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이 병을, 학교가 바보를 만든다.

in #kr7 years ago

몸은 병원에, 정신은 학교에
마치, 주일에 교회에 맞겨 놓았던 영혼을 찿아 접견하듯,우리는 자신과의 소외된 삶을 기이하게 여기지 않는다.

병은 병원이 만들고, 바보는 학교가 만든다는 의심을 해본적이 없는 사람은
한번도 사실에 대하여 의심을 해본적이 없는 삶을 산것이다.

병원에서 너무 따져 묻는 환자는 홀대 되고,
학교에서 진도에 방해가 되는 질문을 하면 바보 취급 당하며,
교회에서 신에 대해 다른 의견을 말하면 교리에 대한 도전이 고 이단으로 취급 받는다.


현대 수학의 불완전성을 정리한 괴델은
현대 교육이 어렸을때 이미 가능성의 새싹을 잘라 버리는 죽음을 경고 하였다.
제도권 교육에서 우등생으로 훈육된 아이는 거세 당하지 않았는지 확인 해볼 필요가 있다.

버핏은 이발사에게 언제 머리를 깍아야 하는지 묻지 말라고 하였다.
동네 안경점의 목표는 주민들 모두가 안경을 쓰는 그날까지 영업을 멈추지 않는것이다.
절대 안경을 벗으면, 시체처럼 왜? 눈이 푹 꺼져 보이는지 말해 주지 않는다.
그것은 안경이 눈의 조절 근육 운동을 반감하고,비싼 다촛점 안경은 절감하는 단순한 사실인데 말이다.

그나마 이발사나 안경사는 상업성이 노출 되기에 논의의 대상이 되지만,
학교의 교수나 병원의 의사 교회의 목사등은 대단한 권위를 갑피로 두르고 있기 때문에 실체를 감추기 쉽다.
학교는 독학 하는 사람을 무시 할수 있는 학위를 팔고,
병원은 공공연하게 건강을 빙자한 광고를 공인 받는 집단적 힘을 과시 한다.
그들의 건강에 대한 정보는 언제나 기 승 전 결론은 병원이다.


아무도 학교나 병원이 없을때도
차가 없을때 세상의 물과 공기가 깨끗 하였다는 사실처럼, 건강한 정신과 육체가 있었다는 사실을 믿지 않는듯 하다.
과연 학교 때문에 더 지혜로워지고, 병원 때문에 사람들은 더 건강해 졌을까?
확실히 지혜에 대한 의심은 지식 만큼 많아지고, 건강에 대한 자신은 병원에 의타한만큼 형편 없는 지경이다.

여기서 한번 인터넷의 글 정보가
얼마나 독자들의 가독력을 높이는가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
자극적인 다양한 이미지들은 겨우 명작을 삼류 영화로 만든 결과물 처럼,
절대 고전을 읽지 않게 하면서 이미 읽은듯 떠벌리게 만든다.
우리는 신선한 공기를 마시기 위해 더 높은 산의 정상에 올라야 하듯,
지극적인 이미지들은 보물의 발견하는데 어려움을 가중하는 더 많은 쓰레기 더미에 불과 하다.

단어가 어렵거나,문단이 길면 바로 지리는것은
무엇이든 쉽게 얻은자가 금방 좌절의 벽에 도달하듯, 잠망스러운 삶을 나타냄에 불과하다.
그는 마치
배가 아프면 소화제를, 기침을 하면 감기약을 찿는 병원의 고객이며,
언제나 자기의 무지를 학위로 사려 하는 가벼운 존재의 참을수 없는 무게이다.


소화제와 감기약의 남용은 반듯이 몸에 종양을 만든다.
지사제나 해열제는 반듯이 몸에 독을 녹여 쌓이게 하기 때문이다.
가레를 삭히면 몸의 어디로 그것이 가겟는가? 더불어 기침 하는 능력까지 잃어
썩션을 밥먹듯 해야하는 병원의 삶이 죽음 보다 더긴 시간 그를 기다린다.

학사 석사 박사...빈발하는 스펙의 강화는 40, 50 살이 넘어도 , 제 밥벌이도 못하는 바보들을 양산하고 있다.
안타깝게도 공부가 본질을 파헤치는것이 아니라,문제를 꼬고 꼬아서 마른 수건에서 물을짜낸 기이한
인간 하나를 우대 하는데 골몰 하고 있다. 요즘 젊은 이들이 다 아는 말을 한다.
" 대학 대학원의 학위가 졸업 하지 못한 자신들의 연봉을 깍는데 공공연히 이용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신라 골품제도의 폐단을 감추기 위해, 조선이 과거제도를 대대적으로 도입 급제하지 못한 인간들을
깔아 뭉게고, 대중들을 개 돼지처럼 취급한 역사의 연장선상에 있는 엄청난 불행이다.


부디 성공 아니면 실패의 2비트의 삶에서 벗어나
학위로 성공하고,병원에서 오래사는 불행을 끝내는 새로운 역사가 펼쳐지기를 기침 잦은 바보가 염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