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냐, 죽음이냐? - 역사상 가장 위대한 투자자의 운명 1부

in #kr6 years ago



워런 버핏은 올해 오마하에서 열린 연례 버크셔 해서웨이 주주총회에서, 만일 그가 아닌 다른 사람이었다면 파문을 일으켰을 만한 발언을 내놓았다.

버핏은, 거의 70년 전, 자산의 청산 가치보다 낮게 거래되던 칙칙하고, 낡아빠진 기업에 투자하면서 본격적인 투자 인생을 시작했다. 어쨌든 버핏은 쇠퇴한 뉴잉글랜드 섬유 공장 버크셔 해서웨이를 소유하게 되었고, 이를 주춧돌 삼아 투자 제국을 일궈냈다.

이후 버핏은 수익성 높은 유명 브랜드 기업들과, 지루하지만 현금 창출 능력이 좋은 보험 회사로 초점을 옮겼다. 바로 코카콜라 같은 대형 소비재 기업과 가이코 같은 보험 회사였다. 버핏이 수십 년 동안 좋아했고, 그의 추종자들도 마찬가지였던, 믿을 만하고, 잘 알려져 있으며, 친숙한 회사들이었다.

그랬던 버핏이 약 4만 명의 주주와 팬 앞에 서서, 우리는 새로운 현실에 친숙해져야 함을 넌지시 암시했다. 우리 세상은 변하고 있고, 가치 투자자들이 경시해 왔던 기술 회사들은 우리 생활의 일부가 되었다. 게다가 엄청난 규모로 성장했다.

버핏은 이렇게 말한다.

현재 시가총액 기준으로 4대 기업은 어떤 순유형 자산도 필요치 않게 되었습니다. 수익을 창출하기 위해 많은 자본이 필요한 AT&T나 GM 또는 엑손모빌과는 다릅니다. 우리는 이제 저 자산 경제가 되고 있습니다.

버핏은 계속해서 버크셔가 구글의 지주 회사 알파벳을 사지 않았던 것은 실수였다고 말을 이어나갔다. 그리고 2016년 초부터 주식을 사기 시작했던 애플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버핏이 보유 중인 애플의 주식은 약 500억 달러 상당으로, 단일 회사로 최대 보유량이다.

‘잘 보이는 백미러를 통해 시장을 보면 항상 쉬워 보이는 법’이라고 말하던 버핏이 이제 과거가 아닌 미래를 내다봐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는 투자 커뮤니티에서도 진행 중에 있는 심도 있고 중요한 논쟁거리 중에 하나이며, 전문 펀드 매니저들과 고객 모두에게 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일각에서는 ‘우리가 저 자산 경제가 되고 있고, 가치 투자자들도 이런 변화를 수용해 적응해야 한다.’라는 버핏의 말이 옳다고 믿는다.

예를 들어, 마켈의 톰 게이너나 오크마크 펀드의 빌 니그렌 같은 저명한 가치 펀드 매니저들은 포트폴리오에서 아마존과 알파벳 같은 기업의 보유 비중이 가장 높다. 이러한 주식들의 주가가 종종 시장 가치 이상으로 거래된다는, 한때 전통 가치 투자자들을 겁먹게 했던 이 요소도 이들을 단념시키지 못했다. 이들 기업의 미래가 너무 밝기 때문에 그만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한편, 그린라이트 캐피털의 데이비드 아인혼이나 페어홀름의 브루스 버코위츠 같은 다른 가치 펀드 매니저들은 버핏이 오래전부터 좋아했던 바로 그 구경제 기업들에 베팅하고 있다. 2000~2010년까지 모닝스타에서 선정한 최고의 주식 펀드 매니저 중 하나로 선정되기도 했던 버코위츠는 최근 10년 동안 저조한 수익률에 시달려왔다. 모두가 AT&T와 특히 올가을 파산을 선언한 시어스 홀딩스에 투자한 탓이었다. 아인혼의 실적도 마찬가지였다. GM을 비중 있게 가져간 것도 있고, 그가 말하는 소위 '버블 바스켓'에 속한 테슬라, 넷플릭스 및 아마존 등의 주식을 공매도했었기 때문이었다.

