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다시보기]가난하면 욕망도 가질 수 없나요?

in #kr7 years ago


나는 카드뉴스를 즐겨보곤 한다.

카드뉴스는 그림이나 사진과 함께 나오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보기도 편하고 이해하기도 좋다.

또한 불필요한 부분을 과감하게 쳐내서 글의 핵심을 빠르게 접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최근 SBS뉴스 카드뉴스를 보았는데, 10일이 지난 지금도 머릿속에 맴도는 주제가 있다.



1.'가난에 대한 인식과 편견'

나의 경험과도 연결되어 있는 부분이 있어서 더욱 인상적이었다.

그 카드뉴스에서는 우리가 '가난'을 얼마나 잘못된 방식으로 인식하고 있는지 지적하고 있었다.


돈가스를 먹는 기초생활수급 아이들에게 어르신은 이렇게 말한다.

"저 비싼 돈가스를 나눠 먹어야지! 하나씩 먹네?"

학교 선생님은 형편이 어려운 학생이 선물받은 틴트를 쓰자, 이렇게 말한다.

"틴트 살 돈은 있나보다?"

형편이 어려운 학생에게 교육/학습 지원해주는 것에 대해 학부모들은 이렇게 말한다.

"주제도 모르고 욕심내서 우리애 수업시간/교육시간만 빼앗는 거 아니야?"

물론 모든 사람이 이런 식으로 말한다는 건 아니다.

하지만 카드뉴스가 소개하는 예들처럼 반응하는 어르신, 학교 선생님, 학부모가 꽤나 많은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내 방식대로 그들을 반박해봐야겠다.



2.역지사지(易地思之):다른 사람의 처지에서 생각하라.


어르신의 경우, 손자나 손녀가 있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손자와 손녀는 기초생활수급 아이들과 비슷한 또래일 것이다.

어르신이 자신의 손자와 손녀에게도 이와 같은 말을 할 수 있을까?

오히려 반대로 반응하지 않을까?

돈가스 '하나'로 부족하도 생각해서 파스타나 다른 메뉴를 시켜주고 싶지 않을까?

기초생활수급을 받는 아이들에게 돈가스 한접시 먹을 수 있는 기회는 생각만큼 자주 오지 않는다.

그 아이들에게 다른 거 더 시켜 먹어도 된다고 말하면,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우리가 더 주문하면, 혹시 싫어하시지 않을까?'

안타깝지만 이런 방어적이고 소극적인 자세가 되어버린다.

자연스럽게 눈치를 보는 것이다.

과연 어르신은 이런 아이들의 마음을 이해하기 위한 노력을 해본적은 있는 걸까?

뭐..어르신은 아무 생각없이 뱉은 말 한마디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말 한마디는 차곡차곡 아이들에게 상처로 축적된다.


학교 선생님의 경우는 상황이 더 심각하다.

어쩌면 이게 현재 대한민국 선생님들의 수준일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해야 할지도 모른다.

물론 좋은 선생님도 많다.

학교 선생님은 학원 선생님과 달라야 한다.

학원이 해줄 수 없는 부분, 말하자면 인성교육이 학교에서는 필요하다고 볼수 있다.

그 인성교육에는 각종 고정관념과 편견을 극복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도 포함된다.

그런 역할을 해야하는 학교에서 선생님이 오히려 편견을 '강화'시킨다면 ,문제는 극도로 심각해진다.

어르신의 말한마디가 아이들에게 1만큼 상처를 줬다면, 학교 선생님의 말한마디는 적어도 10만큼 상처를 주게 된다.

학교 선생님은 학생에게 이렇게 말했어야 했다.

"어머? 틴트 색깔이 너무 잘 어울린다. 선생님은 어떤 색깔 어울릴 것 같아?"


학부모의 경우..그냥 탐욕스러운 아줌마처럼 보인다.

마음 같아서는 쌍욕이라도 해주고 싶다.

만약 그 형편이 어려운 학생이 부모가 없는 상태라면, 평생 아픔을 간직하고 살아가야 할 수도 있다.

부모가 없는 학생은 기본적으로 방어기제가 작동한다.

"도대체 부모한테 뭘 배운거야?"

뭔가 잘못했을때, 언제라도 이런 말을 들을 수 있기 때문에 방어적으로 행동한다.

