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값이 싸구려인 나라

in #kr7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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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 풍경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문득 고개를 들어 주변을 둘러보았다.  환하게 불켜진 편의점, 술에 얼큰하게 취해 해장국을 먹는 사람들, 기름을 넣느라 분주한 주유소 직원들

24시간

  우리나라에는 24시간 영업장이 많다.  패스트푸드점 부터 편의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태의 24시간 점포가 운영되고 있다.  과연 이것 뿐일까?  심지어 야식을 주문하면 밤낮가리지 않고 집까지 배달해준다.


  외국에는 드문 24시간 점포가 유독 우리나라에 많은 까닭은 무엇일까?
그 이유는 사람값(임금)은 싸지만 임대료는 비싼 기형적인 구조에서 찾을 수 있다.  임대료가 비싸 야간에 점포를 닫는 것보다 직원을 고용하여 운영하는게 더 이득일 때 24시간 점포는 생겨난다.

누가 사람값을 싸구려로 만들었나?

  1990년대 들어서면서 경제발전에 힘입어 이른바 좋은 일자리가 늘어났다. 근로조건이 열악하고 적정임금을 지불하기 어려운 한계기업들은 인력부족에 시달렸다.  정부는 기업들의 끊임없는 요구에 못이겨 결국 노동시장을 개방했다.  기업들은 과잉공급된 노동력을 바탕으로 노동자를 값싸게 고용할 수 있었지만  사람값은 점점 싸구려가 됐다.  결국 한계기업은 좀비처럼 살아남았다.  경제가 발전함에 따라 저 부가가치에서 고 부가가치로 산업구조가 재편됐어야 하지만 우리는 시기를 놓쳤다.  기회를 놓친 대가는 혹독했다.  낮은 노동생산성에 시달리며 중국을 비롯한 저임금 국가와 경쟁을 하기에 이르렀다.

아무리 일해도 가난한 노동자들

  기업들 또한 신사업 발굴이나 신기술 개발보다는 인건비 절감을 통한 이윤확대에 치중했다.  기본급을 줄이고 각종 수당을 늘리는 꼼수를 통해 기업은 막대한 인건비를 절감했다.
*기본급 외 각종 수당을 누락하는 방법으로 잔업수당을 줄였다.(추후 통상임금 소송으로 이어진다.)
노동자들은 더 가난해졌고 생활비를 벌기 위해 더 많이 일할 수 밖에 없었다.  과도한 노동시간은 소리없이 노동자들에게서 저녁을 빼앗아갔다.  노동자들은 점차 불행해졌다.
*우리나라의 취업자 1인당 연평균 노동시간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2위이다.


  이는 블루칼라 노동자에 국한 된 것이 아니다.  화이트칼라 노동자들 또한 포괄임금제에 묶여 끝없는 노동지옥에 시달렸다.

노동자의 권리는 향상될 수 있을까?

  오늘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는 주당 법정근로시간을 최장 52시간으로 단축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에 의결했다.  개정안은 기존에 명확하지 않던 규정을 손 봐 주당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줄이는 것을 골자로 했다.  이번 법 개정으로 삶의 질이 개선될꺼란 기대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임금축소를 걱정하는 목소리도 있다. 결국 노동시간 단축도 최저임금 인상도 본질적인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한다.


본질적 문제

  노동자의 권리향상을 위해선 과잉공급된 노동시장을 조절해야 하고 노동시장개방 문제를 다시 검토해야 한다.  값싼 노동력이 없어지면 노동자의 권리는 향상되지만 한계기업들은 더 이상 우리나라에서 운영하기 어려울 것이다. 값비싼 노동력을 감당할 만한 고부가가치 산업이 필요한 이유이다.


  우리는 아직도 제조업기반의 경제구조에서 탈피하지 못했다. 노동집약적 산업이 아직도 경제에 상당부분을 차지한다.  결국 이러한 산업구조는바꾸지 않고는 좋은 일자리는 창출되지 않는다.  현재의 산업구조는 저임금 국가와 끊임없이 경쟁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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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뀐 저 52시간에 간호산 끼지도 못했다는 소식을 들었네요.
지방병원엔 3교대하고도 200초반 겨우 받는 간호사들이 많습니다.
병원들이 담합해서 올려주질 않거든요. 일자리가 없는 간호사들은 계속 그런 곳에서 일할 수 밖에 없고.. 어짜피 그렇게 해도 신입간호사들은 매년 넘쳐나니 기존간호사들 다 그만둬더 아쉬울게 없는 병원들입니다. 환자의 안전은 대체 누가 책임질건지... 본인들이 지지도 않으면서.....

간호사들의 노동강도가 '태움'을 만들지 않았나 생각이 듭니다.

동의 합니다.

맞아요. 대한민국은 노동이 헐값에 팔리는 나라입니다. 그것은 산업구조의 문제라기보다는 보수세력과 재벌이 담합해서 임금상승을 막은 탓입니다.

노동자가 대우 받는 나라를 기대해봅니다.

분배의 불균형 문제가 큰 것 같아요. 물건 살 땐 제값치르면서 노동력에 대한 가치는 제대로 지불하지 않으려는 습성;;

팔려는 사람이 사려는 사람보다 많은 시장인 것 같습니다.

52시간도 줄인 것이 아니긴 하죠 ㅠ_ㅠ

갈길이 멉니다.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