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독_책 # 1 사랑의 기술(2)

in #kr7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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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리히 프롬이 언급했듯이,
'나 자신의 자아에 대한 사랑은 다른 존재에 대한 사랑과 불가분의 관계를 갖고 있으며, 이 둘의 태도는 모순되지 않고 결합적인 의미로 상응하고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나 자신과 상대를 '사랑하는' 법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며 삶과는 전혀 쓸데 없는 것들에 더욱 귀를 기울인다.

['현대인들은 사랑을 갈망하고, 행복한 사랑의 이야기, 불행한 사랑의 이야기를 펼쳐 놓는 무수한 영화를 보며, 사랑을 노래한 시시한 수백 가지 노래에 귀를 기울인다. 그러나 사랑에 대해서 배워야 할 것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많은 이들이 어떻게 하면 연애를 "잘" 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을 토로하며 심지어 요즘에는 연애 스터디와 관련 상담업체까지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프롬은 말한다. '최초의 조치는 삶이 기술인 것과 마찬가지로 사랑도 기술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자, 그러면 사랑을 한다고 해보자.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사랑을 한다고 하면서도 사랑 받는 것에 더 마음을 쓰고 있지는 않은가? 어떻게 하면 그 사람에게 내 매력을 발산시키고 그/그녀로부터 더 사랑받을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하고 걱정하고 있지는 않은가? 나의 경험을 비추어 보았을 때에도 대부분은 그 사람을 사랑하기보다 그로부터 사랑 받는 것에만 초점을 두어 갈등을 겪은 적이 많다.

그렇다면 사랑을 준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프롬에 의하면, '주는 것은 잠재적 능력의 최고 표현이다. 준다고 하는 행위 자체에서 나는 나의 힘, 나의 부, 나의 능력을 경험한다. 고양된 생명력과 잠재력을 경험하고 나는 매우 큰 환희를 느낀다. 나는 나 자신을 넘쳐흐르고 소비하고 생동하는 자로서, 따라서 즐거운 자로서 경험한다. 주는 것은 박탈당하는 것이 아니라 준다고 하는 행위에는 나의 활동성이 표현되어 있기 때문에, 주는 것은 받는 것보다 더 즐겁다.'

사랑이 어려운 이유 중 하나는, 나는 그 사람이 아니고 그 사람은 내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는 서로가 될 수 없는 인간들일 뿐이다. 나보다 30년을 더 살아오신 연장자에게 언젠가 삶의 의미를 깨닫게 되셨는지 여쭤본 적이 있다. 그로부터 돌아온 대답은 "나는 아직도 나를 잘 모르겠다" 이 한마디 뿐이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자기 자신에 대해 아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우리 자신을 다 알 수 없다. 하물며 어떻게 내가 그/그녀를 온전히 다 알고 이해 할 수 있겠는가?

'우리가 우리의 존재 또는 다른 사람의 존재의 깊이에 도달하려고 하면 할수록 인식의 목표는 더욱 멀어진다. 가령 우리가 우리 자신을 1천 배쯤 더 잘 알게 되더라도, 우리는 근저에 도달하지는 못할 것이다. 우리의 동료가 우리에게는 언제나 수수께끼인 것처럼 우리는 자신에 대해 언제나 수수께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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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어려운 이유 중 하나는, 나는 그 사람이 아니고 그 사람은 내가 아니기 때문이다.

띵언이야 띵언!!!

표지 이쁘게 만들었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