 버리는 것에서 나타난다. (원래는 마지막 시에스타가 파괴될 때 바(bar)에 앉아 있는 이는 성형수술한 자선가 장태영이기 때문에 싸움을 잘할 수 없어야 한다) 싸우는 장면을 보면 영화 '매트릭스'와 흡사하다.
상처를 자신의 의지대로 치료하고 총알도 피할 수 있는 상태가 된 것. '매트릭스'에서 '네오'가 자신이 만든 세계 안에 있다고 자각한 이후로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던 것처럼 말이다. 장태영도 이것이 다 본인의 마음속에서 일어난 일이라는 것을 깨닫고 난 뒤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여기서 또 다른 설정이 드러나는데 그것은 바로
현실세계에서 장태영은 식물인간이 되어 62세까지 병원에서 산다.
식물인간이 된 장태영은 여전히 마약에 중독되어 있는 상태다.
장태영은 식물인간이 되어서도 끝없이 마약을 갈구하게 된다.
- ('매트릭스'에서도 기계에 들어 있는 인간들이 미치지 않게 하기 위해 계속 매트릭스라는 가상현실을 만들어 정신 활동을 하게 한 것처럼, 장태영 또한 몸은 식물인간이지만 정신활동은 마약을 통해 죽을때까지 이어지게 된 것이다. 그래서 젊은 장태영이 식물인간이 되어서도 병원에서 62세까지 살 수 있었던 것(은 추정임))
장태영은 링겔을 통해 계속해서 마약을 주입 받는다. 결국 환각세계에서 장태영은 아예 두 개의 인격으로 분리가 되어 탄생한다. 이때에도 마약을 계속 하고 있기 때문에 마약 설정인 1. 단기기억상실과 2. 이중인격은 이어진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
장태영이 현실세계에서는 한 몸에 두개의 인격이 존재하는 '이중인격'이 될 수 밖에 없지만,
머릿속세계에서는 각각의 인격을 갖는 두 개의 몸을 가진 장태영으로 분화될 수 있었다. (왜냐? 자신의 머릿속세계니까)
환각속에서 각각의 객체로 발현한 이 두개의 인격은 쉽게 설명하기 위해
- 깡패 장태영과 2. 작가 장태영으로 나누겠다.
이제부터 모두 머릿속 세계 이야기다.
영화 속 첫 장면인 심리 상담을 받고 있는 장태영은 두 개의 인격을 동시에 갖고 있는 것 '처럼' 나온다. 이 때문에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고, 내 안의 다른 놈을 죽여달라고 하면서 정신과 의사(이성민)을 찾아온다.
하지만 머릿속세계에서 장태영은 이미 두 개의 몸으로 나눠져 있었다. 하나는 침대에 식물인간으로 누워 있는 붕대인간, 그리고 멀쩡한 장태영.
심리 상담을 받는 장태영은 마치 본인이 깡패 장태영과 작가 장태영 두개의 인격을 한 몸에 갖고 있는 것처럼 '연기'를 하고 있던 것이다. 이것은 머릿속세계를 논리적으로 구현하기 위해 상상이 만들어 낸 현상으로 보인다.
멀쩡한 장태영(깡패+작가 이중인격을 한 몸에 지니고 있는)이 자신의 한 인격을 죽인다는 하나의 의식('치료'라는 명목으로 식물인간 장태영에게 와서 하나의 인격을 건네주고 그를 죽임으로써)을 통해 작가 장태영 인격이 죽은 깡패 장태영이 남고, 붕대인간이 작가 장태영의 인격을 받아서 태어난다(제1장. 탄생)는 설정은
사실은 머릿속세계에서 붕대인간이 침대에서 깨어나게 되는, (즉 누워있는 장태영이 현실세계에서는 식물인간인데, 머릿속세계에서 본인은 부활해야 하므로) 그 논리를 맞추기 위한 설정으로 나는 해석한다.
쉽게 설명하자면
식물인간 장태영은 머릿속세계에서 두개의 인격 1. 붕대인간과 2. 멀쩡한 장태영으로 나눠서 태어난 것.
