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유비는 조연?
소설 삼국연의는 철저하게 촉의 관점에서 이야기가 진행된다.
물론 지나치게 포장을 시도할 경우, 역사로서의 삼국지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비판을 피할 수 없기 때문에 나관중은 나름대로 절충하는 모양새를 취했다.
마치 양념반 후라이드반처럼 허구반 역사반 이렇게 섞어버린 것이다.
무엇보다 소설이라는 형태를 선택하면서 출구전략도 기가 막히게 마련해노았다.
이부분에서 나관중은 굉장히 영리하게 판단했다고 생각한다.
사실 이런 전략은 주요인물에 대한 묘사나 서술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유비의 경우, 삼국지의 주인공 중 한사람이다.
실제로 적벽대전 이전까지, 정확하게 제갈량이 등장하기 전까지 유비는 소설 삼국연의에서 주인공의 위치를 꿰차고 있었다.
물론 제갈량이 등장한 후, 소설 삼국연의은 지극히 제걀량 중심으로 이야기가 서술된다.
아무튼 반반 잘 섞는 나관중은 유비도 반반 섞어서 잘 묘사하고 있다.
살짝 무능하고 우유부단하지만, 정의롭고 부하를 아낄 줄 아는 착한 이미지로 유비를 그려내고 있다는 얘기다.
이중텐도 지적했지만, 나는 유비를 그려내는 모습에서 나관중의 교묘함을 느꼈다.
반반 섞은 거 같지만, 실제로 무게의 추는 장점에 많이 기울어져 있다.
유비의 인간적인 매력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미지 설정은 실제 삼국지 게임 캐릭터에도 막대하게 영향을 주게 된다.
삼국지 관련 게임에서 유비의 능력치를 보면, 바로 답이 나온다.
지력은 대략 70~85 사이지만, 매력은 무조건 99다.
삼국지의 모든 캐릭터 중 매력 1등은 항상 유비다.
그렇다면 소설 삼국연의가 너무 유비를 포장했다고만 생각해야 하는 걸까?
나는 유비가 실제로도 인간적인 매력을 가진 인물이었을 거라 생각한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자.
유비는 조조나 손권과 비교하면 가진것이 정말 쥐뿔도 없었다.
그렇게 기반이 부족했던 유비가 삼국 중 하나를 구성하는 과정에서 군주의 매력이 없었다면,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라고 쉽게 예상할 수 있다.
사실 조조는 그런 매력을 가진 유비를 경계했고, 심지어 영웅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조조는 다 잡은 유비를 어이없게 놓치고 만다.
그것도 자신의 군사까지 빌려주며 합법적으로 도망칠 기회를 준 것이다.
유비는 원술을 치겠다는 명분으로 조조의 군사를 빌려서 유유히 도망친다.
완벽해보였던 조조가 도대체 왜 그런 실수를 했던 걸까?
이중텐은 조조가 예측하지 못했던 2가지를 지적한다.
1>곽가의 죽음
2>제갈량의 등장
공교롭게 2가지 사건은 모두 같은 해에 일어난다.
그런데 이건 이중텐이 조금 많이 나간 주장이라고 생각한다.
조조가 무슨 점쟁이도 아니고, 갑작스러운 곽가의 죽음과 제갈량의 등장을 어찌 예측할 수 있단 말인가?
게다가 2가지 사건은 직접적인 연결고리도 없는 개별적인 사건에 불과하다.
무엇보다 2가지 사건은 조조의 힘으로 통제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차라리 조조도 어쩔 수 없는 인간이었고, 유비 관련해서는 판단 실수였다고 언급하는 것이 더 설득력 있을 거라 본다.
하지만 여기서 이중텐의 관점을 읽을 수 있다.
적어도 이중텐에겐 곽가와 제갈량은 동급인 것이다.
비록 곽가와 제갈량이 다른 유형의 인재였더라도, 능력과 영향력을 같은 선상에서 비교할 수 있다고 판단했던 것 같다.
실제로 제갈량은 정치/외교에 출중했고, 곽가는 군사에 출중했다.
