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범근의 은퇴

in #kr6 years ago

1989년 6월 18일 차붐의 6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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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어렸을 적, 차범근이 후반 종료 10분 남기고 세 골을 거푸 넣어 버린 기적의 경기를 본 바 있다. 차범근이라는 이름을 외워 버렸던 나는 그의 성이 ‘차’씨인 것이 워낙 공을 잘 ‘차’서 차씨인 줄로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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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한 시기에 펠레라는 이름도 들었지만 당시 나에게 차범근과 펠레는 동격이었다. 박대통령컵 쟁탈 축구대회나 기타 이런 저런 A매치가 벌어질 때마다 아나운서가 가장 열띠게 소리치던 멘트 중의 하나는 “단독대쉬! 차범근의 단독대쉬!”였다. 등번호 11번 , 웬만한 아가씨 허리 둘레에 육박하는 허벅지로 씨근거리며 내달리는 그의 모습은 지금도 선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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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우여곡절 끝에 독일에 진출한다. 일본에서 열린 저팬컵에 출전한 한국팀의 일원이었던 차범근은 보루시아 MG와의 시합에서 독일 감독의 극찬을 듣는다. “아시아에서 제일 잘하는 선수는 오쿠데라 (분데스리가 쾰른 팀에 이미 입단해 있던)인 줄 알았는데 오쿠데라는 그에 비하면 이류다.” 괴물같은 동양 선수가 있다는 소문이 독일에 퍼졌고 독일의 스카우트들이 내한할 정도의 파문을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그러나 차범근이 분데스리가에 진출하기까지는 2천미터급 산들이 첩첩이 늘어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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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그는 군인이었다. 상무로 단일화된 요즘과는 달리 군부의 영향력이 드셌던 당시는 육해공군 팀이 다 있었고 심지어 해병대팀까지 있었다. 알다시피 공군은 복무 기한이 길지만 공군 수뇌부는 “2년만 하면 특별제대”를 약속하며 차범근을 유혹했고 차범근은 공군을 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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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에 따르면 1978년 말이면 대충 복무가 끝나야 했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던 차범근은 1978년 북한과의 혈투 끝에 공동우승을 차지했던 방콕 아시안 게임 후 바로 독일로 날아가지만 뜻밖의 악몽에 봉착하게 된다. 대한민국의 ‘사람의 아들’이면 누구나 겪는 공포, “너 아직 군 생활 남았어!” 독일에서 한 게임을 치르고 그는 급거 귀국해야 했고 다음해 5월에야 정식으로 독일에 진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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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인라흐트 프랑크푸르트. 차범근이 본격적으로 분데스리가에 진출한 뒤의 소속팀이다. 당시 MBC 에서는 이 프랑크푸르트의 차범근 출전 경기를 녹화 방송해 주곤 했는데 기억나는 경기는 위에서 말한 오쿠데라가 있던 쾰른과의 경기다. 독일에서의 한일 대리전같았던 그 경기에서 차범근은 두 골을 폭발시키며 오쿠데라의 존재감을 마이너스로 만들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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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프랑크푸르트 소속으로 차범근은 UEFA컵 우승을 차지한다. 컵을 들고 프랑크푸르트로 금의환향한 프랑크푸르트팀은 열광하는 팬 들 앞에서 컵을 치켜드는데 당연히 주장 그라보스키가 그 영예를 안았다. 그런데 관중들이 외친 이름은 ‘차붐’이었다. 연호가 이어지자 차범근이 컵을 치켜들었고 ‘갈색의 폭격기’ 차붐은 완벽한 도시의 영웅으로 부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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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범근은 상대 선수의 ‘짐승같은’ 태클로 척추뼈에 금이 가는 부상을 입는다. 워낙 고의성이 다분하고 부상의 정도가 컸던지라 프랑크푸르트 팬들은 물론 구단도 격노해서 형사고소 주장까지 제기됐고 겔스도프는 살해 위협까지 받는다. 하지만 차범근은 형사고소 따위는 없으며 그를 용서한다고 선언해 무뚝뚝한 게르만 사람들을 감동의 도가니로 몰아넣는다. 오히려 차범근은 겔스도프의 정신적 피해를 걱정하여 감동의 도가니를 더욱 깊고 뜨겁게 만들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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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가 프랑크푸르트에서 나와 이적한 팀이 하필이면 겔스도프가 있는 레버쿠젠이었다. 요즘은 레버쿠젠이 분데스리가의 강자로 이름이 높지만 내 기억에 당시 레버쿠젠은 하위팀이었다. 그래서 차범근이 이제는 수명이 다해서 싸구려로 팔려갔구나 한탄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차붐은 여기서도 기적을 일궈 낸다. 한국과도 인연이 깊은 크라머 감독과 콤비를 이뤄 레버쿠젠의 공격을 이끌더니 또 한 번 UEFA컵 우승을 차지하는 기염을 토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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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 앤 어웨이 방식으로 벌어졌던 결승전에서 레버쿠젠은 원정 경기에서 3대0이라는 스코어차로 완패한다. 홈 경기에서 3대0으로 이겨야 겨우 비기고 한 골이라도 먹으면 세 골을 넣어도 지는 상황. 