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Pediatrics 입니다.
오늘은 의학과 관련이 있지만, 의학지식을 전달하는 책이 아닌 사회적 메세지를 담은 책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소아청소년과 의사가 읽은 책' 부제로 올릴지 고민했습니다. 별 것을 다 고민한다고 할 수도 있지만, 육아와 의학지식에 관련된 내용을 다룬 책을 왠지 이 부제 안에 소개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있어서 말이죠^^;
「아픔이 길이 되려면」을 읽고 덮으면서, '좋은 책이란 어떤 것일까?' 라는 물음과 함께 이 책은 분명 저에게 2018년 올해의 논픽션으로 꼽힐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책은 '제가 잊고 외면하던 것을 알려준 책'이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 그리고 의사들 또한 질병의 원인으로 사회적 측면을 잊곤합니다. 심장병 중 하나인 심근경색 (심장에 피를 공급하는 혈관이 막히거나 좁아져서 관을 통해 흐르는 피의 양이 적어지면서 심장근육이 괴사하고 결국 심장이 멈추는 병)의 예를 들어보면, 그 원인으로 꼽는 주요 요소는 비만, 콜레스테롤, 담배 등 개인의 습관에 의한 것입니다. 저희가 병원에 오는 환자와 보호자들에게 물어보는 사회적 병력 (Social history) 항목에서도 담배, 술 섭취량, 운동량 등 생활습관에 관심을 두지, 정작 직업 같은 사회적 요소에는 큰 관심을 두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사회의 구성원인 개인이 앓고 있는 병의 면면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꼭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 책은 사회역학이라는 학문적 배경 아래 과학적 자료를 제시하는 힘을 보여주면서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합니다.
개인과 공동체의 특성은 모두 질병이 발생하는 중요한 원인이 될 수 있습니다. 다만 기존의 건강연구에서 압도적으로 많은 연구가 개인적인 요소에 초점을 맞추어 진행되었고 그런 연구들로 인해 질병 위험의 개인화경향은 점점 강화되었던 것입니다. (중략) 우리 몸에서 나타나는 병리적인 변화는 항상 유전적인 요소와 환경적인 요소가 함께 상호작용하며 나타나고 진행됩니다. 공동체와 완전히 분리되어 독자적으로 살아가는 개인은 존재할 수 없기에 사회적 환경과 완전히 단절되어 진행하는 병이란 존재할 수 없습니다. - p. 71
질병의 원인에 사회적인 요소도 있다면, 사회적 원인을 밝히고 그 부분을 고치려는 시도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하지만 우리 사회는 원인을 밝히려는 노력은 물론, 그에 대한 관심마저 부족합니다.
우리의 일터인 직장의 안전도 이러한 부족함 가운데 위험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얼마 전에 열악한 환경에서 일을 하고 있는 소방공무원의 실상에 대한 소식이 화제가 된 적이 있습니다. 근무시간 초과는 일상이며, 힘든 근무 환경으로 여러가지 질병을 앓고 있고, 심지어 안전장비를 개인 비용으로 구매하는 등등의 이야기. 이런 이야기에 대해서 우리는 객관적인 정보를 찾을 수가 없습니다. 일단 관심이 없기 때문이고, 체계적으로 조사할 수 있는 사람도 부족하기 때문이죠.
안전은 포기할 수 없는 가치이고, 소방공무원들은 열악한 환경에서 한국사회의 안전을 최전선에서 묵묵히 지켜왔습니다. 우리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서 일하는 그들이 피할 수 있는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일하지 않도록 지켜내는 것은 국민인 우리의 몫이 아닐까요. - p. 147
세월호 사건 또한 같은 맥락에 있습니다. 2014년 4월 16일 이후 우리는사회 안전에 대한 불신으로 '각자도생' 이라는 단어를 가슴 속에 품게 되었습니다. 지하철이 가다가 갑자기 멈추고 연기가 날 때, 승무원이 '가만히 있으라'라고 하면 지시를 따를 사람은 이제 아무도 없을 테지요.
한국 사회는 재난 이후 매일매일 퇴보했습니다. - p. 161
세월호 피해자의 상처에 대한 대처도 미흡했습니다. 사회의 부조리로 인해 생긴 상처를 제대로 치유하지도 못했는데, 심지어 이제는 그만 좀 얘기하자는 사람들도 있지요.