다만, 멀쩡한 장태영이 이중인격(깡패+작가)을 갖고 있는 것처럼 연기를 한 것이다. (연기이지만 실은 진짜 두개라고 믿고 있는 것)
(근거=영화 앞부분에서 붕대인간에게 다가간 안경 낀 장태영(멀쩡한 장태영)이 미안해하며 붕대인간을 죽이는 의식을 치른다. 그러나 갑자기 붕대인간이 깨어나자 "에잇 실패했잖아" 하면서 안경을 벗고 문을 박차고 나간다. 이 부분이 사실 멀쩡한 장태영이 두개의 인격을 갖고 있는 것처럼 연기를 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이렇게 복잡하게 스스로를 꾸미는 이유가 무엇이냐? 이 모든 상황이 현실세계 붕대인간(식물인간이 된 윤상일=장태영)의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일인 것임을 생각해보면 쉽게 풀린다. 그 스스로가 머릿속 상황을 구현할 때, 본인이 부활하게 되는 계기를 스스로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다.
(현실은 식물인간, 그러나 마약에 취해 꿈을 꾸는데 너무나 현실 같아. 근데 잘 생각해보면 자신은 병실에 누워있어야 되잖아? 그러니까 꿈속이라도 논리적으로 보면 자유롭지 않은거지. 결국 침대에서 일어나야 할 논리를 스스로 만들게 되는 것. 부활했다고 생각하는 것. 진짜 진짜 현실세계에서는 그냥 누워있을 뿐인데.. 여기는 머릿속세계니까, 내맘대로. 그렇지만 논리적으로 믿기 위해서.)
복잡한 논리로 그럴듯하게 부활하게 된 붕대인간은, 현실세계 작가 장태영의 인격을 그대로 구현하는 장태영으로 탄생을 한다.
- (여기서 보통 이 붕대인간을 제 3의 인물로 (우연히 식물인간이 되었는데, '무인격'의 상태에서 장태영의 치료 의식을 통해 한 장태영의 인격이 이동되었다, 또는 거울 증후군이다 등등) 해석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나는 이 붕대인간이 원래부터 장태영이었다고 생각한다. 근거는 '전신성형'이라고 표현은 되지만, 그것이 붕대인간의 제3의 얼굴을 '장태영의 얼굴로 바꾸는 성형'이라는 말은 한마디도 나오지 않는 것에서 알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목소리 또한 '복원'한다고 표현하지 바꾼다는 말은 어디에도 없다. (재활치료 장면에서 두 장태영이 만났을 때 "복원중"이라고 말한다)
즉, 붕대인간 장태영은 성형으로 얼굴과 목소리를 바꾸고 기존의 장태영을 따라하려는 사람으로 묘사되지만, 사실 원래부터 장태영의 얼굴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다만 교통사고로 심하게 다쳤기 때문에 얼굴과 목소리를 복원하고 있었던 것 -> 앞서 언급했지만 머릿속세계이기 때문에 동시에 '두 명의 장태영'이 존재할 수 있다)
어쨌든 내가 생각하는 상황 설정은 이렇다. 이제 머릿속세계에서 각각의 장태영의 목적과, 이를 통해 표현하고자 한 이 영화의 핵심 주제가 무엇인지 알아보자. 내가 생각한 것을 듣다 보면 이 해석이 얼추 맞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머릿속세계의 목적과 영화의 핵심 주제>
이렇게 복잡하게 나름의 논리를 갖춰서 태어난 각각의 인격은 서로가 '진짜 장태영'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둘은 성격이 완전히 정반대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위에서 언급한 <설정> 2 번에(마약을 하면 인격이 두 개로 나눠지는 '해리성 장애'를 겪게 된다.) 핵심 메시지가 숨겨져 있다. 마약을 하면 해리성 장애를 겪어 '이중인격'이 된다고 했지만, 사실은 마약을 하면 이중인격이 아닌 '진짜 나의 모습'을 보게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이중인격'이라고 영화에서는 계속 표현하지만, 그것은 두개의 인격이 공존하는 것이 아니다. 둘 다 장태영의 원래 성격중 하며, 다만 마약을 했을 때 '폭력적인 성향을 갖은 나'의 모습을 보게되는 것일 뿐이다.