주가가 가치의 중요한 요소라는 점은 모든 가치 투자자들이 여전히 동의하는 바다. 그렇기 때문에 가치 투자자라고 불리는 것이다. 현재 진행 중인 논의의 쟁점은 그 가치의 원동력은 무엇이냐, 21세기 경제에서 무엇이 가치를 구성하느냐, 그리고 다음 세대 경제와 시장을 이끌고 나갈 동력은 무엇이냐 하는 것이다.


가치 투자자들은 단순하다. 가치를 추구하며, 그들에게 가격이란 기업의 가치와 관련해서만 중요한 요소다. 이점에서 다른 투자자들과 쉽게 구분된다. 반면, 예를 들어 모멘텀 투자자들에게 가격은 중요한 요소가 아니다. 그저 다른 사람에게 더 높은 가격에 팔 수 있기만 하면 된다. 소위 '더 바보 이론'에 근거해 움직인다.

다음으로 성장 투자가 있다. 기업의 미래 전망으로 주가가 결정되는 방식이다. 가치 투자는 가격을 기업의 가치와 대비해 평가하는 것이 최우선이다. 때문에, 장기적 시각과 인내심을 갖춘 구두쇠형 투자라고도 한다.



가치 투자의 아버지는 벤저민 그레이엄이다. 그는 거의 100년 전 다우존스 산업평균 지수에 편입된 종목 100%가 말 그대로 산업 관련 기업이었던 시절 가치 투자를 꽃피웠다. 유형 자산이 아나콘다 카퍼, 내셔널 리드 같은 기업들의 원동력이었던 시대였다. 소비자 마케팅은 아직 기저귀를 차던 단계였다. 1915년 다우 지수에서 소비재 회사에 가장 근접한 회사는 제너럴 모터스 정도였다.

그 전년도, 그레이엄은 콜롬비아 대학을 학과 2등으로 졸업했고, 철학, 수학 및 영어 세 개 학과에서 교수직을 제의받았을 정도로 재능이 뛰어났다. 하지만 어린 시절 가난에 시달렸던 그레이엄은 금융 산업을 택했다.

당시 시장은 정보를 파는 사람들, 작전 꾸미는 사람들 그리고 투기꾼들이 지배하던 시절이었다. 유나이티드 커퍼 주식을 매점하려던 이들로 인해, 1907년 공황이 발생했고, 홀로 그레이엄을 키우던 어머니의 예금도 휩쓸려 사라졌다. 그레이엄은 그런 주식 시장의 투기를 혐오했다. 하지만, 주식의 장점에는 매력을 느꼈다. 그는 주식을 말 그대로 기업에 대한 부분 소유권이라고 생각했다.

그레이엄은 주식으로 예측 가능하고, 체계적으로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그의 학구적인 기질 때문이기도 했고, 실제 주식으로 돈을 벌기 위해서는 꼭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그가 찾아낸 답은 기업의 재무제표와 그 안에 담겨 있는 유형 자산이었다.

그레이엄은 시장의 변덕에 따라 주가는 단기적으로 오르락내리락 하지만, 기업의 유형 자산, 예를 들어 용광로와 주조 공장, 그리고 거기서 생산한 철강재들의 가치는 변하지 않는다고 보았다. 그레이엄은 그 가치를 정확하고 수학적인 방법으로 계산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물었다. 만일 이 기업이 자산을 팔아 빚을 갚고 나면, 얼마의 가치가 있을까? 실제로 종종 기업 청산이 일어나기도 했다. 그렇지 않은 기업에 대해서는 이론적으로 연습해 보기도 했으며, 이를 통해 유가 증권을 매입할 때 "안전 마진"을 고려해야 한다는 생각을 굳히게 되었다.

