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역시 가족의 야만을 오래도록 지켜봐온 한 사람으로서 가장 치열하게 고통스러웠던 것을 하나 말하자면 손바닥으로 내리치면 죽을 매우 징그러운 벌레를 죽이지도 못하고 몸 위를 기어다니게 내버려두었던 것이었습니다. 벌레에 대한 혐오감과 공포가 쌓여 그것이 체화될 때, 또한 그런 것들이 체화된 자신을 돌아볼 때 만큼 끔찍한 것도 없지요. 돌이켜보면 저는 그렇게 기어다니지 않기 위해 배우고 쓰고 살아왔는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제 몸에 벌레를 붙이게 내버려둔 것은 저도 아니었고, 그 벌레도 아니었습니다. 그것이 붙어있게 한 외부의 압력 때문이었죠. 사실 가족이어서, 악의가 주변에 존재해서 라는 말들은 아무런 필요도 없는 생각이었습니다. 나는 행복을 추구합니다. 그러므로 나쁜 것은 싫습니다. 이건 누구나 다 가지고 있는 생각입니다. 마찬가지로 나쁜 일도 누구나 다 저지를 수 있는 일이지요. 저는 그게 나한테도 적용된다는 생각을 꽤나 오랫동안 하지 못했습니다. 언젠가부터는 저도 비록 가족들일지라도 그러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다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다 별 수 없이 하나의 인간이었던 거죠. 그러나 뭐가 됐든 끔찍한 건 끔찍한거고, 거절은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리스본 대지진이 있고나서 유럽인들은 신을 의심했다고 해요. 전능하고 인간을 위한 무한한 선의를 가진 신이 있는데 어째서 대재앙이 일어났냐는 의심이 시작된 것입니다.
저 역시 그러한 일이 있고나서 사람들이 필사적으로 지키려는 가치들을 의심할 수 있었습니다. 거부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런 기억들을 결코 받아들이고 싶진 않지만 그런 의심을 할 수 있게 된 것은 작가로서는 큰 축복이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어쨌든 그래서 저를 괴롭게 하는 모든 것을 버리고 저의 공간과 주변을 행복한 것들로 꾸며보았습니다. 그랬더니 한결 기분이 좋아진 것을 느낄 수 있었어요. 물론 그 과정에서 포기해야할 것들은 꽤 있겠지만요. 이제 저와의 싸움이 남았지만 최소한 몸에 들러붙은 벌레들로부터 혐오감을 느끼는 일은 하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제가 느낀 바가 요아님의 글과 상통하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때로 외적인 도덕이나 윤리, 책임감 따위가 개인이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을 안겨준다고 생각해요. 탈구조주의도 그런 맥락에서 비롯된다고 여겨지는데, 저는 이 같은 상황에 놓인 사람들이 탈출할 수 있는 출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그러한 생각을 전할 수 있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요아님의 글도 그런 의미에서 쓰여지지 않았나 생각해봅니다.
내가 나한테 실망하지 않는 한, 외부에 휘둘려 실망하는 일은 없어야겠습니다. 글 잘 읽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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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피스톨님 정말 오랜만에 뵈어요 :) 긴 글 남겨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그러나 뭐가 됐든 끔찍한 건 끔찍한 거고, 거절은 할 수 있어야 한다. 내가 나한테 실망하지 않는 한, 외부에 휘둘려 실망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말씀해주신 한 구절 구절이 많은 힘이 되었습니다. 탈출할 수 있는 출구가 필요하다는 말은 정말 많이 공감해요. 더 이상은 우리, 다치지 않는 날만 펼쳐졌으면 좋겠어요. 아픈 글 읽어주셔서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