그래서 병법에 능했던 조조와 곽가는 찰떡궁합이었던 것이다.
적벽대전 이전까지는 유비는 분명 삼국지의 주연이었다.
하지만 그 이후 유비를 주연이라 부르기 힘든 구석들이 존재한다.
심지어 유비가 조연이라고 이야기를 하는 단락마저 제갈량/조조/곽가 이야기가 더 많은 것 보면, 유비는 조연이 맞은 것 같다.
2.나관중의 페르소나, 제갈량
삼고초려(三顧草廬)
유비가 제갈량을 얻기위해 3번이나 직접 찾아갔다는 일화는 굉장히 유명하다.
소설 삼국연의에서는 유비의 간청에 마지못해 제갈량이 수락한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
이중텐은 이부분에 사정없이 태클을 걸어버린다.
정말 그랬을까?
유비만 제갈량을 원했을까?
제갈량도 유비가 자신을 부르길 기다리고 있지 않았을까?
이중텐은 몇가지 질문과 제갈량의 행보을 바탕으로 논리를 전개하고 있다.
제갈량이 세상에 나온 게 20대 중반이다.
당시 기준으로 적은 나이라고 볼 수 없다.
제갈량이 현명하고 능력있다고 알려진 것이 한참 전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그동안 여러 군벌들의 스카웃제의가 있었을 거라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이중텐이 이지점을 집요하게 파고든다.
제갈량은 왜 그 스카웃제의에 반응하지 않았던 걸까?
와룡이라 불리던 제갈량의 능력치를 고려한다면, 매우 파격적인 조건도 많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갈량은 왜 유비를 선택했을까?
당시 기준 유비는 미약하기 짝이 없었다.
막말로 떠돌이신세였다고 봐야 한다.
출처도 불분명한 '황숙'이라는 간판만 있었다.
이중텐은 제갈량을 전문CEO로 표현했다.
나라를 소유할 욕망은 없으나, 1인자 역할을 해야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제갈량은 자신의 정치적 포부와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서 그 1인자의 위치를 보장받을 필요가 있었다.
당시 유비에게 필요했던 것은 근거지와 정치/군사적 전략이었다.
제갈량은 이 두가지를 유비에게 마련해줄 능력, 즉 브레인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었다.
유비가 전권을 준다면 말이다.
천하삼분지계로 정치/군사적 전략을 유비에게 보여줬다.
또한 1인자의 위치에서 형주를 어렵지 않게 손에 넣을 계책이 있었다.
실제로 적벽대전 이후 유비는 비교적 쉽게 형주를 손에 넣게 된다.
제갈량은 유비가 필요한 것을 마련해주고, 자신의 정치적 포부와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1인자의 자리를 보장받았던 것이다.
제갈량 입장에서는 매우 합리적인 선택이었다고 보여진다.
물론 결과론적으로 그렇다.
그런데 만약 제갈량이 조조에게 갔다면, 순욱,가후,정욱 등 이미 뛰어난 지략가들이 많았기 때문에 조조의 눈에 들어오기가 아주 힘들었을 것이다.
제갈량은 모든 일에 자신이 관여해야 직성이 풀리는 스타일이다.
열심히 한다는 면에서 좋게 평가할 수도 있겠지만, 조직의 리더로서 마냥 좋다고 평가할 수는 없다.
"의심스러우면 일을 맡기지 말고, 일단 일을 맡겼다면 의심하지마라!"
경영학에서 자주 쓰이는 격언이다.
물론 이 격언도 반박하려면 얼마든지 반박할 수 있다.
하지만 제갈량은 부하가 의심스러웠으면서 물리적인 한계 때문에 부하에게 일을 맡길 수밖에 없었다.
근데 일을 맡기고도 끊임없이 참견한다.
참..직장상사가 그런 스타일이면 피곤하기 짝이 없다.
자기가 생각하는 방식대로 일이 처리되어야 직성이 풀린다는 얘기다.
"아무리 제갈량이 뛰어났다고 해도 이미 기반이 잡혀진 조조나 손권 진영에서 1인자 역할을 할 순 없었다!"
