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4세에 죽다. (104 year old , Goodall's dead)

in #kr7 years ago


104세의 호주인 구달이 스위스에서, 안락사의 도움을 받아 영면에 들었다.
자연사에 대비 되는 안락사는 여전히, 자연분만이나 제왕절개 만큼 큰 이슈가 되고 있다.


죽는것인가!
죽여야 하는것인가?
장콕도의 능동성에 의거 하면, 구달은 능동적으로 자살한것과 같다.

100세에 스스로 곡기를 끊고 죽은 미국의 사회운동가,
스콧니어링 그도 자살한것이다.

100살을 넘어 죽는 죽음이, 자살인지 자연사인지가 무엇이 중요할까?
100살이 넘어 사는 사람에게는
젊은이들에게는 오지 않는 시간처럼 긴 100살 같이, 죽음이 기다릴수 없는 시간일까?

문득, 50정도가 나이가 넘으면
하루 하루 사는것인지,
하루 하루 죽는것인지 모오한 생각에 빠질때가 있을것이다.
100살의 나이에는 어떤 생각일까? 별로 다르지 않을것이다.

다만, 움직이다가 죽는것인지,죽을때까지 움직여야 하는지가 문제이다.
확실히 죽을때까지 숨을 쉬어야 하기때문에, 숨쉬다가 죽는것이다.
숨은
멎는것일까?
끊는것일까?


저세상으로간 구달의 문제는 끝낫다. 여전히 문제는
이세상에 살아 남은자들의 생각과 선택이다.

제발 죽음 앞에선 염려를 내려 놓았으면 좋겟다.
예수가 "무엇을 먹을까 염려 말라."고 말하는것은,
새도 염려하지 않는 근심을 사서하는 인간에 대한것이다.

잠이 오지 않을것에 대한 염려로 수면제를 먹는 사람들.
똥을 누지 못할 변비의 걱정에 시달리는 사람들.
물고기도 하루에 두번만 먹이 활동을 하는데, 하루 종일 일감에 짓눌려 분주한 사람들.

그리고, 구달처럼 관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조금더 있다가, 자연스럽게 싸고 싶다.

잠이 안오면 자지마라. 잠이 올것이다.
죽음이 안오면 죽지마라. 죽음 이 올것이다. 굳이 그것를 향해 찾아갈 필요가 있을까?

일일신,우일신.
숨쉬는게 지겹고,
똥누는게 무섭다면,
그리고 잠이 오지 않는다면,
무엇보다 타인의 삶보다, 자신의 죽음이 문제라면 구달처럼 죽어야 한다.

은나라의 시조인 탕왕의 "일일신 우일신"은
오직 자신의 죽음을 가볍게 여기고,
만가지 생명의 존엄을 높이는 힘에서만 온것일 것이다.

"가즈아"죽음으로?
죽음은 갈 필요가 없는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