여기서 레버쿠젠을 기사회생시키는 세 번째 골을 넣은 게 차범근이었던 것이다. 그로부터 20년이 흐른 뒤 레버쿠젠 구장을 방문하여 경기를 관전하던 중 차범근은 장내 아나운서의 소개를 받는다. “전설이 왔습니다. 차붐이 소속팀을 K 리그에서 우승 시키고 여기에 왔습니다.” 레버쿠젠 관중들은 기립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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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6월 18일. 분데스리가 308경기 출장과 당시로서는 외국인 최다골 기록이던 98골을 기록한 채 차범근은 은퇴한다. 은퇴 이후 여러 직함을 지니며 한국 축구의 풍운아로서 보여준 여러 이야기들은 반복하면 입만 아프니 생략하기로 한다. 기억나는 풍경 몇 가지만얘기해 보면 히딩크의 네덜란드 팀에게 5대 0 참패를 당하고 역적으로 몰린 채 공항에 도착했을 때 떼거지의 기자들이 몰려들어 질문 공세를 퍼붓는 가운데 한 기자가 이렇게 물었다. “어떻게 책임질 겁니까. 이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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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싸가지없는 질문. 살인적인 태클도 웃어넘겼던 차붐이 꿈틀~ 했다. 묵묵히 밀던 카트를 멈추고 차범근은 고개를 돌려 기자를 쏘아본다. "이 씨.....” 아마 그 기자 얼굴이 핼쓱해졌을 것이다. 차범근은 이렇게 뒤를 이었다. “그래서 이렇게 왔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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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2002년 6월 18일 차범근은 한국 축구 최대의 감동의 순간을 해설자로서 맞이한다. 이날은 한국 축구가 이탈리아를 기적적으로 2대1로 격파하고 8강에 진출했던 날이었다. “한국 축구의 꿈이 이루어진 날입니다.” 하며 감동에 겨워하던 그의 멘트보다, 선수들을 보며 젖어들던 그의 목소리보다 더 감동적이었던 것은 인간적인, 참으로 인간적인 한 마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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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제 아들이 뛰고 있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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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말을 실컷 하다가 쑥스러운 듯 그러나 자랑스러워 못견디겠다는 듯 불쑥 내지른 한 마디에 나는 웃으면서도 웬지 눈물이 났었다. 그날 후반 종료 직전 차두리의 오버헤드킥이 이탈리아 네트에 꽂혔더라면 드라마의 감동은 열 배가 되었을 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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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훌륭한 선수였고 성실한 축구인이었고 건실한 인격의 소유자였다. 국가대표팀 은퇴를 선언하는 후배 박지성을 마음 아파하면서 쓴 글을 보면 그걸 알 수 있다. “무릎에 물이 많이 차는 모양입니다. 무릎을 너무 많이 쓴 것이 그 이유입니다. 그것도 무리하게 어려서부터..... 초등학교 선수가 기초 공부조차도 하지 않고 축구만 하는 나라. 10세도 안 되는 선수들도 하루에 세 번씩 프로선수들처럼 훈련을 하는 현실. 정말 가슴이 답답할 정도로 걱정스러웠습니다....... 내가 그럴만한 힘을 가지지도 못했지만 나는 이런 문제들을 적극적으로 바꾸려고 나서지조차도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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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공개적으로 글을 써서 몇 마디 하는 게 고작이었습니다. 당연히 바꾸어 져야 하고 너무 오래된 악습이기 때문에 강력한 방법이 없이는 변화를 할 수 없음을 알면서도 나는 내가 그 일을 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내가 입어야 하는 이런 상처들을 ‘꼭 해야할 일’ ,‘한국축구에 꼭 필요한 변화’와 바꿀 만큼 나는 용기가 없었습니다....... 그 동안 내가 한국축구를 사랑한다고 말하고 스스로 믿어왔습니다. 그러나 지성이의 은퇴는 나에게 묻습니다. ‘한국축구를 아끼고 사랑한다고? 그래서 후배들에게 해준게 뭔데?’ 나의 용기없음이 비겁함이 부끄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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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에서 하시는 말씀을 들을 때마다 차범근 님의 인성과 측구에 대한 진정한 애정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비록 저는 선수 시절 경기를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박지성 선수의 경기를 보던 감동 그 이상이라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산하님의 글을 보나 더 생생히 느껴지네요. 이런 분을 축구협회장으로 종신 보장해야 합니다!

참 아쉬운 일입니다.... 한국 사람들은 충분히 치켜세워줘도 좋은 재목들을 너무 쉽게 버려요

차범근씨는 정말 멋진 분이신것 같아요★
여러모로 본받을께 많은 분이신듯^^

맞습니다... 여러모로 본받을 게 많은 스포츠맨이고 생활인이고.... 한국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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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범근 전 감독님은 정말 축구만 생각하시고 축구를 사랑하시는 분이죠.
건너서 아는 분이긴 하지만... 축구장 밖에서도 한국 축구만 걱정하시는 ㅠㅠ
정말 삶에 있어서 배우고 본받을 점이 많은 분입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참 멋진 분입니다...... 본받을 점 많고

어렴풋이 듣기만 했던, 차붐의 독일 생활, 성공기.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