그리고 경험적으로 차별받는 것에 익숙하다.

하지만 그 차별은 적응되지 않는다. 

차별은 항상 아프고, 그 아이들에게 상처로 작용한다.

사회는 그 아이들의 상처가 아물 때까지 시간을 주지 않는다.

다시 그 상처를 찢고 쑤셔대기 바쁘다.

학부모가 말하는 '주제'는 도대체 어떤 '주제'를 말하는 것인가?

가난한 사람은 욕심을 가지면 안되나?

욕심과 욕망이 자기 자식만 가져야 하는 것인가?


Q.가난하면 욕망도 가지면 안되나?



카드뉴스에 소개되었던 것과 비슷한 경험이 있었다.

군대를 제대한 후, 나는 봉사활동을 자주 다니곤 했다.

착한 사람이라서 그랬을까? 아니다.

내가 봉사활동을 했던 이유는 입사지원서 대외활동 경험에 빈칸을 채울 무언가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나 착한 사람이예요!"이렇게 포장하고 싶은 욕망이 작용했던 결과였을 뿐이다.

아무튼 보육원에서 일했고, 늦은 점심을 먹고 있었다.

같이 온 여학생들이 밥 먹으면서 아이들 신발에 대해 얘기하는 것을 듣게 되었다.


A:여기 보육원은 돈이 많나봐?

B:왜? 무슨 얘기 들었어?

A:아니, 그런 건 아닌데, 애들 신발 봤어? 죄다 나이키, 아디다스였어.

B:진짜? 그래도 보육원 아이들이 나이키 신는 건 좀 아니지 않나?

A:밖에서 보긴 좀 그렇지?

B:그냥 싼거 신어도 될 것 같은데...


10년이 넘은 기억이기 때문에 정확한 대화내용을 담아낼 수는 없다.

하지만 그 맥락은 정확하게 기억할 수 있다.

왜냐하면 창피하지만, 나도 그 여학생들과 당시 비슷하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는 그때 인터넷에서 1~2만원 정도에 파는 운동화를 신고 있었다. 

나도 보육원 아이들의 신발을 보고, 살짝 당황했었다.

하지만 며칠 후 아식스매장에 신발사게 되는 순간, 내 생각이 얼마나 바보 같았는지 알 수 있었다.

아르바이트 급여를 받고, 마음에 두고 있던 운동화를 구입하러 아식스 매장에 방문했을 때, 나는 이미 흥분되어 있었다.

그런데 계산하기 위해 현금을 꺼내는 순간, 희한하게 보육원 아이들의 신발이 떠올랐다.

아식스 매장을 나서면서, 그런 생각을 해봤다.


그 아이들은 좋은 신발 신으면 안되나?

그 아이들은 항상 저렴한 신발만 신어야 되나?

어쩌면 그 나이키/아디다스 신발이 아이들의 유일한 신발일 수도 있잖아?


순간 얼굴이 화끈거렸다.

젠장..창피함이 밀려왔다.

카드뉴스를 보면서, 그 당시 창피했던 기억이 자동으로 소환되었다.

간단한 명제에 눈감지 말자.


사람은 욕망이 있다.

가난한 사람도 사람이다.

따라서 가난한 사람도 욕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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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메이커는 기부를 자주 하니까, 아디다스가 몇 박스 보육원에 보내줬었겠죠. 아이들의 취향이라기엔 다들 신고 있으니까요. 브랜드가 섞여있으니 땡처리 매장 사장님이 점포정리를 했을 지도 모르겠군요. 무슨 상황이었든 기부금 유용이나 허영의 소치 등으로 보이지 않는다면 별로 간섭할 맘이 들지 않을 것 같습니다. 저라면 일단 애들 신발을 못 봤겠군요.

그냥 카드뉴스를 보면서 제 경험이 생각났습니다
창피했던 경험말입니다
물론 댓글달아주신 경우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방문과 댓글 감사드려요
좋은 하루 보내세요~^^

그게 인종차별로도 이어지죠. 동남아 주제에 감히... 아프리카 주제에 감히... 그런 식으로요.

차별과 편견은 그렇게 커지는 것 같아요.
지금의 나도 그런것은 아닌지 반성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에휴..

!!! 힘찬 하루 보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