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지난 1부에서는 현재 국제 결제수단으로 쓰이고 있는 달러가 만들어지는 과정과 달러가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한계, 국제결제 수단으로 쓰이게 된 배경 등에 대해서 알아보았고, 2부에서는 금(금본위제)에서 벗어난 달러가 '신용화폐'라는 이름으로 실물자산에서 벗어나 고삐풀린 망아지처럼 풀려나가는 과정과 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물가상승'이라는 거짓된 이름으로 벌어지는 통화가치 하락에 대하여 알아보았습니다.
그렇다면 변동환율제를 인정하고 SDR(특별인출권)이라는 무담보 '페이퍼골드'를 근거로 사실상 통화를 무제한 발행할 수 있도록 제한을 풀어버린 킹스턴 체제 이후에는 어떠한 일들이 벌어지게 되었을까요?? 이에 대해서는 이전과 마찬가지로 경어체를 생략하도록 하겠습니다.
킹스턴체제 이후 이른바 '금융자본주의'라고 불리는 현재의 자본주의체제가 시작되었고, 변동환율제가 가져오는 환위험을 헤지(가격변동 제거)하기 위해 다양한 파생금융상품들이 개발되게 된다. 주식시장 외에 선물, 옵션, 이라고 부르는 녀석들이 바로 그것이다.
사실 선물, 옵션거래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는 선도거래는 실제 물건의 가격을 고정시키기 위하여 고안된 계약방식인데, 가장 기초적으로 곡물의 가격을 풍/흉년 등 자연재해와 상관없이 고정시켜 거래자 간 위험을 분산시키는 목적에서 이용되었다. (아래 그림 참조)
이러한 상품선물거래의 헤지거래방법이 금융상품의 거래에 적용되면서 금융선물시장은 다양한 파생금융상품을 만들어내게 되었으며, 사실상 투기의 수단으로 발전하게 된다. 이러한 파생금융상품들은 다양한 옵션과 거래방식으로 분화되면서 그들만의 수많은 금융용어 및 금융상품들(ETF, ELS, ELW 등등 무수히 많다...)을 만들어냈으며, 마치 모든 위험을 회피할 수 있는 것처럼 포장되게 된다. 이러한 파생금융상품들과 탐욕적인 금융자본주의가 맞물려 만들어낸 금융위기의 최악의 사례가 바로 2008년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다.
물론 서브프라임 사태 이전에도 1987년 블랙먼데이, 1990년대 초 북유럽 금융위기, 1997년 동아시아 외환위기(우리나라 IMF 사태 ), 2001 월드컴 및 엔론 분식회계 사태 등 주기적으로 변동환율제와 탐욕적인 파생금융상품들이 만들어낸 금융위기가 반복되었지만 이는 모두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또는 FED)라는 사조직이 관리를 할 수 있는 범위 내에 있었다. 하지만 2008년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는 달러를 발행하는 주체조차 감당을 할 수 없을 정도로 금융자본주의체제가 한계를 드러내고 임계점에 다다랐음을 보여준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는 미국이 2000년대 초 저금리 기조를 유지함에 따라 나타난 미국 주택시장의 투기수요와 파생금융상품의 결합을 통해 주택대출상품의 증권화 등이 이루어짐으로써 폭팔적으로 늘어난 버블이 붕괴하면서 발생한 금융위기 사태였다. 이 사태에서 중요한 것은 이른바 CDO(부채담보부 증권), MBS(주택저당증권), CDS(신용부도스왑) 등의 일반인들이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용어로 이루어진 주택대출 관련 파생상품들이 탐욕적인 금융회사들[베어스턴스(파산), 리먼브라더스(파산), 골드만삭스, 메릴린치, 모건스탠리 등]에 의해 마치 무조건 위험을 피할 수 있는 것처럼 포장되어 무차별적으로 개발 및 판매되었고, 이는 미국뿐만이 아니라 전 세계적를 대상으로 진행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서브프라임 모기지론(주택대출)과 관련된 파생상품들은 복잡하게 얽혀 있는 유동화 과정에서 관련 금융자산 및 손실규모가 정확히 얼마나 되는지 조차 파악하기 어려워 사태의 해결을 더욱 어렵게 하였으며, 전 세계의 금융회사들이 직/간접적으로 연관되어 있어 세계 전체의 금융위기로 발전하게 된다.