언론에서 세월호 유가족 분들의 상처를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라고 부를 때, 저는 조심스럽습니다. (중략) 한국 사회의 모순들이 집약된 구조적 폭력에서 기인한 트라우마를, 개인적인 수준에서 진단하고 그것이 개인적인 수준의 치료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는게 아닌가 우려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 p.177
우리는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구성원입니다. '같이'라는 가치가 희석되고 사람들은 개인화되어 가는 와중에 우리는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요? 이 책의 마지막 문장으로 글을 갈무리 하려 합니다.
...어떤 공동체에서 우리가 건강할 수 있는지에 대해 질문을 던집니다. 개인이 맞닥뜨린 위기에 함께 대응하는 공동체, 타인의 슬픔에 깊게 공감하고 행동하는 공동체의 힘이 얼마나 거대하고 또 중요한지에 대해서요. 당신에게도 그리고 저 자신에게도 묻고 싶습니다. 당신과 나, 우리의 공동체는 안녕하신지요? - p.296
*저는 저자, 출판사와 사적 & 공적인 관계가 없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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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픔이 길이되려면...
세아이의 아빠로서 도전해봐야겠네요.
감사해요.
부족한 리뷰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책의 마지막 문장! 개인이 맞닥뜨린 위기에 함께 대응하는 공동체, 타인의 슬픔에 깊게 공감하고 행동하는 공동체의 힘이 얼마나 거대하고 또 중요한지에 대해서요. 당신에게도 그리고 저 자신에게도 묻고 싶습니다.-----가슴에 와 닿습니다~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제가 부족해서 좋은 내용을 많이 소개 못 해드렸습니다^^;; 곳곳에 좋은 글귀가 많습니다.
ㅎㅎ 최근에 추천 받은 책이라 주문해 놓았던 책이었는데 ㅎㅎ 빨리 도착하길 기다려집니다 ㅎㅎ
@beoped 님도 읽어보시고, 리뷰 어떠신가요^^ 기대하겠습니다!
좋은 책 소개 감사합니다 ㅎㅎ!^-^!! 간과하던 사실을 책에서 또 배우는 것 같네요.. 질병의 원인을 사회적 측면으로 바라 볼 수도 있다니.. 몰랐던 사실을 알려 주셔서 감사합니당 ㅎㅎ
@ogn 님 감사합니다. 사실 이 책은 과학적인 근거 제시를 통해 냉철한 판단을 내리지만 따뜻한 시선을 잃지 않는다는 점에서 높이 사고 있는데, 저의 부족한 리뷰로는 다 나타내지 못한 것 같아 부끄럽습니다.
글 감사히 잘보았습니다!! 저도 이 책을 읽어보았는데 공감되는 말씀이 정말 많습니다!!!
@worldinmyheart 님 따뜻한 공감의 힘을 같이 느끼셨다니 저도 감사합니다.
좋은 책 소개 감사합니다. 이 책이 읽고싶어집니다^^
@dr-papa 님이 특히나 좋아하실 것 같은 책입니다^^
한국 사회 전체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고있는 것과 유사한 느낌이라는 글을 본적이 있어요. 전쟁을 겪은 세대, IMF를 겪은 세대, 그리고 수많은 사건들을 겪고있는 세대 등등 그 누구도 제대로 된 치유를 받은 적이 없고 자신이 혼자 이겨낸 사람들이 다른 후대 사람들한테도 알아서 일어나라고 본인은 더 한것도 겪었다며 아무도 서로의 고통을 보듬어주지 않는 상태라구요. 사회 전체가 너무 병들어있어서 어디서부터 어떻게 치료가 가능한건지 막막합니다..
좋은 책 소개 감사합니다.
@illust 님, 참 어렵지요. 저는 운이 좋아서 좋은 환경에서 자랐기에 잘 몰랐어요. 조금씩이나마 책을 통해 알게 되는 과정인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숨겨진 좋은 책이네요...
리뷰에 공감이 됩니다...
^___^
@woosa7 님 감사해요. 추리소설을 좋아하시는 것 같아요!
애거서 크리스티 시리즈 정주행을 해볼까 합니다 ㅎㅎㅎ
질병의 원인의 원인을 찾는 거라고 봐도 될까요.
아픈 사람에게 저마다의 사회가 반영되어있겠네요..
좋은 책 소개 감사합니다.
제가 잘 알지 못하는 분야의 책을 알게됐네요.
@bighug 님 이제야 댓글을 보게 되었네요^^;
말씀대로 원인의 원인을 찾는다는 관점이 맞습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도, 그리고 의사들도 잘 못보는 측면이죠. 한번 읽어보시길 권해드립니다.
아, 그리고 결혼 축하드립니다 :)
좋은 책 소개 감사합니다.
읽어보고 싶게 만드는 이 포스팅의 필력 또한 부럽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