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어렸을 때 살던 동네를 지나갔습니다. 서울 대림동... 오랜만에 가보니 중국사람들이 많이 자리를 잡고 살고 있더군요. 초등학교 4학년 때, 아버지 회사가 부도가 나면서 그 동네로 이사를 갔습니다. 화장실도 밖에 있었고, 연탄 보일러를 떼는 집이었죠.
아침 저녁으로 칼국수를 끓여먹었습니다. 그때는 몰랐습니다. 우리 엄마가 쌀이 없어서 칼국수를 끓이셨는지는... 나중에 대학생이 된 후에야 어머님께 그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죠.
그 허름한 집이 1500만원 짜리 전세였는데, 그나마 보증금도 받지 못하고 우리 가족은 쫒겨났습니다. 그야말로 엿 같은 상황이었죠. 보증금 500만원 짜리 반지하로 이사를 갔습니다. 그때 당시 했던 고민은 항상 "부모님이 돈이 좀 있으면 좋겠다."라는 고민이었습니다. 저희 어머님도 미싱을 하셨습니다.
어느 덧 시간이 많이 지나서 저는 세 딸을 가진 아빠가 되었습니다. 오늘 그 동네에 아이들과 함께 가보니 정말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결혼 생활은 시작을 1000만원에 월세 30만원짜리 빌라에서 시작했습니다. 그때는 잘 느끼지 못했는데, 아무 것도 없는 저와 결혼해준 아내에게 이제서야 너무 고맙습니다. 요즘 극히 일부 여성 분들이 남자가 아파트 전셋집을 해오지 못하면 결혼을 해주지 않는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저희 아내는 너무 착했죠.
빌라에서 살다가 전세금 대출을 받아 5000만원 짜리 주택으로 이사를 갔습니다. 대저택이었습니다. 3층 집이었는데 보증금 5000만원이 너무 쌌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1층 안방에서 잠을 자는데 얼굴 위로 물이 뚝뚝 떨어졌습니다. 그해 여름 유난히도 비가 많았죠. 2층, 3층은 비가 세지 않는데 1층 천장에서 비가 세고 있었습니다. 주인에게 연락을 했죠. 하지만 주인은 수리에 적극적이지 않았습니다. 계약 당시와는 매우 다른 사람이었습니다.
그날... 결심했죠. 무슨 일이 있어도 아파트 산다..
운이 좋았는지 이듬해 아주 작은 아파트를 살 수 있었습니다. 물론 빚잔치를 좀 했죠.. 그리고 몇 년후 또 다시 돈을 빌려 지금 사는 아파트로 이사를 왔습니다. 다행이 그 빚은 갚았습니다.
이제 어느 정도 살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그런데 또 다른 날벼락이 치더군요... 둘째 아이가 자폐 판정을 받았습니다. 아이를 고쳐보겠다고 사방팔방으로 돌아다녔습니다. 하던 일도 그만두고, 전국에 유명하고 용하다는 곳을 모두 쑤시고 다녔습니다. 자폐아를 고치는 치료방법은 없습니다. 그런데 뭐들 치료비가 그렇게들 비싼지.... 아이 치료를 위해서 또 다시 아파트를 담보로 잡고 돈을 빌려야 했습니다. 그래서 지금 또 저는 1억이라는 빚을 지고 있습니다. 그럼 1억을 들여 아이는 고쳤냐? 그렇지도 않습니다.
앞으로 그 빚은 또 어떻게 갚아 나갈 지 막막한 것도 사실입니다. 하던 일도 그만둔 지 꽤 많은 시간이 지났기 때문에 그 분야로 돌아갈 순 없습니다. 지금 현재로서는 스스로 가치를 창출하는 수밖에 도리가 없습니다.
어려서 부터 가난을 알았고, 그 가난을 벗어나보겠다며 하루 종일 일해 남들보다 빨리 내집을 마련했지만 또 다른 시련이 나타나더군요... 인생이란 게 참 알다가도 모르는 거 같습니다.
변방에 사는 노인의 말... 새옹지마... 제 인생이 그런 것 같습니다. 앞으로 그 새옹지마가 또 어떻게 변할 지 알 수 없죠....
@abcteacher 님 글 읽고 마음이 동해 저도 그냥 주저리 주저리 제 마음을 남깁니다.
헛꿈을 꼭 이루시길 바랍니다. 저도 우리 딸이 더 행복해지는 헛꿈을 꾸며 살렵니다.
예, 감사합니다. 댓글에서 이렇게 감동을 느끼기는 처음인것 같네요. 저도 인생이 오르막과 내리막이 있음을 알고 있어서 더 겁이 납니다. 부모님께선 아직 그래도 건강하시고, 아이들도 가끔 아프긴 하지만 잘 큽니다. 지금 이 순간에 행복을 즐기며 살겠습니다. 진심어린 댓글 너무 감사합니다. 머리 숙여 감사인사 드립니다. 제 마음도 치유가 되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