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2015년, 나는 라식수술을 하기 전엔 안경을 썼었다.
이 날 유시민 선생은 부산의 보수동 헌책골목에 강연을 하러 왔다.
나는 강연 시작 전 커피를 마시는 그와 우연히 만날 수 있었다.
그는 나보고 사진 찍는 데 긴장하지 말라고 웃으며 말했다.)
[최초의 목격]
어렸을 때였다. 아마도 초등학교 고학년에 막 접어들 무렵, 한 꼬마는 펑퍼짐한 빽바지에 속 편한 면 티셔츠를 후줄근하게 입은, 거기에 펑퍼짐한 자켓을 대충 걸친, 그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패션을 선보인 한 국회의원을 TV에서 보게 된다. 나는 이름을 물었다. ‘유시민’이라고 했다.
당시에 전형적인 국회의원의 이미지라고 하면, 벗겨진 머리가 잘 발린 기름에 반짝거리고, 정장이 미쳐 비집어 나온 두꺼운 뱃살을 가리지 못해 비대한, 넥타이와 구두가 고개를 뻣뻣하게 옥죄어 국민들에게 숙일 줄 모르는 따분하고 권위적인 아저씨여야 했다. 그런데 웬 호리호리한 체형에 한 성깔하는 커다란 눈망울은 가진, 옷이 넉넉히 남아 품행이 그만큼 자유로워 보였던 한 남자에게 나는 본능적으로 끌렸던 것이다.
[ 지식 소매상을 자처한 한 남자]
그는 말의 검객이었고, 문장의 사령관이었다. 적어도 그의 글을 흠모했던 내 눈에는 그런 콩깍지가 있었다. 그 남자는 공부하는 정치인이었고, 글 쓰는 국회의원이었다. 그 때의 나는 어려서 그 남자의 정치적 행보가 어떻게 좌충우돌 했고, 어째서 성공과 실패를 거듭하다가 은퇴의 길로 나아가게 되었는 지를 자세히 알지 못했다. 다만 중고등학교 시절의 나는 그를 볼 때 마다 ‘멋있고 갑갑한 사람’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을 뿐이다.
아무튼 신문과 토론을 즐겨보던 불온한 고교생 나호선은 시사프로그램의 단골손님인 유시민의 영향으로 정치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세 차례의 도전 끝에 정치학도가 되고 만 것이었다. 때마침 그는 정계은퇴를 선언하고 작가로서의 인생 2막을 갓 시작했다. 웃긴건 정작 그 당시의 나는 유시민에 관한 상당한 호감만큼, 그가 펴낸 책에는 일말의 관심조차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다 <거꾸로 읽는 세계사>를 읽게 되었다. 이 책은 내가 최초로 집중해서 완독한, 문장 하나하나에 정성들여 밑줄을 조공한, 최초의 ‘불온도서’ 였다. 나는 그 책에서 문장배열의 기막힘을 깨닫고, 문장의 외침은 피와 가슴을 덥힐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더랬다. 군데군데 흩어져있던 조각지식들이 한꺼번에 연결되는 그런 황홀한 경험을 최초로 했다. 나는 지식의 쾌락, 그맛에 서서히 중독되었다.
그는 그 책을 스물아홉에 썼다고 했다. 그것도 수배중에 말이다. 나는 일어나는 존경심과 그와의 격차가주는 모종의 당혹감과 분발의 자극을 함께 느꼈다. 아마 그때부터 였을게다. 내가 미친 듯이 독서에 열중하게 된 것이. 책 좀 읽는 사람 이미지가 갖고 싶었던 그 때의 나호선은 정말 열심히 닥치는 대로 읽었다. 그의 저서들을 모았고, 학과에 동아리를 만들어 친구들과 같이 읽곤 했다. 언젠가 그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싶은, 그래서 그의 저서 못지 않는 대중서를 쓰리라는 막연한 소망을 위해서 말이다.
[글쓰기 선생 유시민]
그의 문장은 구조가 단순하다. 복잡한 기교를 부리지 않는다. 잔기술이 주는 화려함보다 담백함이 보존하는 울림의 힘을 믿는다. 그래서 나는 그의 문체가 좋았다. 그의 문체가 담고 있는 어떤 풍모는 반드시 그의 문장에서만 제 맛을 낸다. 단순한 배열과 세련된 어휘의 절묘한 조화. 그 담백한 세련미. 이른바 ‘덜어냄의 미학’이라는 것이야말로 내가 정신적 스승으로서 그에게 물려받은 영업비밀이다.
(▲ 나의 원고. 210페이지 가량, 9챕터를 썼다. 앞으로 두 챕터가 남았다. 언제 출판사에 돌릴 수 있으려나...)
그래서 나는 지금 책을 쓰고 있다. 나는 유시민의 모든 저서를 가지고 있다. 나는 반드시 내 책을 펴내어 그의 저서 옆에 내 책을 나란히 꽂아두고 싶다. 육십 줄에 들어선 그에게 <청춘의 독서>라는 멋진 이름을 선점당했지만, 언젠가 나는 꼭 그 못지않은 글을 써내고 싶다. 이십대 초반에 먹었던 마음은 후반에 막 들어선 나에게 매번 펜을 고쳐 쥐게 만든다. 매일매일 좋은 문장을 모으고, 다듬었던 나날들. 생각과 사유의 지도를 나만의 도법으로 펴내는 날이 머지않았다. 나는 그 상상으로 오늘도 글을 쓴다.
-2018.1.25 @PrismMaker
※본 에세이의 저작권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
와 유시민 선생님과 사진도 찍으시궁~
글 좋네요.
요즘 코인화제의 중심이 되셔서 유시민 선생님과 관련된 글이 많은데 그 중 작가 본연의 모습을 쓰신 글이라 보기 좋네요.
전 예능을 통해 본 모습이 전부라 다음에 책 한권 사러 가야겠어요^^
하하하 댓글 남겨주셔서 감사해요! 유작가님의 책은 후회없는 선택이 되실겁니다 ㅎㅎ
역시 선배님 글에 몰입하게 하는 능력은 ..대단하십니다;;
다음학기 그대로 다니시나요? 저 복학하는 데 밥 한번 같이 먹어요ㅋㅋ
넵 ㅎㅎ저는 그대로 다닙니다~ 개강하고 뵙겠습니다 ㅋㅋㅋ
이런 우연의 일치가... 저도 지금 유시민 씨와 관련된 글을 쓰던 중인데...ㅎㅎㅎ
아닛...! 통했네요!! 글 올라오면 저도 바로 읽으러 가겠습니다..ㅎㅎ
스포일 수도 있는데 팬의 입장에서 읽으면 살짝 기분 상하실 수도 있어요~^^
괜찮습니다. 최근 암호화폐 관련 건 같은 경우는 저도 유시민씨와 반대되는 입장이니까요 ㅋㅋㅋ 그냥 삶의 궤적을 좋아하는 것입니다.
헌정글이자 팬레터이자 일기같은 재밌는 글이네요ㅎ 모쪼록 빨리 탈고하셔서 서점에서 볼수 있길 기원합니다.
정확하게 보셨습니다. 사심을 듬뿍담은 오마쥬였습니다 ㅎㅎ
원래 사심이 담겨야 글에서 장면이 보이고 그러는거죠ㅎㅎ 생동감 뿜뿜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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