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eemit 회원여러분, 무더운 날씨 안녕하신가요. 스팀잇 왕초보 @munkihun입니다.
얼마 전 향토기행으로 예산 여러 곳을 다녀왔는데, 모두 소개하기엔 너무 내용이 길어져 오늘은 특히 흥선대원군의 부친 남연군의 묘를 소개해 볼까 합니다.
흥선대원군이 10여년간 전국 명산을 찾고 또 찾고, 최종적으로 찾은 조선 최고의 명당 중의 명당, 2대에 걸쳐 천자가 나올 자리(二代天子之地)로 알려져 있고, 흥선대원군의 권력에 대한 강력한 욕망을 상징하는 남연군묘는 예산군 덕산면 상가리 가야산자락에 위치해 있는데, 여기서는 흥선대원군에 대한 역사적 접근보다는 일종의 호기심으로 남연군묘에 대한 풍수지리적 관점으로만 접근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풍수지리와 명당, 그런 것을 잘 모르는 분들도 가 보시면 고개가 끄덕여질 그런 곳인데, 이해를 돕기 위해 간략히 지형을 묘사하자면, 묘지를 멀리 등지고 주산인 가야산 석문봉(653m)이 있고, 좌측으로 옥양봉(621.4m), 우측으로 가야봉(677.6m)이 나란히 있으며, 양 옆에 학이 날개를 활짝 편 모양의 등성이가 마을을 품듯 뻗어 내려오고, 우측 산봉우리에서 내려오는 물줄기는 묘지가 위치한 마을을 감싸듯 흐릅니다.
주산에서 쭉뻗어 내려온 등성이는 마을 중간 부분까지 내려와 멈춰 둥그런 동산을 형성하는데, 바로 그 동산 위에 묘지를 만들었고, 그 곳에서 앞을 내다보면 시야가 시원스레 탁트여 멀찌감치 낮은 산들이 오밀조밀하게 보이는 모양새입니다.
(묘지 뒤쪽 가장 높은 봉우리인 주산인 석문봉이 보입니다)
풍수지리에서는 명당을 주산인 북극성과 주산을 보좌하는 천황대제성의 형상, 주산에서 혈이 내려와 모이는 혈장, 그리고 이 혈장을 보호하는 좌청룡우백호, 그리고 묘자리에서 바라보는 조안이 얼마나 좋은 형상인가를 가지고 판단한다고 합니다.
남연군묘의 경우 주산과 천황대제성의 균형과 형상을 보면 3개의 봉우리가 균형 잡힌 형태로 늘어서 있는 모습이 마치 큰 봉황의 머리와 양쪽 날개를 연상시키게 만들고, 서쪽 봉우리인 가야봉 너머로 석양이 질 때 그러한 분위기가 더욱 강하게 느껴지는데 직접 보면 아주 오묘한 모습입니다.
그리고 혈장은 석문봉에서 힘차게 내려온 줄기인 주룡이 한번 움푹 꺼진 뒤 솟구친 형태로써 둥그렇게 뭉쳐진 모습의 동산을 형성하고 주산에서 내려온 혈이 강하게 응축되는 그런 모양새를 띄고 있습니다.
풍수지리에서는 혈의 크기는 주룡에 의해서 결정된다고 하는데, 주룡의 힘찬 모습을 보면 예사롭지 않음이 느껴지고, 나아가 그 기세를 빠져 나가지 못하게 묘자리 앞부분에 널따란 돌(요석)들이 수도 없이 박혀있습니다.
그만큼 용혈(龍穴)의 기세가 대단한 대혈(大穴) 자리가 되는 것입니다. 맨 위에 사진 보면 묘지 앞 널따란 돌들이 보이시죠? 이런 요석들이 앞부분에 무수히 박혀 있습니다. 이로 인해 응축된 혈이 빠져 나가지 못함으로써 대혈자리가 만들어 지게 되는 것이죠.
결국 흥선대원군은 바로 그 대혈장에 자신의 아버지 남연군의 묘를 쓴 것이랍니다.
(석문봉에서 줄기가 용처럼 뻗어 내려오다 마치 용의 머리처럼 뭉쳐진 동산 모양의 혈장, 저 동산 위에 묘지가 있습니다.)
좌청룡과 우백호 산줄기 좌우로 길게 뻗어 서로 이어져 혈을 감싸 안은 듯 하며, 마을 입구에서 오므리듯 한 형세로 혈을 보호하고 수구(水口, 마을 앞 물이 흘러나가는 출구)를 막는 모습인데, 풍수지리에서는 수구가 닫혀 있고 그 안이 펼쳐져 있는 형상을 명당으로 봅니다.