그레이엄은 기업의 가치를 정량화한 다음 주가와 비교해 보면서, 시장을 이해할 수 있었다. 이렇게 증권 분석과 그에 따른 가치 투자가 탄생한 것이다.

가치 투자는 처음부터 기업의 양적, 유형적 측면에 초점을 두었다. 그레이엄은 추상적 개념을 좋아했던 지식인이었다. 그는 기업이 만드는 제품에 대해서 알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레이엄의 조교 중 한 명이었던 어빙 칸에 따르면, ‘누가 어떤 기업의 사업 상황을 설명하려고 하면, 그레이엄은 시작부터 창밖으로 시선을 돌리곤 했다.’고 한다. 그레이엄은 기업의 청산 가치에 초점을 맞췄고, 지루하고 낡아빠진 기업에 투자하는 경향이 있었다. 적어도 몇 모금은 빨 수 있는 버려진 담배꽁초 같은 기업들이었다.

그레이엄의 애널리스트로서, 나중에 전설적인 가치 투자가가 된 월터 슐로스가 한 번은 그레이엄에게 할로이드라는 기업을 추천한 적이 있었다. 나중에 제록스가 되는 바로 그 기업이었다. 그때 그레이엄이 창밖을 내다봤는지 기록은 없지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월터, 별로 싸지 않잖아.


그레이엄의 신봉자 중 오마하 출신의 한 청년이 있었다. 비록 대공황 시기에 태어났지만, 전후 미국의 팽창 시절 10대를 보낸 워런 버핏이었다. 버핏은 10대 시절 차트와 다른 기술적 지표를 통해 주식 시장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던 중 그레이엄의 글을 읽고 마치 "다마스쿠스로 가던 길에 있는 회심한 바오로"가 된 느낌이었다고 회상한다.

당시 그레이엄은 콜롬비아 대학 비즈니스 스쿨의 교수로 있었고, 버핏은 그레이엄 밑에서 공부하기 위해 이 학교에 입학했다. 졸업 후에도 잠깐이지만 그레이엄과 같이 일하기도 했다. 하지만 전형적인 중부 청년이었던 버핏은 곧 뉴욕을 떠나 사랑하는 고향으로 돌아왔다.



자기 이름을 딴 파트너십을 시작한 버핏은 1950년대 중반 경제에 대해 조사해보기 시작했다. 그 결과 그레이엄이 젊은 시절과는 판이하게 달라졌음을 깨달았다. 다우존스 산업평균 지수는 여전히 산업 관련 기업들이 지배하고 있었지만, 프록터 & 갬블, 시어스 로벅 및 제너럴 푸즈 같은 기업도 편입되어 있었다.

이들 기업은 산업 관련 기업들과 근본적으로 달랐다. 이들 기업의 가치를 이끌어가는 주된 동력은 유형 자산과는 거의 관련이 없었다. 그보다는 기업의 브랜드에 가치가 달려 있었다. 고객들이 아이보리 비누와 젤로 젤라틴에 느끼는 충성도와 친근감이 바로 이들 기업의 가치였다. 이들 기업은 대량 생산과 판매로 고객들과 끈끈한 유대 관계를 형성했고, 비교적 평범한 제품에도 높은 가격을 메길 수 있었다.

이런 전략이 가능했던 가장 큰 요인은 전국적으로 텔레비전이 공급되기 시작한 것이었다. 전 국민이 서로 같은 프로그램을 보면서 동질성이 형성되었고, 점점 더 강해졌다. 시장을 선도하는 브랜드 기업들은 제조 기업들과 매우 다르지만 효과적인 방법으로 규모를 사용했다.

