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호화폐는 가격이라기 보다는 철학이다. (3)

암호화폐는, 국가 같은 지역별 공동체가 아니라 암호화폐를 중심으로 한 공동체를 꿈꾼다. 따라서 국가주조 통화들을 개의치 않는다.

블록체인이 구현된 생태계에서는, 거래 중간에 끼어들어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이익 또는 수수료를 받는 '기업'이란 존재는 설 곳이 없어진다. 블록체인 자체가 사업체인 계이고, 그 계를 참여하는 이용자가 많을수록 그 블록체인의 암호화폐 가격은 오른다. 블록체인 시스템 자체가 관리하기 때문에 계주는 없다. 따라서 계원이 나혼자 남을 염려는 있어도 떼먹힐 염려는 없다.

1천5백여개의 암호화폐들이 사기가 아니다. 전세계 수천만개의 기업들과 수많은 정치가들이 사기가 아니듯.

암호화폐 필요없는 블록체인이란 돈 필요없는 계약과 비슷한 맥락이다. 계약이행에 돈을 필요로 하지 않는 계약이 있기는 하지만, 현실의 수많은 계약들이 돈과 직간접적으로 얽혀있다.
암호화폐 필요없는 블록체인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세상을 천진난만하게 바라보는 것 같다. 역설적이게도 그런 분들이 학구적이거나 통찰력있는 이미지를 풍긴다. 그들이 돈 필요없는 사회를 꿈꿀 정도로 급진적이지는 않은 것 같다.

비트코인이 10달러가 될지 10만달러가 될지도 중요하지만, 사람들이 비트코인을 신뢰하고 채굴 전기세 이상의 가치를 믿기 시작했다는 것 자체가 무시못할 의미이다. 그 믿음이 몇 년째 계속 이어지고 있다.

시장은 지식사회보다 빠르고 정확하다고 믿는다. 어쩌면 시장은 암호화폐를 통해 국가가 가진 시뇨리지 또는 권위 또는 인플레이션을 더이상 묵인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나타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달러와 1대1 교환보장(페그하여 환율을 고정)하는 중앙은행 발행 달러코인과, 원화와 1대1 교환보장(페그하여 환율을 고정)하는 한국은행 발행 원코인을 상상해보자. 암호화폐의 특성상 누구든 원코인과 달러코인 모두 살 수 있고 언제 어디로든 정부의 제재없이 국경을 넘어 사이버상에서 옮길 수 있다. 따라서 원코인으로 인해 한국 원화는 외부자들의 환율투기공격에 취약해질 수 있다. 이 경우에
(1) 시장경제 논리에 따라 정부는 원코인의 환율관리를 포기하게 된다. 한국 국가차원의 독립적인 통화관리 정책이 실패하게 되는 것이다.
(2) 포기하지 않는다면 정부는 달러코인 구입거래소를 폐쇄하고 지금의 법정화폐로 회귀하게 된다. 중앙은행 발행 암호화폐 실험은 실패한 것이다.
(3) 그렇다면 1대1 교환보장을 하지 않는 중앙은행 발행 코인은 어떨까? 그런 코인이라면 비트코인과 무엇이 다르다는 말인가. 그 때가 되면 사람들은 정부가 만든 암호화폐를 신뢰할까, 정부의 박해속에서 살아남은 암호화폐를 신뢰할까?
암호화폐를 비웃으며, 윽박지르며, 여유롭게 지켜보며 흘려보낸 시간동안 외통수에 몰린건 정부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