제갈량이 유비에게 온 이유를 이중텐은 이렇게 설명하고 있는 거다.
결국 유비와 제갈량은 서로가 서로에게 필요했던 셈이다.
누가 먼저 찾았는지는 알 수 없다.
뭐..지금에 와서 그게 그렇게 중요하다고 보지도 않는다.
다만 제갈량의 출사표에 적힌 내용을 사실로 받아들인다면, 형식상 유비가 제갈량에 먼저 손을 내밀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제갈량도 유비가 아니면, 자신의 정치적 포부와 이상을 마음껏 펼칠 수 없었을 것이다.
3.천하삼분지계는 제갈량의 전유물이 아니다.
이중텐은 시종일관 소설 삼국연의 환상을 깨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삼국연의는 소설이니 허구와 상상력을 많이 포함되어 있다. 그러니 역사적 사실처럼 받아들이자 말자."
이렇게 말하고 싶었던 걸까?
천하삼분지계에 대해서도 흥미로운 주장을 한다.
제갈량 전에 이미 천하삼분지계를 주장한 사람이 있었다고 말한다.
그 주인공은 바로 '노숙'이다.
소설 삼국연의에서 노숙은 그냥 성실하고 온순한, 뭐랄까 딱 공무원 이미지라 할 수 있다.
노숙은 적벽대전 중 제갈량의 신묘한 계책에 입을 벌리고 감탄만 하는 쩌리(??)역할로 나온다.
그런데 이건 나관중이 만들어낸 허구에 불과하다.
실제로 노숙은 동오 최고의 전략가였다.
그리고 손권이 가장 신임했던 신하 중 한사람이었다.
제갈량의 능력을 멋지게 포장하고 싶은 나관중의 욕심이 빚어낸 참사라고 볼 수 있다.
누군가를 돋보이게 하기 위해 주변사람을 바보 만드는 방법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는 것 같다.
아무튼 제갈량의 천하삼분지계와 노숙의 천하삼분지계는 유사한 구조다.
일단 조조를 가장 강한 적으로 설정하고 있다.
손권도 양쪽에 모두 포함되어 있다.
차이는 제갈량의 천하삼분지계에는 유비가, 노숙의 천하삼분지계에는 유표가 나머지 한자리를 차지한다.
나머지 자리가 유비든 유표든 중요하지 않다.
제갈량과 노숙의 천하삼분지계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것은 손권과 유비/유표가 연합하여 조조에게 맞선다는 컨셉이다.
그래서 조조가 생각보다 빨리 형주를 장악했을 때, 노숙과 제갈량의 마음이 통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노숙과 제갈량이 맞서야 할 핵심목표는 조조였을테니까..
사실 제갈량은 천하삼분지계에 대한 특허권을 너무 오랜 기간 들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minsky블로그 삼국지강의 포스팅
저는 유비를 볼때 강철왕 카네기랑 비슷하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나는 당신들보다 똑똑하지는 않지만 당신들을 다루는 재주가 있다
-강철왕 카네기-
유비 역시 본인의 무력이나 지력은 낮았을지 몰라도 매력이 출중했고 인재를 다루는데 능숙했습니다. 관,장, 손,간,미 등이 유비가 쥐뿔도 없을때부터 처음과 끝을 같이한 장수들을보면 그의 인성은 충분히 짐작이 가능할것 같아요~
재미있는 글 잘 읽었습니다. 저도 삼국지 정말 좋아하는데 팔로우하고 가요^^
저도 말씀하신 부분에 집중해서 삼국지를 읽었던 경험이 있습니다.
정확히는 삼국연의를 국내작가의 시선으로 옮긴거라고 봐야겠죠.
이기는 것보다 지는게 많고, 비굴하게 도망치기도 하고, 어떤 관점에서는 사기를 치는 것처럼 보이는 유비에게 도대체 왜 맹장들과 책사들이 충성하는 것일까?
결국 답은 매번 인간적인 매력으로 귀결되었습니다.
당시 기준 매력이라는 능력에는 언급하신 인재 관리 능력도 포함된다고 생각합니다.
댓글과 관심 감사드립니다.
행복한 주말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