(술에 취해 폭력적인 성향을 보이는 사람에게 우리는 흔히 '너의 진짜 모습을 봤다', '그 사람의 본성은 매우 폭력적이다'라고 말한다. 그렇다고 우리가 그 사람에게 '이중인격'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왜 이런 설정이 필요했느냐? 이것을 알려면 깡패 장태영와 작가 장태영의 성격을 먼저 알아야 한다.
영화 첫 장면에서 최면에 걸려 두 번째 인격(작가 장태영으로 표현되지만 실은 연기일 뿐)으로 태어난 장태영이 갑자기 현실세계 마약룸에서 일어난 일을 언뜻 떠올린다.('어떤 문신을 한 사람이 자신의 여자친구를 강간하고 있고, 지팡이를 짚은 사람이 나타났으며, 총성이 울리고 피가 터지면서 방 안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죽었던 것')
장태영은 떠오르는 기억에 괴로워서 펜으로 자신을 찔러 죽으려고 한다. 이때 장태영이 괴로워서 죽으려고 하는 이유는 현실세계 룸에서 마약을 한 자신의 곁에서 여자친구가 문신을 한 남자에게 강간 당하고 이후 죽임을 당하는데, 나약한 자신이 지켜주지 못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현실세계에서는 차를 타고 가다가 식물인간이 되지만, 어쨌든 그 사실이 괴로운 작가 장태영은 머릿속세계에서는 스스로 나약한 모습을 없애고 싶어 하는 것으로 발현된다.)
또 다른 인격인 깡패 장태영의 모습은 폭력적인 성향을 온전히 담고 있다. 그러나 이는 동시에 단순히 술에 취해 폭력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과는 조금 다르게, 마치 진짜 또 다른 인격처럼 행동하는 (이것이 마약과 술의 차이인지 뭔지 모르겠다. 마약을 안해봤으니) 모습을 보이는데, 영화 내 정신과 의사(이성민)의 설명처럼 3살 짜리 인격과 같기도 하다.
껌을 격하게 씹는 모습을 연출하면서 똥폼을 잡는다든가, 조원근(성동일)을 처음 만나 "씨빨년이"라고 유치한 욕을 한다든가, 마치 문신과 상처를 자랑처럼 여기면서 정신과 의사(이성민)한테 보여준다든가, 치료 도중 러시아 인형을 갑자기 부시며 "모른다가 내 대답이다"라는 오글거리는 멘트를 날린다든가 하는 설정이 다 3살 짜리 유아틱한, 그러나 폭력적인 그런 성향을 가졌음을 은연중에 암시하는 것들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어쨌든, 3살이면서 동시에 폭력적인 성향을 가진 깡패 장태영은 사실 현실세계에서 작가 장태영이 은연중 되고 싶었던 모습이기도 하다. 아니, 그렇게 살아보고 싶었던 것(워너비). "어렸을 때 한 놈을 때렸더니 소년원에 가고, 그 놈을 죽였더니 어쩌구~, 스폰서를 만나 저쩌구~"라고 이야기하는 바로 그 삶 말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장태영이 기억하는 현실세계에서 여자친구를 강간하고 죽인 문신의 남자는 바로 '장태영' 자기 자신이었다. 마약을 해서 '폭력적인 성향'이 튀어나왔던 것이다. 영화 말미에 장태영은 이 모든 것이 자신의 상상속 세계였음과 폭력적인 깡패 장태영의 모습이 자기의 또 다른 모습에 불과했으며, 현실세계에서 자신의 여자를 죽인 범인이 바로 자기 자신이었음을 깨닫는다.
<* 여기서 잠깐>
근데 머릿속세계는 어떤 소재들도 조각된 것일까.
현실세계에서 장태영이 마약 잠입 취재를 하면서 보고 들은 모든 것들이 뒤죽박죽으로 얽혀서 하나의 세계를 탄생시킨 것이다. 마약으로 행방불명된 사람들이 송유화(최진리=설리), 조원근(성동일) 등으로 바뀌어서 하나의 역할을 이루고, 시에스타라는 카지노 또한 현실세계에서 같은 이름을 가진 마약에서 따온 것이다. (마약도 낮잠, 카지노도 낮잠 같은 것.)
