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과 변화의 리더십 : 알렉산드로스 (3)

in #kr6 years ago
□ 이기는 리더, 승리하는 리더십
- 도전과 변화의 리더십 : 알렉산드로스 (3)

필리포스와 알렉산드로스는 영조와 사도세자만큼이나
상대를 경쟁상대로 간주하는 서먹서먹한 부자관계였다

알렉산드로스는 고집쟁이에 반항아였다. 그러나 상대방이 합리적 논리를 내세워 설득하면 순순히 납득했다. 필립포스는 이러한 아들에게 어울릴 최고의 스승을 찾았고, 동시대의 대학자였던 아리스토텔레스 이상으로 알맞은 적임자를 발견할 수는 없었다. 그는 아리스토텔레스를 데려오기 위해 고액의 수업료를 지불하는 것에 더하여 왕 자신이 파괴했던 아리스토텔레스의 고향마을을 재건하고는 망명하거나 노예로 팔려나간 옛 주민들을 그곳으로 다시 이주시켰다.

알렉산드로스가 아리스토텔레스 문하에서 공부할 장소로는 미에자 근교의 성스러운 공간이 선택되었다. 요정들이 살았다는 그곳에서 미래의 세계의 제왕은 당대의 철학의 제왕으로부터 윤리와 정치에 관한 가르침을 받았다. 이때 배운 내용 가운데에는 철학자들만이 알 수 있는 은밀한 과목들도 포함되었다. 후에 아리스토텔레스가 그에게 가르쳐준 것들의 일부를 책으로 펴내자 알렉산드로스는 “저는 힘으로 남을 내리누르는 것보다 최고의 지식으로써 남을 다스리고 싶습니다”라면서 편지로 항의하였다. 알렉산드로스는 권력에 대한 독점욕만큼이나 지식에 대한 독점욕 역시 강한 인물이었다.

알렉산드로스는 굉장한 독서광이었다. 그는 특히 「일리아스」를 즐겨 읽었다. 병법의 보고로 여긴 이유에서였다. 알렉산드로스는 베개 아래에 단검과 함께 이를 보관했는데 그가 가지고 다닌 책은 아리스토텔레스가 편집한 판본이었다. 아버지 필립포스보다 스승인 아리스토텔레스를 더욱 존경한다는 그의 이야기는 결코 허투루 내뱉은 빈말이 아니었다.

필립포스가 뷔잔티온으로 원정을 떠나자 알렉산드로스는 섭정 자격으로 국정을 대신 맡았다. 그는 반란 진압과 신도시 건설 등에서 열여섯 살의 소년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만큼의 완숙한 솜씨를 뽐냈다. 아버지에게 왕의 인장을 반납한 후에도 그의 활약은 계속되었다.

특히 주목할 부분은 카이로네아에서 그리스 세계의 패권을 놓고 마케도니아와 아테네-테베 동맹 사이에 대회전이 벌어졌을 때 그가 당대 최강의 부대로 통해온 테베의 신성군의 대오를 처음으로 무너뜨렸다는 점이었다. 필립포스는 아들이 너무나 자랑스러운 나머지 세간에서 공공연히 그를 장군으로 칭하고, 아들을 왕이라고 불러도 조금도 불쾌한 기색을 내비치지 않았다.

아버지와 아들의 사이를 갈라놓은 것은 후사 문제였다. 필립포스는 젊은 처녀 클레오파트라를 아내 목록에 새롭게 추가했는데, 그녀의 삼촌인 앗탈로스가 두 사람 사이에 왕위를 계승할 아들이 태어나도록 빌어달라는 얘기를 하필이면 알렉산드로스의 면전에서 술김에 함부로 발설했기 때문이다. 격분한 알렉산드로스는 앗탈로스에게 술잔을 던졌고, 필립포스는 아들의 행동이 무례하다고 생각해 칼을 뽑아들고 일어났다.

그러나 천만다행으로 왕은 이미 대취한 상태였던지라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그만 고꾸라지고 말았다. 알렉산드로스는 “유럽에서 아시아로 건너가겠다는 분께서 탁자 사이조차도 건너가지 못하십니다”라고 이죽거렸다. 이 소동이 있은 후 알렉산드로스는 어머니를 외가가 있는 에페이로스로 모신 다음 자신은 일뤼리아에 잠시 머물렀다. 그는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아버지의 간청을 못 이기는 척 받아들이고는 왕궁으로 돌아왔다. 이때 코린트 사람 데마라토스가 설득에 힘을 보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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