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한 권의 책이다] #07 다들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 걸까? 네팔 룸비니에서 <논픽션 붓다>와 더불어

in #kr7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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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 얘기는 작가가 써야 재미있을 텐데” 어느 날 경기도 파주의 한 암자에서 지내는데 우연찮게 한 권의 책이 손안으로 들어왔다. 어느 노승의 말에 힘을 받아 집필했다는 유홍종 작가의 <논픽션 붓다>. ‘지금까지 나와 있는 객관적인 자료들을 뽑아서 부처님의 생애를 한눈에 읽을 수 있도록 정리’한 다큐멘터리 소설.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 염화미소(拈華微笑), 곽시쌍부(槨示雙趺)…. 국정 교과서부터 불교서적에 이르기까지 부처에 얽힌 여러 이야기와 말들을 듣고 배우고 읽었지만, 나는 부처의 전 생애를 알지는 못했다. 책을 읽는 동안 흩어져 있던 이야기들이 한눈에 정리가 되었다.

탄생과 출가 - 위대한 깨달음 - 승단 조직과 제자들 – 전도여행 - 귀향 - 대열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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싯다르타가 탄생지로 알려져 있는 룸비니에 가보기로 했다. 붓다의 ‘논픽션’을 나 스스로 확인할 차례였다. 네팔 남부 룸비니 방문객들은 국제사원구역 내 마야데비 사원에서 아기 부처의 몸을 씻었다는 연못가를 거닐고, 아쇼카왕이 세운 탑에서 기도를 올리고, 보리수 그늘 아래서 휴식을 취하다가 룸비니를 떠났다. 나는 룸비니 소재 한국 사찰, 대성각사에서 묵고 있었다. 나는 홀로 카필라성까지 가보기로 했다. 싯다르타가 출가 직전까지 왕자로 살았다는 카필라 성은 룸비니에서 버스를 타고 1시간을 가야 닿을 수 있다고 했다.

아침 식사를 마친 후 비스킷 몇 조각, 500ml 생수 한 통을 가방 속에 넣고 길을 나섰다. 히말라야의 기세가 수그러든 네팔 남부는 끝없는 지평선이 이어지는 너른 평야. 보리가 익어가고 있었다. 우선 카필라성으로 가려면 ‘따울리하와’ 마을까지 가야한다.

나는 삼거리 찻집에서 따울리하와행 버스를 기다리며 차 한 잔을 주문했다. 네팔 사람들은 허름한 노상 찻집에서 ‘찌아’를 주문하는 이국의 사내를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낯 선 땅에서 그런 시선을 마주하는 건 익숙한 일. 묵묵히 찌아를 마셨다. 생강 냄새가 나는 달콤한 차는 네팔에서 마신 그 어떤 찌아 보다 맛있었다. 차의 맛을 음미하는데 찻집의 꼬마가 말을 걸었다.

“웨어 아 유 고잉?”

나는 카필라성으로 가는 길이라고 대답했다. 버스 한 대가 먼지를 피우며 평원 사이로 난 황톳길 위를 달려왔다. 소년이 내 손을 잡아끌며 소리쳤다.

“저 버스랍니다!”

따울리하아에 도착한 뒤 지나는 사람들에게 카필라 성으로 가는 방향이 어느 쪽인지 물었다. 아소카 나무가 길게 늘어선 대로를 따라 가라고 했다. 내리쬐는 햇살을 맞으며 1시간 남짓 걷자 카필라 성문이 나타났다. 아니, 무너진 벽돌 더미가 2500년 전에는 그래도 성문이었다고 말하고 있었다. 네팔인들의 종교는 힌두교. 그러다 보니 남아있는 불교 유적지는 버려진 거나 다를 바 없었다. 그나마 룸비니가 각국에서 온 불교종단과 사찰의 기금으로 개발 보존되었을 뿐. 버려지긴 카필라성도 예외는 아니었다. 덕분에 한낱 미천한 나그네에 불과한 나도 오래된 궁전 안을 거닐고 궁전에서 낮잠까지 자는 행운을 맛볼 수 있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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싯다르타의 아버지, 샤카족 왕이 국사를 집전했던 방으로 들어가 앉았다. 다섯 평도 되지 않는 집전실. 싯다르타가 왕위를 이어받았다면 그 역시 이 자리에 앉아 신하들로부터 각종 국사를 전해 듣고 정사를 돌보았겠지. 높이 1m 정도 벽돌로 된 아래 담벼락만이 남아 방을, 방과 바깥을 구분 짓고 있었다.