- (그리고 본인이 실제 취재를 하면서 잠입했기 때문에 중국인들의 마약 현장 등등을 기억하고 있어서, 깡패 장태영이 이를 깨부수러 갈 때에도, 실제의 경험이 모티브가 되어 머릿속세계에서 이를 구현할 수 있었던 것이다. (미리 언급하면 여기서 작가 장태영은 현실세계에서는 그와 같이 깨부수고 할 수 없었기 때문에, 머릿속세계에서 이를 실현하는 것. 중국 사람들을 퍽퍽 쓰러뜨리는게 매우 비현실적인 이유도 이와 같다. 그렇게 해보고 싶었으니까.)
여기서 위에 언급한 <설정> 1번 (1. 마약에 취했다 깨어나면, 마약에 취했던 그 순간에 대해서는 기억을 일부 잃는다.)도 작용을 하는데, 현실세계 룸에서 마약을 한 후 여자친구가 죽은 것 까지는 알겠는데, 중요한건 어떤 문신을 한 사람이 자신의 여자친구를 강간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얼핏얼핏 식물인간이 된 장태영의 기억에 있던 것이다.
그래서 머릿속세계를 구현한 장태영은 이 끝자락만 희미하게 남은 기억의 조각을 갖고 세계를 만들었기 때문에, 자신의 또 다른 인격으로 탄생한 깡패 장태영이 이유도, 영문도 모른채 똑같은 문신을 찾고 다니는 것으로 설정이 된 것이다. "이 문신과 똑같은 문신을 한 사람을 찾고 있다"
-> 나는 개인적으로 이 모티브가 영화를 해석하는 핵심 키라고 생각한다. 이 부분이 영화 내에서, 또 머릿속세계에서 핵심 주제가 되어야 하는데, 여기서 감독이 뭔 짓을 하고 싶었는지, 이 부분을 별로 중요하게 다루지 않는다.
- (왜 그렇게 생각하냐면, 장태영이 똑같은 문신을 한 사람을 찾으려는 노력을 '전혀' 안한다. 말만 할 뿐이다. 계속 정신과 의사(이성민)의 입에서 "똑같은 문신을 한 사람을 찾고 계시다고요?", 또 조원근(성동일) 입에서 "너, 너랑 같은 문신을 한 사람을 찾고 있다지?" 등 주변인의 입을 통해서 나올 뿐이다. 정작 깡패 장태영은 1도 관심이 없다. 주인공 본인은 관심도 없고, 그럴려고 노력도 안하고, 오직 카지노만 지키기 위해서 싸울 뿐인데, 주변인의 입에서는 계속 '똑같은 문신을 찾고 있나' 라고 묻는다?)
아무튼 현실세계에서 식물인간이 된 장태영이 마약을 맞으면서 생성한 머릿속세계에서의 주된 목적은
- 당시 룸에서 있었던 그 문신을 한 남자가 누구인지 찾고 싶다. (단기기억상실증으로 어렴풋이 문신만 기억남)
- 원래 살고 싶었던 깡패 같은 모습으로 한 번 살아보고 싶었다.
- 유약한 본인의 평소 성격, 나약해서 본인의 여자를 뺏기고 죽임까지 당하게 만든, 바로 그 성격을 없애버리고 싶었다.