시장을 지배하던 맥주, 샴푸 및 콜라 브랜드는 세 개의 주요 채널을 통해 경쟁사들보다 훨씬 많은 광고를 내보낼 수 있었다. 하지만 대규모 광고의 효과는 엄청난 매출 증가로 이어졌고, 매출 대비 광고비 비율은 경쟁사들보다 오히려 미미했다.

시장 지배 브랜드 기업들에게는 선순환 고리였고, 그렇지 못한 기업들에게는 악순환의 연속이었다. 버드와이저 같은 브랜드들이 성공에 성공을 거듭했지만, 한때 뉴잉글랜드에서 1위를 차지했던 내러갠싯 맥주 같은 강한 지역 브랜드들은 천천히, 그러나 확실히 시들어갔다.



가치 투자 규칙 3.0

기술 주도형으로 경제가 바뀌었지만, 워런 버핏의 가치 투자 원칙 중 대부분이 아직도 적용 가능하다. 다음은 이 원칙에 입각해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것을 예시한 것이다.

해야 할 것

■ 항상 분명한 경쟁 우위에 있는 기업을 찾아라.

자기 아내에게 어떤 기업이 어떤 차별화된 요소로 장기간 수익 창출이 가능한지 설명할 수 없다면, 그 기업은 아마 여기에 해당하지 않을 것이다. 아마존은 전자 상거래 분야에서, 구글은 검색 분야에서 시장의 목줄을 감아쥐고 있다. 셔윈-윌리엄즈는 가정용 도료 시장을 지배하고 있다. 다음 세대까지 엄청난 수익 창출이 가능한 요소 그리고 이 요소를 갖춘 기업을 찾아야 한다.

■ 규모가 큰 시장에서 시장 점유율은 아직 작지만, 상당한 경쟁 우위가 예상되는 기업을 찾아라.

워런 버핏이 가이코에 투자해 성공을 거둔 방식이 바로 이것이었다. 가이코는 한때 위탁 판매 대신 소비자들에게 직접 자동차 보험을 팔던 소규모 보험 회사였다. 이러한 특성은 식자재 배달 시장의 모태인 그루브허브에서 찾을 수 있다.

그루브허브는 이 시장에서 최고의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지만, 연간 미국 식당 전체에서 소비되는 식자재의 규모를 감안하면, 1%도 안되는 점유율에 불과하다. 하지만 소비자들이 계속해서 외식을 즐기게 될지, 우버와 아마존이 그루브허브의 점심을 먹으려 할지에 그 미래가 달려있자.

하지 말아야 할 것

■ 버핏이 밝혔듯이, 성장하는 산업과 수익성 있는 산업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

2000년대의 한 사례를 예로 들어 보자. 인터넷 전화의 선구자였던 보나지의 사업은 10년 동안 폭발적으로 성장했지만, 경쟁자들도 마찬가지였다. 관련 모든 기업들의 수익은 붕괴되었고, 대게 그렇듯이 가장 큰 승자는 소비자였다. 보나지의 주가는 IPO 당시 17달러를 여지까지 넘어선 적이 없다.

■ 전성기가 지난 기업은 피하라.

장기적으로 기본 사업 가치가 주가 보다 더 비싸고, 현재의 수익이나 장부 가치에 대비 주가가 싸더라도 그렇다. 가장 좋은 사례가 시어스 홀딩스다. 시어스는 올가을 파산을 선언할 때까지 줄곧 기업 가치 대비 주가가 낮아 보였다. 지금도 시어스의 미래를 좋게 본다면, 저렴한 가격에 지분을 살 수 있다. 어쨌든 현재 시어스의 주가는 36센트니 말이다.

(2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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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가 변했구나
싶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글이네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하지 말아야할 점들은 여전하구나
싶기도 하네요

역사는 맥락이니까요. 역사에서 사실이 아니라, 그 맥락을 이해해야 현재와 미래에 적용할 수 있지 않을까요?

2부가 기대됩니다. 글 진짜 좋네요

곧 찾아갑니다. 헌데 벌여놓은 일이 많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