벽돌담에 기대어 주변을 둘러보았다. 검은 개 한 마리 제 몸을 핥다가 나비를 쫒아 머리를 이리 저리 휘젓고, 물소 한 마리 보리수에 등을 갖다 대고 가려운 부위를 긁고 있었다. 나른한 정오였다. 먼 길을 걸은 탓일까, 졸음이 쏟아졌다. 쉬었다가 가기로 했다. 보리수 이파리가 따가운 햇살을 막아주었다. 2500년 전 싯다르타도 이 자리에서 낮잠을 잤겠지.

눈을 감은 지 얼마나 지났을까? 눈 속에 남아있던 잔영들, 무너진 벽돌 무더기들 위로 벽돌이 올라가기 시작했다, 마치 3D 그래픽 화면처럼. 담이 생기고, 벽이 생기고, 기둥이 생기고, 창문이 생기고, 지붕이 생기더니, 나는 화려한 궁전의 방 한 칸에 누워 있었다.

끝없이 펼쳐진 평원과 성의 서쪽을 흐르는 강. 오늘 나는 동문에서 늙은 노인을, 남쪽에서 병든 사람을, 서문 밖에서 죽은 시체를, 북문에서 떠돌이 수도승을 만났다.

‘다들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 걸까? 삶이란 무엇이며 인간은 왜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고통을 겪는 걸까?’

궁전 밖에서 노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담을 넘어왔다. 자리에서 일어나 밖을 내다보았다. 붉은 꽃 한 송이 봉오리를 활짝 벌리고, 구름 한 조각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지 정하지 않은 채 흐르고, 보리나무 아래 초록빛 이파리 하나 떨어지는 모습.

꽃들에게 물었다. '너는 왜 꽃을 피우며 꽃 핀 채로 있지 않고 꽃받침에서 떨어져 죽음을 맞느냐고.'
구름에게 물었다. '너는 왜 허공을 오가며 구름인 채로 있지 않고 빗방울로 떨어져 바다로 가느냐고.'
이파리에게 물었다. '너는 왜 싹 튀운 뒤 이파리로 남아있지 않고 가지에서 떨어져 땅으로 돌아가느냐고'

꽃도, 구름도, 이파리도 대답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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툭, 콧잔등으로 떨어진 낙엽 때문에 잠이 깼다. 손목 시계를 보니 잠든 사이 한 시간이 지난 후였다. 잠든 내 곁에 무언가가 있었다. 검은 개가 머리를 들며 부스스 일어났다. 나는 녀석에게 이름을 붙여주기로 했다.

“찬타카! 성 밖으로 나가야겠다. 자, 동문으로 가자.”

내가 소리치자 검은 개가 마치 자신이 찬타카(싯다르타의 마부)의 후생인양 앞장 서서 걷기 시작했다. 바람에 흔들리는 보리수 이파리들이 등 뒤에서 2500년 전의 노래를 불러주었다.

"가야금 줄을 너무 조이니 줄이 끊어지네.
가야금 줄이 너무 느슨하니 소리가 안 나네.
가야금 줄은 알맞게 조여야 소리도 좋지"

글/사진 @roadpherom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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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금 줄을 너무 조이니 줄이 끊어지네.
가야금 줄이 너무 느슨하니 소리가 안 나네.
가야금 줄은 알맞게 조여야 소리도 좋지" 아 여운이 찐하게 느껴지네요 감사합니다

우리 삶도 마찬가지더군요. 일도, 열정도....과하게 당겨도 안 되고, 과하게 늘어져도 안되고. 하여, 중도. @dreamer777님 아름다운 소리 내는 무술년을 보내시길 바랍니다.

안녕하세요 뉴비 funnydony입니다.
좋은글들이 많은 것 같아서 팔로우 하고 갈게요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

반가워요, @funnydony님! 무술년을 맞아 멋진 고래가 되시고, 한낱 플랑크톤에 불과한 저도 키워주시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