이 세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그래서 중국의 마약 조직을 붕괴시키러 갈 때, 붕대인간(작가 장태영 본인 본연의 인격)이 깡패 장태영을 뒤따라 가면서 카메라로 계속 찍는데, 깡패 장태영이 자꾸 퍽퍽 상대방을 무찌른 다음에 작가 장태영을 쓱 쳐다본다. 처음에는 그냥 똥폼이겠거니 했는데, 이 장면(장태영이 자꾸 뒤돌아보는)이 마지막에 다시 나올때 나는 개인적으로 무릎을 탁 쳤다. '아, 이것은 모두 장태영이 상상으로 만들어 낸 것이구나'
아무튼 붕대인간으로 탄생한 작가 장태영은 깡패 장태영의 모습을 하나하나 따라하려고 노력하는데 (워너비), 이 유약한 본성은 바뀌지 않는다. 송유화(최진리=설리)가 죽을 때, 총으로 쏴서 아픔을 덜어내주고 싶었지만 쏘지 못하는 장태영의 모습에서 스스로 유약한 모습을 극복하지 못함을 깨닫게 되기도 하고, 작가 장태영은 눈빛부터 여러가지 면에서 강해보이려고 하지만 자꾸 미간을 찌푸리고 있는데, 스스로 못견뎌하는 것처럼 보인다. (어색어색)
아, 여기서 유의미한 장면이 있는데, 욕조에서 죽은 송유화 앞에 카지노 칩이 떨어져 있는데, 영화에서는 마치 장태영이 그 안의 마약을 하고 난 뒤 웃으면서 자동차 운전을 하는 것 처럼 보이지만, 실은 이 카지노 칩이 암시하는 것은 카지노=비현실세계 이기 때문에, 송유화가 장태영의 손에서 죽음을 맞는 것도 사실은 다 머릿속세계에서 일어난 일임을 뜻한다. 실제 송유화라는 인물은 현실세계에서 마약 때문에 행방불명된 사람 중 하나일 뿐, 장태영과는 그닥 관계가 없는 사람이다.(둘의 관계에 또 다른 비밀이 숨겨져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내가 발견한 것에는 없다)
이 때 자동차 운전 장면은 현실세계에서 장태영이 식물인간이 되기 전 과속해서 자동차 운전을 할 때의 모습이다. (머릿속세계가 아니다.)
이외에 노염 형사(이경영)가 빔으로 쏘여지는 어떤 장면을 보고서 놀라서 자빠진 것은, 당시 장태영이 취재차 들고 간 비디오에 녹화된 모습에 러시아 마약 룸에 장태영과 자신의 딸이 마약에 취해 있는 모습을 본 것이다. (장태영이 식물인간이 된 후에 장태영이 녹화한 것을 다 뒤져봤을테니). 또 먼지 가득한 룸에서 여자 시체를 옮기는 김교수(세르게이)와 러시아 일당의 모습은 해당 룸이 김교수에 의해 운영되던 러시아 마약 룸이라는 의미이다. 그 룸에서 한쪽 벽에 쭉 도열해 있는 먼지가 수북히 쌓인 와인&양주 병들의 모습은 후에 장태영이 머릿속세계를 설계할 때 모티브로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카지노 씨에스타의 VIP룸 한쪽 벽면의 와인&양주 병들과 구조와 모양이 똑같다.)
그리고 같은 문신을 한 사람인 보리스=정신과 의사(이성민)는 현실세계에서 마약을 유통했던 러시아의 김교수(세르게이)가 이성민으로 변화해서 구현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중간에 잠깐 세르게이의 감옥 사진이 나오는데, 거기서 역시 똑같은 문신을 하고 있다. 이때의 사진은 현실세계 사진인 듯 보인다. 왜냐면 그 사람이 감옥에 갔었다는 사실과 같은 문신을 한 사람이라는 사실이 영화에서 그닥 중요하지도 않은데, 그 사진이 대문짝만하게 나온 것과 (머릿속세계의 김교수는 허망하게 죽을 뿐더러, 같은 문신을 가진 남자는 어느 순간 이성민으로 바뀌어 있다) 결국 같은 문신을 한 그 남자는 이성민이었다는 사실로 결론이 난 것으로 보면 이렇게 해석할 수밖에.
어쨌든 깡패 장태영의 삶을 따라하면서 그와 같은 삶을 살고 싶었던 작가 장태영의 모습을 통해
감독은 여러 가면을 쓰고 있는 현대인들이 본인의 정체성에 대해서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서로가 '내가 진짜다'라고 주장하지만 점점 어디까지가 진짜이고, 동시에 현재 내가 밟고 서 있는 땅 마저도 진짜인가? 아닌가?까지를 고민하는 인간의 고뇌(?) 같은 것을 얘기하고 싶었던 것 같다.
