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봉작에 대한 단상 23
<사바하>, '버려진 자'들을 향한 거룩한 기도
*본 리뷰는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사바하>는 장재현 감독의 대표작 <검은 사제들>(2015)에 비해서는 불친절할 뿐만 아니라 그 개연성도 떨어진다. 낭비되는 인물이나 다소 힘빠지게 하는 엉성한 결말부는 혹평이 이어지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장재현 감독의 오컬트 요소를 현실 문제로 결부시키는 그 능력만큼은 여전히 돋보인다. 특히나 이번 작품에서는 불교적 해설을 바탕으로 소위 ‘사이비(似而非: 겉은 비슷하나 속은 완전히 다름)’로 불리는 이단문제를 적극적으로 끌고 들어와 영화 읽는 맛을 더해주었다.
소위 사이비라 불리는 이단 종교도 그렇지만, 그것을 믿는 사람들도 우리에겐 의문이다. *사진 : 다음 영화, <사바하>(2019)
먼저 이 영화에서 주목할 만한 것은 종교와 구원의 관계다. 사람들은 사이비 종교를 보며 부정적인 견해를 쏟아놓거나 ‘왜 저런 걸 믿지?’와 같은 피상적인 질문을 던지고 말지만 실로 이를 깊이 생각해 보지는 않는다. 심지어 주인공 박 목사(이정재 분)는 그런 부정적인 질문을 자신의 무기 삼아 이익을 얻기까지 한다. 욕을 먹거나 이용당할 뿐인 사이비 종교와 그 신도들. 그렇다면 그들은 도대체 왜 그런 종교나 미신을 믿게 되는가? <사바하>는 먼저 그런 질문을 던진다.
영화 속 인물들을 관찰하다보면 한 가지 공통점이 드러난다. 버려졌거나 ‘버려질 예정’인 자들. 가장 밑바닥에서 태어나 구원을 필요로 하지만 어디에서도 구원받을 수 없는, 그런 구원조차도 기대할 수 없는 이들이 사이비 종교의 구성원 혹은 부정의 대상으로 등장한다. 처음 등장하는 ‘그것’ 또한 ‘버려진 자’의 전형이라고 볼 수 있다. 온몸에 털이 나고 기형을 앓고 있는 그런 모습들. 비교적 온전한 모습인 쌍둥이 금화(이재인 분) 역시 다리의 선천적 장애를 앓고 있으며 그 스스로를 ‘병신’으로 평가한다. 타인도 구원하지 않으며 그 스스로도 자신을 내다버린 자들. 사이비 종교가 노리는 것이 바로 그러한 자들이다. 단지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도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이라는 가장 끔찍한 저주를 받아야하는 자들 말이다.
“당신은 악으로 태어났습니다.”
비록 이용당할지언정 그토록 광신도들이 그들의 종교에 열망하는 이유도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누가 그들을 구원하는가? 국가가 구원하는가? 사회가 구원하는가? 아니면, 신이 구원하는가? 그들이 인간으로 추구하게 될 행복은 이미 외부로부터 차단당했고, 또한 세상에게 ‘악’으로 규정되었다. 그런 점에서 영화가 시종일관 ‘그것’에 대해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도 관객에게 체험케 하려는 의도로 볼 수 있다. 우리 역시 ‘버려진 자’들에게 혐오감을 넘어 공포까지 느끼지 않는가. 정말 가끔은 이들에게 관심을 주고 도움을 주려는 이들도 있지만 그마저도 어떤 이익이 개입해있을 때가 있다. 마치 박목사가 정보를 얻기 위해 성탄 전야에 소년 교도소를 찾아가는 장면처럼 말이다. 그렇다면 그들이 그런 현실 속에서 행복 혹은 안식을 추구할 수 있는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바로 ‘그들만의 세상’을 구축하는 것이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그 세계조차도 부수려하는 박 목사가 악마처럼 보일지도 모르는 일이다. 비단 박 목사뿐이겠는가, 그들 세계를 부정하는 그 모든 이들이 그들에게는 악마가 된다. 나한(박정민 분)을 비롯한 네 남자가 살인도 마다않으며 자신들을 버린 세계를 공격하는 것도 사이비 신도들이 박 목사에게 계란을 던지는 것과 실로 다르지 않다. 그들에게 우리는 이미 악마니까. 그들을 받아준 세계를 지키는 방법이 악마를 퇴치하는 길뿐이라면, 그렇게 행할 뿐이다. 어차피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들을 배척한 악마들이 득실대는 지옥으로 되돌아갈 수밖에 없으니까.
나한은 끝내 자신이 신봉하던 세계의 모순을 발견하고 만다.*사진 : 다음 영화, <사바하>(2019)
하지만 나한은 그들의 세계가 ‘적’으로 규정한 ‘그것’을 찾아가 망설이고 끝내 발걸음을 거두는데, 그 역시 자신과 같이 버려진 것이기 때문이었다. 동류조차 파괴하라는 구원의 계시에 마침내 반발의 기치를 올린 나한은 그 스스로 업화(業火: 지옥의 죄인을 태우는 불)를 짊어진다.
<사바하>는 이처럼 ‘버려진 자’들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이해해가면서도 이들을 이용하고 현혹하는 행태에 대해서는 비판적 시각을 견지하고 있다. 나한도 나한이지만, 결국 사이비 종교의 사악한 음모와 그 부정은 추적되고 폭로되며, 영화는 그걸 파헤치는 도구로 박 목사를 이용하기 때문이다. 박 목사는 이단의 부정을 폭로하는 일을 업으로 삼는 사람이다. 여기서 박 목사가 ‘버려진 자’들을 이용하는 사이비 교단의 최심부를 추적하는 ‘무구(巫具: 무당이 쓰는 도구)’로 사용된 것은 이 작품이 추구하는 지점이 박 목사의 사상과 같다는 것을 의미한다. 영화는 박 목사의 행위를 빌어 우리가 비록 자기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며 신념조차 이용하며 살지라도 버려져 추위에 떠는 자들까지 이용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박 목사가 결말부에서 죽어가는 나한에게 자신의 그 비싼 ‘버버리 코트’를 주저 없이 덮어주는 것도 다 그런 맥락에서다.
“그 사람들이 태어나지 않았다면, 그런 일도 없었겠지요.”
이 작품은 ‘이것이 있으면 저것이 있다’, 연기 사상에서 출발하여 제행무상(諸行無常: 모든 것은 생성 소멸을 반복하므로 정해진 형상을 갖지 못한다)에서 열반적정(涅槃寂靜: 고통을 끊어 고요함에 이르다)에 이르는 불교적 해석으로 인간사를 해설한다. 불교는 현상을 바라보면서 원인과 결과로 이어지는 인과론적 관계에 ‘연’을 더해 ‘결과가 원인을 보듬는’ 해석을 만들어낸다. 이 영화 역시 ‘버려진 자’들의 원인이 그들의 ‘버려진 모습’을 만들어가게 내버려둘 것이 아니라, 우리가 ‘연’이 되어 그들이 파멸적인 방법으로 구원을 찾지 않게끔 할 수 있다고 말한다.
행복한 우리의 일상 속에는 불행에 몸부림치는 이들 또한 존재한다는 것을, 모두가 기피하는 일을 누군가는 하고 있다는 것을, 그렇게 사회가 유지되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고 그 어둠 속에서 고통 받는 이들에게 적어도 ‘진짜’ 구원의 가능성은 열어놓자는 것, 그것이 이 영화의 진정한 메시지가 아닐까.
멋진 영화평이네요. 영화를 보지 않았음에도 등장인물들의 갈등을 읽을 수 있어 좋았습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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