또 혈을 감싸고 빠져나가는 물길 또한 중요한데, 남연군묘의 물길은 우백호에서 혈을 감싸주면서 좌측으로 빠져나가는 매우 좋은 물길이며,
혈 앞에 펼쳐지는 경관을 조안이라고 하는데, 남연군묘의 조안은 마치 만조백관(萬朝百官)이 머리를 숙이고 조아리는 듯한 형상이고, 먼 곳까지 시야가 탁 틔어 있으면서도 허전하지 않게 매우 잘 짜여진 형상입니다.
이런 것들을 보면 풍수지리에 문외안인 누가 봐도 아늑하고 포근한 느낌이 들고, 형세가 오밀조밀하여 안정감이 느껴지며, 왜 사람들이 명당이라고 하는지 이해가 가실겁니다.
실제 흥선대원군의 아들(고종)과 손자(순종)은 2대에 걸쳐 왕이 나왔습니다. 과연 흥선대원군의 아버지 남연군의 묘를 이곳에 써서 그렇게 됐는지는 알 길이 없고, 설령 그렇다 쳐도 흥선대원군 개인의 영욕은 충족되었을지언정 나라의 운명과 관련해서는 우리 후손들은 그 후대의 참담한 역사에 할 말이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일단 그 참담한 역사는 논외로 하고, 혹시라도 남연군묘를 방문하게 되신다면, 역사적 사실 공부하는 것도 물론 좋지만, 이렇게 다른 관점에서도 생각하신다면 아마 감회가 새로우실 것입니다.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또 다른 소재를 가지고 조만간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오늘도 신선하고 흥미로운 글을 가지고 나오셨네요 늘 흥미롭게 읽고 있습니다 다음글이 또 기대가 되는군요 ^^
지난번에도 무덤에 관해 썼는데, 쓰고보니 의도치 않게 또 무덤에 관한 내용이네요. . 다음 번엔 보다 더 참신한 소재로 글 올려 보겠습니다^^
풍수지리 명당에 대해 흥미로운 이야기 잘보고 갑니다~^^
알지못하는 역사를 들을수 있어 좋았어요 다음이야기도 기대할께요^^
감사합니다. 어찌보면 공감이 안될 내용일 수도 있는데, 흥미롭게 보셨다니 다행이네요^^
재미있네요. 우리나라에 명당이라는자리가 몇개 없는걸로 알고있는데, 글 잘읽었습니다.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재미있게 보셨다니 제 기분이 좋습니다^^
오페르트 도굴사건과 당시 조선 말 혼란기가 떠오르네요 전 그 당시 유적이나 유물들을 보면 왜 이리 씁쓸할까요...좋은 글 감사합니다
네,, 맞습니다. 흥선대원군의 야욕의 결과가 남연군묘 이장이고, 이장한 지금의 묘소에 오페르트가 지금의 행담도 휴게소에 정박해놓고 도굴하러 들어 왔죠.... 굳이 인과관계를 따지자면 그 도굴사건도 흥선대원군의 욕심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봅니다. 읽어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풍수지리에 관심이 많은데 재밋게 잘읽었어요~
항상 재미는 이야기 잘보고 갑니다~
재미있게 잘 보셨다니 뿌듯합니다..ㅎㅎ 앞으로 다른 소재로 더 자주 찾아 뵙겠습니다.
우리의 것은 소중한 것이여~ ^^ (30% 보팅)
감사합니다. 어릴 적만 해도 존재했던 지역의 고유 풍속, 역사, 정서들이 급격한 산업화, 도시화로 우리 고유의 것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을 많이 봤습니다. 그런 것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 특별히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 방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역사에 대해서 관심이 많은데 이렇게 향토에 대해서 알려주시니 너무 좋네요. 수사 기관에 계시다가 이렇게 향토기행을 하시다니 신비롭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궁금하기도 하네요. 좋은 글 많이 올려주시길 기다리겠습니다 ㅎㅎ
평소 좋은 여행정보 많이 얻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저도 앞으로 더 많이 지방에 대한 풍속과 역사, 정서에 대해 많이 찾아다니고 그런 내용들을 많은 분들과 공유하고 싶습니다^^
늘재밌고 신선한 주제 감사합니다. 재밋게 잘읽었습니다.
다큐레이터 보고 들어왔습니다. 다큐레이터보기전에 제가 먼저 봤으면 좋으련만 다큐레이터를 보고들어와 죄송합니다 :)
이렇게 찾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보다 다양한 소재로 흥미있게 글쓰도록 노력해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