연방준비제도이사회는 이러한 초유의 사태에 대한 대응으로 제로(0)금리를 선언하게 되고 무제한에 가까운 양적완화를 통해 시중에 유동성을 무차별적으로 살포하게 된다.(당시 FRB 의장이었던 벤 버냉키의 의장의 별명이 '헬리콥터 벤' 이 된 것은 양적완화를 마치 헬리콥터에서 돈을 무한정 뿌리는 행위에 비유한 것에서 비롯한다.) 즉 다시 말해 그들조차도 한번도 가보지 않은 길을 등떠밀려 무작정 출발하게 된 것이다.(사실 지금 ICO에서 벌어지는 무분별한 암호화폐 발행 수준은 애기 장난에도 미치치 못한다. 물론 그런 사업근거 및 수행증명이 부실한 ICO는 철저히 배척당하고 없어져야 하겠지만...)
이러한 무분별한 유동성 살포가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10년째인 지금까지는 잠잠하지만 언제 어디서 또 문제가 터져나올지 모르는 상황이다. 또한 미국의 제로금리 선언으로 다른 여러 나라들이 초저금리를 유지하게 됨으로써(일본은 마이너스 금리를 채택하기도 했다.) 어마어마한 통화가치 하락(물가상승의 진짜 이름)으로 인해 상대적으로 낮은 임금상승률을 적용받아온 노동자들의 땀과 노력이 평가절하 된 것은 분명한 사실이기도 하다.(2부 글을 참조바람)
나카모토 사토시는 이러한 탐욕적인 금융자본주의의 폐해를 목격하면서 이러한 '실물자산(금)에서 벗어난 달러'가 불러온 사악한 금융시스템을 대체할 화폐(결재수단)시스템인 '비트코인'을 고안하였다. 나카모토 사토시가 개인인지 단체인지도 불분명하지만 2009년 1월 3일 비트코인 제네시스 블록(첫 블록)에 메모된 January 3, 2009, Times of London; “Chancellor on brink of second bailout for banks”(2009년 1월 3일, 타임즈; "재무부 장관, 은행들을 위한 두번째 구제금융 임박") 문구가 보여주는 의미는 앞에서 살펴본 현재의 금융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이 전제되어 있음을 가늠케 한다.
나는 비트코인은 일종의 '프로토타입' 또는 '첫 실험'이라고 생각한다. 기본적인 틀을 보여줌으로써 많은 개발자나 시스템 고안자들이 영감을 얻어 다양한 형태의 경쟁력 있는 화폐(결재수단)시스템을 파생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비트코인은 '탈중앙화'보다는 그가(또는 그들이) 논문 결론에서 밝힌 것처럼 '신용에 기반하지 않은 전자 거래 시스템'이라는 부분이 더 집중해야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신용'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무분별한 통화팽창과 이자율 조정을 통한 통화수축은 토머스 제퍼슨이 언급한 것처럼 장기적으로 소수의(1%) 통화발행자들이 다수의(99%) 실재 땀과 노동력을 착취하는 수단으로 작용하게 하었으며(2011년 월가를 점령하라 시위의 주요 쟁점이 되기도 했다.), 첫 실험으로서의 비트코인 코인 수를 2,100만개로 한정한 것은 인플레이션에 대한 억제와 함께 산술적으로 2,100만 코인의 채굴이 끝나는 시점을 그가 산정한 실험기간이라고 해석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비트코인의 탄생 이후에는 과연 어떠한 형태로 또 다른 다양한 실험들과 새로운 통화시스템 구축 시도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그리고 첫 실험으로써 단순 작업증명(PoW) 방식의 한계와 대안들의 등장 등에 대해서는 다음 4부로 이어가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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