- (여기에 덧붙여 내 생각에는 영화 마지막에 작가 장태영이 카지노 시에스타 내 바(Bar)에서 정신이 아득해지는 과정을 겪은 후 뭔가 깨닫고 갑자기 싸움이 잘 하게 된 것과 이 세계가 자신이 만든 세계임을 깨닫게 되어 총도 피하고 춤도 추고 하는 장면을 보면서
장태영이 '아, 사실 여자친구를 죽인 것도, 폭력적으로 변한 것도 다 모두 나의 모습이었구나. 다른 누군가가 내 안에 있어서 그런 행동을 한 것이 아니라, 그냥 다 내 진짜 모습일 뿐이었구나' 라는 깨달음을 얻게 되는 것이 곧 영화의 핵심 메시지인 것 같다. '곧 어떤 모습도, 가면도 다 나의 진짜(리얼)모습' 이라는 말을 하고 싶었던 듯?)
자신이 설계한 세계가 무너지고 모든 것이 허망하게 사라졌는데, 깡패 장태영이 작가 장태영에게 총을 겨눈다. 힘겹게 일어선 작가 장태영도 깡패 장태영에게 총을 겨누지만 어차피 서로를 쏘지 못한다. 왜냐면 서로는 서로를 죽일 수 없는, 둘 다 진짜 장태영이니까. 그래서 결국 유약한 우리의 작가 장태영은 천천히 걸어가 자살한다.
여기서 앞서 언급한 <식물인간이 된 장태영이 마약을 맞으면서 생성한 머릿속세계에서의 주된 목적> 3번. (유약한 본인의 평소 성격, 나약해서 본인의 여자를 뺏기고 죽임까지 당하게 만든, 바로 그 성격을 없애버리고 싶었다.) 의 목적이 실현된 것.
- 덧붙이자면
정신과 의사(이성민)는 본인의 장태영에게 한 처방(마약)을 '구원'이라고 표현한다. 즉 현실세계에서 식물인간으로 누워 있는 장태영에게 정신활동을 계속 할 수 있는 처방을 내려준 것. 그렇기 때문에 젊은날 마약에 중독되어 식물인간이 된 장태영이 62살까지 살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마치 영화 '매트릭스'에서 기계들이 인간을 오래 살게 하기 위해 정신 활동의 일환으로 매트릭스라는 세계를 처방한 것처럼 말이다.
여기까지가 내가 생각한 리얼의 세계관, 메시지, 이야기 얼개다.
개인적으로 내 해석이 맞을지, 안 맞을지는 별로 관심이 없다. 왜냐면, 이 영화는 매우 불친절한 영화이기 때문이다. 감독은 한국에 이런 영화는 처음일 것이라 말했지만, 사실 이렇게 여러가지로 해석되고, 아니 해석 자체가 불가능할만큼 장면장면을 마음대로 갖다 붙여 쓴 영화들은 여럿 있었기 때문이다.
김수현, 최진리(설리), 성동일, 이경영 등 쟁쟁한 사람들이 출연했기에 그나마 관심을 받은 것일 뿐이지, 그 원작 각본이 어떠하든, 의도가 어떠하든 연출력은 최악이라 평하고 싶다. 그렇다고 각본까지 까고 싶지는 않다. 내 나름의 해석을 통해 유추해 본 원작 이야기는 진짜 대작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김수현이 처음 대본을 보고 '무서운 대본'이라고 한 만큼 말이다.)
이 영화는 한 마디로 '마술' 같다. 현란한 손동작으로 관객들의 시선을 끈 뒤, 다른 쪽으로 몰래 트릭을 사용하는 마술처럼. 계속해서 파티 장면, 야한 장면, 액션 장면을 보여주어 관객들을 현혹한 뒤 슬쩍 메시지를 가린다. 굳이 이렇게 많은 트릭을 쓴 이유는 감독만이 알겠지만,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감독이 자신의 철학에 자신감이 없었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러다보니 계속 여러 트릭을 통해 가리려 한 것이 아닐까.
영화를 보면서 매트릭스(이미지 세계), 메멘토(단기기억상실), 더울프오브월스트리트(자산가의 마약 파티), 아이덴티티(해리성 장애), 유주얼 서스펙트(단편적 소재로 이야기 꾸며내기) 등 여러 대작들의 설정을 그대로 가져와 녹여버린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함께 들었다.
독창적인 해설이네요 잘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